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매거진M] '1000만 작가'의 창작 비법? '형 '7번방의 선물' 유영아 작가

“잘나가던 국가대표가 시력을 잃는다면, 그 마음이 어떨까요. ‘형’의 시나리오는 거기서 시작했습니다.” 지난 11월 23일 서울의 한 극장. 강단에 선 유영아(42) 작가의 말에 청중의 시선이 쏠렸다. 그가 각본을 쓴 영화 ‘형’(11월 24일 개봉, 권수경 감독)의 개봉을 맞아, 한국콘텐츠진흥원 창의인재동반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특강 자리였다. 창작 지망생들을 지원하는 이 사업의 멘토로 활동 중인 그는 ‘7번방의 선물’(2013, 이환경 감독)로 ‘1000만 작가’의 반열에 오른 이다. 무엇보다 장르를 넘나들며 드라마가 진한 작품을 내놓기로 유명하다. 유 작가는 그간 스포츠영화 ‘국가대표2’(8월 10일 개봉, 김종현 감독) ‘코리아’(2012, 문현성 감독), 정통 드라마 ‘파파로티’(2013, 윤종찬 감독) ‘웨딩드레스’(2010, 권형진 감독), 로맨틱 코미디 ‘좋아해줘’(2월 17일 개봉, 박현진 감독), 블록버스터 ‘타워’(2012, 김지훈 감독)의 각본을 집필했다. 강연과 따로 진행한 인터뷰를 더해, 그가 말하는 시나리오 쓰기 비법을 정리했다.
 
강연중인 유영아 작가

강연중인 유영아 작가

1 매력적인 캐릭터가 관객을 압도한다.
유영아 작가가 강조하고 또 강조한 것은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는 “한두 겹짜리 얕은 인물로는 120분가량의 상영 시간을 결코 채울 수 없다. (지구처럼) 적어도 지각·맨틀·핵, 이렇게 세 겹은 있어야 강렬한 인물이 나온다”고 했다.

예시로 든 것은 최근 흥행한 영화 ‘밀정’(9월 7일 개봉, 김지운 감독)이다. “일제강점기 친일 경찰 이정출(송강호)이 ‘민족을 배신했다는 것’과 ‘한때 독립 투사(박희순)와 친구였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관객의 감정을 끌어들일 수 없다”는 것. “‘일본의 앞잡이로 살면서도, 독립 투사 친구가 자결하며 부러뜨린 발가락을 간직해 뒀던 인물’이란 캐릭터의 ‘핵’이 더해졌기에, 이정출이 관객의 감정에 스밀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형’의 각본을 쓰며 그가 가장 고심한 것 또한 인물의 깊이였다. “처음에는 시력을 잃은 국가대표 고두영(도경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인물의 ‘핵’이 부족했다. 그와 갈등을 빚는 형 고두식(조정석)을 끌어들이고 나서야 겹이 한 층 더 생겼다. 인생의 많은 부분에서 형제애·가족애가 기본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아픈’ 실수담도 꺼내 놓았다. “최근 1년 반 동안 열심히 취재한 역사 속 인물이 있었는데, 도통 시나리오가 써지지 않아 내려놓았다”는 고백이었다. 그는 “그렇게 열심히 취재했음에도 인물의 ‘핵’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사적 사건에 나 혼자 뜨거워졌던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이대로 쓰다간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았고, 과감히 접기로 결심했다”며 “인물을 대충 만들어 놓고 이야기를 쓰면 나중에 더 헤매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인물을 완성한 후에야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줄거리를 요약·정리한 시놉시스를 처음부터 꼼꼼하게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과정이 고되긴 하지만, 고료를 받고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기초 공사’라는 것이다.
 
2 고전이 답이다.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하는 법. 그가 제시한 답은 바로 ‘고전’이다. 유 작가는 “예전에는 수많은 작품을 읽으면서도 나 또한 내공이 충분치 않아 잘 몰랐는데, 요즘 다시 고전을 읽으니 그 깊이가 하나하나 눈에 띈다”고 말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만 보더라도 그 안에 이야기의 재미있는 구조가 녹아 있을 뿐 아니라, 인물이 매우 깊이 있게 묘사돼 있다는 것이다.

