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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조슬예의 아는 사람 이야기] 쓸데없는 수다야말로 창작의 힘이죠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스틸컷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 스틸컷

시나리오 작가인 이 작가와 조 작가는 내 지인 중 가장 수다스럽고 ‘(애)드립’과 ‘유머’에 능통하다. 유난히 주변에 과묵한 사람이 많은 내게는 그야말로 단비 같은 존재들이다. 그들과 함께 ‘한없이 가볍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노라면, 답답한 현실에서 벗어난 듯 묘한 해방감을 느끼곤 한다. 대화는 보통 이렇게 진행된다. 한 사람이 화두를 던진다. 대체로 뻔하고, 단순하며, 은밀한 공간이 아니고서야 말하기 힘든 부끄러운 소재다. 예를 들면 “무인도에 함께 가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어떤 사람과 영혼을 바꿔 살아 보고 싶은가?”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면 어느 시대로 가고 싶은가?” 이런 식이다. 누군가 질문에 답하면, 나머지 두 사람은 질문을 변주해 대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간다. 다시 예를 들면 “무인도에 데려갈 수 있는 사람이 A·B 중 한 명이라면?” “영혼이 바뀐 상대를 죽여야만 자신의 몸을 되찾아 올 수 있다면?” “시간 여행 도중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질문과 답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래서 수다가 시작되면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반나절 이상 훌쩍 지나곤 한다. 한번은 신중한 성격의 동생 L양이 곁에서 대화를 듣다 걱정스레 물었다. “이 의미 없고 현실성 없는 대화에 왜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거예요?” 마치 우리가 ‘인생을 낭비 중인 것 같다’는 말투였다. 기분이 나빴지만 딱히 반박할 말은 찾지 못했다.

최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게으름을 피우며 미뤄 둔 일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시간과 공간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간절하게 빌어도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마감에 쫓겨 허덕이는 날들이 이어졌다. 코앞에 닥친 작업을 겨우 마무리하고 나니, 두 작가가 보고 싶어졌다. 술 한잔 기울이며 수다를 떨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들이 이런 제안을 거절하는 일은 드물다. 이날 대화의 주제는 “램프의 요정에게 소원을 빌 수 있다면?”이었다. 공감 가능한 소원들이 쏟아졌다. 순간 이동·공중 부양 등 초능력에 관한 것부터 건물·현금 등 현실에 필요한 것까지. 1차 대답이 끝나자 질문을 변주하기 시작했다. 조 작가가 물었다. “요정이 당신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신, 그 대가로 당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받아간다면. 그래도 소원을 빌겠는가?” 그 말을 듣는 순간 멍해졌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렇기에 이 질문은 커다란 딜레마를 불러일으키고, 딜레마는 이야기의 초석이 된다. 직업병이 발동한 우리는 이 설정을 토대로 이런저런 스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막판에는 흥분에 휩싸여 “대박 아이템이다. 시나리오 써서 비싼 값에 팔자!”며 김칫국도 거하게 들이마셨다. 그런데 다음 날 조 작가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날 우리가 이야기한 것과 똑같은 아이템의 만화가 있다는 것이다. 제목은 『I WISH…』(서현주 지음, 서울문화사). 성경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해 아래 새것 없나니.’ 착잡한 마음으로 집 근처 만화방을 찾았다. 제목을 말하자 점원이 책장 구석을 가리켰다. 먼지가 잔뜩 쌓여 있는 것을 보며 별 기대 없이 만화책을 펼쳤지만, 어느새 몰입하여 완결인 7권까지 단숨에 읽었다.

‘소원을 이뤄 주는 대신 소중한 것을 앗아 가는 마법사 K’와 ‘비행기 사고로 일가족을 잃은 소녀’를 중심으로 의뢰인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사랑하는 남자를 살리기 위해 그에게 심어 둔 ‘사랑의 기억’을 잃게 되는 여자, ‘오직 아들을 위해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가장 소중한 것은 아들이 아닌 자신의 이기심이었음을 깨닫는 아빠 등등. 소재의 장점을 만화적 상상력으로 증폭시킨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문득 영화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11월 9일 개봉, 나가이 아키라 감독)이 떠올랐다. 주인공 ‘나’(사토 타케루)는 악성 뇌종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그날 밤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의문의 존재’가 나타난다. 그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사라지게 한다면 수명을 하루씩 늘릴 수 있다”고 말한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 놓인 ‘나’는 하릴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첫째 날은 세상에서 전화가, 둘째 날은 영화가 사라진다. 그와 동시에 잘못 걸린 전화를 통해 만난 여자친구와의 사랑도, 영화광 친구와의 우정도 사라진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의문의 존재가 말한다.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고양이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하겠다고.

비슷한 소재를 통해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 두 작품을 보며 의문이 들었다. 내가 두 작가와 나눈 대화는, 그저 인생의 낭비일 뿐일까? 어쩌면 『I WISH…』와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도, 누군가의 ‘한없이 가볍고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대화’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글: 조슬예
‘잉투기’(2013) ‘소셜포비아’(2015) 등에 참여한 시나리오 작가. 남의 얘기를 듣는 것도 내 얘기를 하는 것도 좋아해 ‘아는 사람 이야기’까지 연재하게 됐다. 취미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수다 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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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