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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신당동 박정희 가옥의 ‘신이심정’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염태정
내셔널 부데스크

몇 년 전 미국 시카고 외곽 오크파크에 있는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 생가를 간 적이 있다. 작은 마당이 있는 뾰족 지붕의 2층 집이었다. 키 작은 할아버지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헤밍웨이는 이 집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거실·방·살림살이 등이 당시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었다. 인근 헤밍웨이 박물관과 함께 지역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다. 한 해 5000명 이상이 찾는다. 생가·박물관은 ‘오크파크 헤밍웨이재단’이 관리한다. 그를 좋아하고 기념하려는 사람들이 만든 재단이다. 생가와 박물관 안내원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다.

헤밍웨이 생가가 떠오른 것은 지난 1일 발생한 경북 구미의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방화 사건을 보면서다. 40대의 방화범은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를 하지 않아서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방화 이후 충북 옥천에 있는 육영수 여사의 생가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육 여사 생가는 99칸 한옥으로 옥천군이 2011년 37억원을 들여 복원했다. 지난달 29일 열린 육영수 여사 추모제를 앞두고는 ‘부숴 버리겠다’는 협박 전화가 걸려 오기도 했다.

대통령의 생가는 때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 시대를 이끌었던 인물의 기록이고 지역의 주요한 관광 자원이다. 지역민은 자랑스러워하고 외부인은 한번쯤 찾아가 보고 싶은 곳이 돼야 한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오크파크에서 집안 구석구석을 돌며 나를 안내했던 할아버지의 설명 속에는 헤밍웨이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생가 인근 카페의 종업원도 헤밍웨이가 오크파크 출신임을 뿌듯해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자랑스럽기는커녕 없애버리고 싶은 대상이 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이 크다. 그렇다고 방화범을 옹호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는 해서는 안 될 짓을 한 범죄자일 뿐이다. 다만 딸의 잘못으로 아버지의 생가가 불타고 어머니의 생가가 위협받는 상황을 자식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는 궁금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서울 신당동 집은 ‘박정희 가옥’이란 이름으로 복원돼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육군 7사단장이던 1958년 5월부터 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살던 곳이다. 이 집의 응접실에는 ‘神怡心靜’(신이심정·정신은 온화하고 마음은 고요하다)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문구라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당시엔 신이심정의 뜻을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마 지금은 알고 있을 것이다. 쏟아지는 비난에 괴로워하며 대통령은 지금 ‘신이심정’을 간절히 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도 지금 같은 상황이 빨리 끝나고 신이심정의 상태가 되기를 바란다. 어떻게 이룰 것인가. 답은 대통령이 쥐고 있다.


염 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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