유 작가는 “캐릭터를 잘 그리지 못하는 후배들에겐 김려령 작가의 소설 『완득이』(2008, 창비)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2011, 창)을 추천한다”고 했다. “캐릭터를 얼마나 집요하게 파고들 수 있는지 배울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최근 본 작품 중에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2014, 문학동네)이 무척 좋았다”며, “소설을 창작할 때도 (각본을 쓰는 것과) 비슷한 과정을 겪는다는 점에 위로받았다”고 말했다.

독서 외에 그가 즐겨 하는 일은 라디오를 듣는 것이다. 그는 “오전 7시부터 라디오를 틀어 놓는데, 듣다 보면 눈물도 나고 배꼽도 빠지고 열 받기도 한다. 평소 만나기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수 있어 귀 기울여 듣는다”고 말했다. 사실 ‘형’의 두영 캐릭터 또한 그렇게 나왔다. “하루는 라디오 DJ와 통화하는 청취자의 목소리가 너무 해맑아 귀 기울여 들었다. 눈이 안 보이는 그는 ‘장애인올림픽 출전을 준비한다’고 하더라. 대체 그 친구의 마음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 쓰기 시작한 것이 ‘형’ 시나리오다.”
 
3 끈기와 근성으로 버텨야 한다.
유 작가는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 활동을 계기로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부모님께는 ‘영어 공부한다’며 거짓말하고 작가 교육원에 다니던 시절, 열심히 쓰고 또 썼지만 데뷔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20대를 보낸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혼자 딸을 키우며 학습지 교사, 학원 강사 등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도 매일 저녁 책상 앞에 앉았다. 그 결실로 ‘웨딩드레스’가 나왔다. 데뷔 이후에도 힘든 시간이 있었지만 쉼 없이 작품을 발표해 왔다. 유 작가가 작가 지망생들의 멘토로 나선 것도, 입봉하기까지의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는 “(멘토 활동을)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웃으며 “내가 너무 (먼 길을) 돌아서 왔고, 뼈저린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후배들에게 ‘너는 이렇게 하지 마’라는 말을 꼭 해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유 작가는 소탈하게 웃으며 “기독교 신자인 내게, 두 번째 신앙은 바로 ‘영화’”라고 말했다. 그저 “글을 쓰겠다”는 믿음으로 그 시간을 견뎠다는 것. 그는 “그때 쓴 시나리오가 모두 영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지만, 큰 밑거름이 됐다. 지금도 후배들이 찾아오면 버티고 또 버티라고 얘기해 준다”는 그는 “작가는 학연도 지연도 필요 없다. 오직 필력으로만 살아남는 직업이다”라고 말했다.

유 작가와 함께 글쓰기를 공부했던 동료 중 지금껏 작가로 살고 있는 이는 몇 없다고. 그가 다른 이들과 달랐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유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건 그냥 끈기였다. 그저 매일 밤 책상 앞에 앉았던 근성. 그리고 ‘내가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강연중인 유영아 작가
4 결국 사람이다.
요즘 그에겐 ‘각색해 달라’는 요청과 함께 온갖 시나리오가 몰려들고 있다. 충무로에서 손꼽히는 작가가 되며 달라진 풍경이다. 인터뷰 중간중간 “영화는 많은 사람과의 협업”이라 거듭 강조한 그는 “글을 쓴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만나 이야기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빠진 요즘도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고, 후원하는 아이들과 공부방에서 영화도 본다. 유 작가가 가장 힘주어 한 말은 이렇다. “결국은 사람의 일이다. 사람을 바라보지 못한다면 쓸 것 또한 없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사진=정경애(STUDIO 706)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 군사안보연구소

군사안보연구소는 중앙일보의 군사안보분야 전문 연구기관입니다.
군사안보연구소는 2016년 10월 1일 중앙일보 홈페이지 조인스(https://news.joins.com)에 문을 연 ‘김민석의 Mr. 밀리터리’(https://news.joins.com/mm)를 운영하며 디지털 환경에 특화된 군사ㆍ안보ㆍ무기에 관한 콘텐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