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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래퍼 비와이의 꿈

지난 7월이었다.
래퍼 비와이(BewhY,이병윤)와의 인터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5’ 우승을 한 후 딱 일주일 만이었다.

약속 시간에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시간에 함께 기다리던 취재기자의 전화 벨이 울렸다.
통화 후 취재기자가 내게 말했다.
“매니저의 전화인데요. 스튜디오 2km 앞두고 교통 정체로 차가 꼼짝 안 한다고 하네요. 앞에서 사고가 난 탓인가 봐요.”
“그새 매니저가 생긴 건가?”
“사실은 교회 형이라고 하더라구요. 같이 음악활동을 했었나 봐요. 겸사겸사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들었어요.”
“이번에 결승 무대에서 경연을 한 씨잼도 친구이면서 음악 활동을 같이 했다던데….”
“‘쇼미더머니’를 보셨나 보군요?”
“가능하면 휴일에라도 다시 보기로 챙겨서 보는 편이야. 지난주 마지막 경연도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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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가 다소 놀라는 표정이었다.
쉰 줄에 접어든 사람이 젊은이들이 보는 프로그램을 챙겨서 본다고 하니 놀라는 눈치였다.
“웬일로 힙합을 챙겨서 보시는 거죠?”
“사실 선을 긋고 살았어. 내 기준에서 힙합은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음악이었지. 그런데 내 아들은 힙합만 듣고 살더군. 대관절 그게 뭐길래 젊은 애들과 내 아들이 열광하는 지 알아보고 싶더라구. 그래서 작정하고 한번 들어 본거야. 들어 보니 내가 긋고 살았던 선 너머에 그들의 이야기가 있더라구. 그들의 꿈, 희망, 좌절, 분노 같은 삶의 이야기가 들렸어. 응어리를 터트리는 그들의 해방구랄까. 여하튼 그렇게 쭉 들었어도 아직 한마디도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지만 적어도 그들의 이야기가 울림을 주기는 하더라구.“
“그럼 마지막 경연은 어떠셨어요?”
“마지막 경연이 내겐 감동이었어. 특히 9000명 중에 한 명을 뽑는 마지막 결승에 두 친구가 함께 올랐다는 게 영화 스토리 같았어. 어릴 적부터 함께 꿈을 키우다가 꿈의 무대에 같이 서고 또 함께 꿈을 이룬거잖아.”
“저는 비와이라는 친구가 참 남달랐어요. 옷도 다른 래퍼들과 달리 항상 단정하죠. 문신도 하나 안 했잖아요. 그리고 랩뿐만 아니리 음악성도 있고…. 더구나 착한 래퍼로 알려져 있죠.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담은 가사로도 대중을 감동시키기도 하구요. 여하튼 이야기가 궁금한 친구예요. 그래서 경연 끝나자마자 인터뷰를 요청한 겁니다.”

비와이는 전화 통화 후 딱 1시간 만에 나타났다.
내비게이션에 2km를 남겨두었다고 했었는데 그만큼 시간이 걸린 게다.
아마도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차를 돌리든 편법을 써서 더 빨리 왔을 터이다.
그런데 그들은 곧이 곧 대로 온 게다. 2km를 1시간 만에….

허겁지겁 들어와 연거푸 죄송하다고 말하는 비와이와 매니저, 순박한 청년들의 모습이었다.
그간 봐왔던 힙합 뮤지션들과 차림새도 달랐다.
비와이는 흰색티셔츠에 검은 바지, 자로 잰 듯 자른 앞머리, 영락없는 모범생의 모습이었다.
 
교통 정체로 시간을 허비한 상황이니 바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그가 힙합을 하게 된 계기를 말했다.
“주변 친구들이 듣기에 찾아서 들은 게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씨잼을 만나면서 더 깊이 빠졌습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말을 음악으로 한다는 게 매력적이었습니다. 종이와 펜만 있으면 할 말을 글로 쓰고 그게 바로 예술이 되잖아요.”
취재기자가 부모님의 반대가 없었는지 물었다.
“부모님은 공부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라고 하셨죠. 그런데 싫었습니다. ‘세 얼간이’라는 영화 보셨어요? 란초가 친구들한테 말하죠. 무하마드 알리한테 노래시켰으면 알리 인생이 어떻게 되었겠냐고…. 약간 그런거죠. 비와이한테 다른 일 시켰으면 지금 비와이는 없었겠죠.”

그는 부모의 걱정과 달리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중학교 3학년 때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거기서 어떤 공식이 나와요. ’생생하게 꿈꾸면 이뤄진다’는 공식이요. 그런데 그때 저는 꿈조차 없었습니다. 꿈을 이루려면 꿈이 있어야 하잖아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받은 적성검사에서 추천 직업이 음악가, 프로듀서, 화가 같은 예술가가 나왔어요. 그래서 확신을 했어요. 이건 신이 주신 주신 꿈이라고….그 이후로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그는 ‘DAY DAY’라는 곡의 가사에 ‘소망과 두려움이 내 안에 공존했을 때’라는 가사가 있다고 했다.
그것이 음악을 하고 싶었으나 두려워 엄두도 못 냈던 자신의 이야기라고 했다.
그 가사의 거짓말쟁이는 또한 바로 자신이었다고 했다.
음악은 잘생긴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라고 핑계를 대며 스스로를 속이던 자신이라고 했다.

그는 꿈이 생긴 후 스스로 피아노를 배웠다고 했다.
“엄마가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었어요. 엄마가 억지로 배우라고 했는데 싫어서 안 했어요. 억지로 시키는 거 진짜 못하거든요. 음악을 하고자 하는 꿈이 생기니 하고 싶은 거에요. 그래서 재밌게 배웠어요.”

그는 9000 대 1의 경연에서 우승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어릴 적 꿈을 다 이루었다고 했다.
그 꿈이 신념과 신앙,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로 음악을 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다른 꿈을 이야기 했다.

“미국 진출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아직은 한국에서도 슬슬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지만 먼 훗날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10년 뒤 그때는 빌보드 1위, 그래미상을 받고 싶어요. 그런 꿈꾸고 있습니다.”

그저 꿈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확신에 찬 듯 당당하게 말했다.
단지 허세로만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도 힘주어 말했다.
이것은 그의 경험에서 나온 확신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때 꿈꾸는 것조차 두려워했던 소년이었다.
그러다 갖게 된 꿈, 천신만고 끝에 이루어내었다.
그러니 그는 스스로 이미 알고 있는 게다.
꿈은 꾸는 자의 몫이라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가 꿈 이야기를 덧붙였다.
“힙합 레이블 일리네어 레코즈가 돈 잘 번다고 자랑하는 랩을 해서 논란이 됐지만 제겐 영향을 줬습니다.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그들의 솔직한 랩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적어도 이런 희망 가졌으면 합니다. 비와이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는 희망이요”

이건 꿈조차 없었던 한 소년이 이젠 누군가의 꿈이 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는 친구인 씨잼과 함께 ‘BewhY’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행동, 음악, 표현 등 모든 것을 이유 있게 하자는 의미라고 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꿈이 되자고 하는 것’ 또한 ‘BewhY’의 존재이유일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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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