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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문학상 김행숙 “제가 받은 건 상 아닌 특별한 시간”

미당·황순원 문학상 시상식

“멋지고 여유롭게 수상소감을 말하려고 어젯밤 집에서 몇 번이나 연습해봤으나 할 때마다 말이 꼬이고 말문이 막혀 즉석에서 말하는 것처럼 수상소감을 적어봤다. 눈을 감고 들으시면 더 좋을 것 같다.”

소설가 정용준(35)이 너스레를 떨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대중 앞에서의 스피치는 내용뿐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외모, 표정변화까지 어우러진 일종의 ‘종합 상연(上演)’일 텐데 자신은 이런 자리가 부담스러우니 내용만 들으라는 유머였다. 어려서부터 고통받아왔다고 정씨가 여러 차례 공언한 말더듬증 콤플렉스를 스스로 비튼 내용이었다.

정씨는 올해 황순원문학상 수상자. 자폐증 청년 한두운과 그를 돌보는 아르바이트 청년 사이의 한나절 조우를 통해 상대에 대한 배려 없는 시혜적 친절의 문제점을 부각한 단편 ‘선릉 산책’이 수상작이다.
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미당?황순원문학상, 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 박동억, 시 부문 수상자 문보영, 소설 부문 수상자 문경민, 중앙일보 김교준 대표이사 겸 발행인, 황순원문학상 수상자 정용준, 미당문학상 수상자 김행숙씨. [사진 김경록 기자]

2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미당?황순원문학상, 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이 열렸다. 왼쪽부터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수상자 박동억, 시 부문 수상자 문보영, 소설 부문 수상자 문경민, 중앙일보 김교준 대표이사 겸 발행인, 황순원문학상 수상자 정용준, 미당문학상 수상자 김행숙씨. [사진 김경록 기자]

2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제16회 미당·황순원문학상, 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장 풍경이다.

이날 시상식은 열띤 수상소감, 인상적인 축사가 이어지면서 예정시간을 넘겨 1시간 20분가량 진행됐다. 문학은 결코 인쇄된 활자 안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텍스트 바깥에서 얼마든지 살아 있을 수 있음을, 박제된 문학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문학적 순간들이 훨씬 매력적일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다.

정씨의 유머는 이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선배님들의 수상소감을 찾아봤더니 ‘계속 쓰라는 의미로 알고 열심히 쓰겠습니다’라는 발언이 가장 많더라”고 했다. “그런 멘트들이 어쩐지 촌스럽고 약해보였지만 이 자리에 서보니 알겠다”며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상을 받을 줄 몰랐고, 그 소설로 상을 받을 줄 몰랐고, 잘 쓴 건지 망한 건지 몰랐고, 계속 이렇게 써도 되는지, 이 지경인데 앞으로 청탁은 올 것인지 말 것인지, 하나도 몰랐던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정답 없는 소설의 길을 홀로 가는 어려움과 외로움에 대한 표현이었다.

서정시 ‘유리의 존재’로 올해 미당문학상의 주인공이 된 김행숙(46) 시인은 정씨와는 또다른 진성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씨는 “심사위원 선생님들이 제게 주신 것은 다만 상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시간,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피고 앞을 질문해보는 시간, 어둠 속에 눈을 감고 조금 더 깊은 생각을 하도록 해준 시간이었다”고 했다. 현 시국과 관련, “우리가 지금 어떤 희망을 말할 수 있다면 절망을 이긴 희망이 아니라 깊은 절망에 닿아서 절망의 힘으로 무릎을 펴고 일어나는 희망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당·황순원문학상 시상식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지인(知人) 축사 순서. 후배 시인 이근화는 김행숙의 시 세계를 설득력 있게 요약했고, 정용준씨의 대학 은사인 이승우 소설가는 “언제나 이전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쓸 것”이라고 덕담했다.

문학평론가 성민엽 서울대 중문과 교수는 미당·황순원문학상 심사위원 대표 축사에서 “문학은 죽지 않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열린 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에서는 ‘막판이 된다는 것’의 문보영(24), ‘곰씨의 동굴’의 문경민(40), 함기석·정재학·황병승의 시를 분석한 박동억(29)씨가 각각 시·소설·평론 부문 상을 받아 등단했다. 시인 김경미씨는 심사위원 대표 축사에서 198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상식 무대에 섰던 20대 초반을 회고했다.

김교준 중앙일보 대표이사 겸 발행인은 “말과 글의 원천기술인 문학이 계속해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중앙일보가 힘 닿는데까지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시상식은 평론가 조강석씨가 사회를 봤다.

시인 김혜순·최정례·김기택·이진명·조용미·이영광·우대식·권혁웅·이민하·이원·김언씨, 소설가 정찬·구효서·임철우·김형경·은희경·방현석·권여선·이기호·윤성희·한강·김애란·최제훈·김성중·김금희·최은영·김엄지씨, 평론가 고형진·윤재웅·황종연·정홍수·엄경희·김미현·김영찬·손정수·백지연·서희원·강유정·양윤의·박인성·양경언·김나영씨, 건축가 김원, 문학과지성사 윤병무 주간, 방송작가 전옥란, 중앙일보 정경민 기획조정담당 등이 참석했다.

글=신준봉·김호정 기자 inform@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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