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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3. 애이불비 애이불상 (2)

현감은 술잔을 한 순배 더 돌렸다. 매창은 술대를 놓지 않았다. 유희경은 매창의 도도한 이마에 눈길을 붙박인 채 곡조에 귀를 열었다. 거문고 소리는 낮잠 자는 아이에게 부쳐주는 부채 바람처럼 부드러워졌다. 대나무 숲을 드나드는 서늘한 바람결과 바람 소리였다. 그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유희경 마음의 여러 갈래를 굽이치며 돌아다녔다. 높은음은 낮은음을 끌어올리고 낮은음은 높은음의 가파른 기를 꺾어 넘실넘실 서로 소리의 길을 터주었다. 옆에서 수작을 거는 듯 높은 소리와 낮은 소리가, 들숨과 날숨이 저들끼리 장단을 주고받았다. 장다리꽃 빛깔의 옷소매가 현을 스치는 소리마저 배경음으로 그만이었다.
 
“오오, 이 일을 어찌할꼬. 으음.”
 
유희경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북채로 머리를 얻어맞기라도 한 듯 멍한 표정이었다. 이윽고 그의 눈길이 매창의 이마에서 거문고 쪽으로 내려왔다. 자신이 갖고 있다는 걸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예민한 감각이 그의 내부에서 되살아났다. 작은 것을 알아보고 작은 것에 마음을 주는 섬세함. 모든 틈에서 풀이 자라고 모든 결에서 숨이 나온다는 것을 아는 감각이다. 오감의 속살 같은 것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말이다. 그 감각이 난데없는 부끄러움을 이끌고 등장한 것은 속살처럼 남에게 쉽게 내보이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스무 살이라고 했던가. 저 어린 여인은 가슴에 무엇을 품고 있기에 세상의 깊은 시름을 알아버린 얼굴로 이토록 깊고 진한 곡을 가벼이 사뿐히 탄주할 줄 알까? 미색을 뽐내지도 않고 살가운 교태도 없이 담담히 저 홀로 우뚝 서 있구나. 제 속에 움튼 것들을 힘차게 밖으로 솟구치게 하는 저 힘을 당할 사내 몇이나 될까?’
 

유희경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 같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 수컷의 숨과 수컷의 피와 수컷의 땀이 그의 몸속에서 마구 몸을 뒤틀고 있었다. 매창은 술대 든 손을 멈추고 허리를 곧게 폈다. 몰아쉬는 가쁜 숨을 따라 앞가슴이 위로 솟았다가 내려왔다.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거문고를 무릎 아래 내려놓고 술상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숨을 한 번 길게 내뱉은 뒤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유희경은 술병을 손에 들고서 술잔 채워주는 것도 잊고 매창의 옆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보게 촌은, 그만 정신 차리게. 낯빛이 아주 허옇구먼.”
 
“어어, 제가 그랬사옵니까? 민망합니다, 대감.”

 
유희경은 숱진 수염을 쓸며 헛기침을 했다. 현감은 그의 무안해하는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깔깔댔다. 두 사람은 장난꾸러기 애들처럼 걸림 없이 맘 놓고 유치해졌다.
 
“천하의 유희경도 매창 앞에서는 별수 없구려. 열 명의 미녀가 눈앞에서 옷을 벗는다 해도 꿈쩍도 안 한다는 자네 아닌가. 그 수절이 오늘 절단 나는 걸 내 한번 보고 싶네. 그래야지, 모름지기 그래야 사내지. 사랑스러운 여인과 아름다운 곡조 앞에서 속이 울렁거리지 않는 사내가 어디 제대로 된 사낸가. 모르긴 해도 아마 자네의 정신이 홀랑 빠져나갔을 게야. 내가 알지. 어떤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다 한들 저런 거문고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이 동리 근방에서 저 소리에 심장을 떨어뜨린 인사들이 웬만한 산 하나는 이룰 걸세.”

 
“제가 바쁜 한양 살이 하느라 음악을 가까이할 짬이 없었사옵니다. 오랜만에 귀한 거문고 소리를 듣다 잠시 정신을 놓았나 보옵니다. 너른 아량으로 딱하다 여겨주시오, 대감.”
 
“저를 앞에 앉혀 놓고 이리들 놀리시면 손이 떨려서 더는 거문고를 타지 못하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매창이 가로막았다. 매창은 자신의 얘기보다 유희경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무슨 일을 하며, 무슨 생각을 하며, 무엇을 그리며 사는 사람인지 궁금했다. 만난 지 몇 시간 안 됐지만 그를 많이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수록 더 알고 싶었다.
 
“아, 우리가 그랬는가? 그럼 얘기는 이제 그만하고 내 술이나 한잔 받게나.”
 
유희경은 서둘러 매창의 술잔을 채워주었다. 그녀는 두 손을 포개 공손히 술을 받았다. 유희경은 그녀가 술잔을 입술 가까이 가져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매창은 술을 한 모금 입안으로 흘려 넣은 다음 그의 눈길을 마주 바라보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는 건 상대의 눈이 말하고 있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 벗들과 떨어져 이 멀리 호남 지방까지 내려왔을 때 얼마나 외롭게 지냈는지 아는가? 시를 나눌 벗이 있나, 웅숭깊은 대화를 할 사람이 있나, 술맛을 아는 친구가 있나, 그 모든 걸 이 매창이 한꺼번에 해결해주었다네. 내게는 더없이 고마운 사람이지.”
 

현감의 말에 세 사람은 무슨 뜻인지 충분히 알겠다는 듯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주고받았다. 물설고 땅 설은 곳에서의 외로움은 부임하는 현감마다 하소연하는 고통이다.
 
“과찬의 말씀이옵니다. 심심파적 삼아 한 곡 올리는 일을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러워서 낯을 들 수가 없습니다. 대감의 방문을 기다리고 늘 감사한 마음을 갖는 사람은 오히려 저였사옵니다. 저의 짧은 문자 속을 탓하지 않으시고 대화 상대로 삼아주시어 언제나 감읍해 하고 있지요. 어느 누가 미천한 기생을 상대로 문자를 나누겠사옵니까?”
 
현감은 매창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두 사람의 잔이 넘치게 술을 가득 채워주었다. 유희경이 잔을 받아들며 옆에서 한 마디 더 거들었다.
 
“허허, 그대의 말은 내가 들어도 빈말일세. 이분이 어디 아무나 칭찬하는 분이신가? 입이 맵기로 소문난 분이지. 대감, 참으로 미쁜 일이옵니다. 저더러 꼭 한번 들르라 하신 말씀의 속뜻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저는 지난번 부탁하신 친지의 장례 일을 도와준 것에 대한 답례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이런 횡재가 기다리고 있다니 제가 도리어 큰 은혜를 입고 말았사옵니다. 진정 대감이 부럽습니다. 한양에도 이런 여인 하나만 있다면 저도 사는 일이 그리 팍팍하지만은 않을 터인데.”
 
유희경은 서경덕 문하의 남언경에게 상례를 배운 덕분에 그 분야에서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정통했다. 한양의 내로라하는 사대부가는 물론 왕실에서도 누가 죽으면 제일 먼저 그를 불렀다. 그를 믿고 모든 일을 주관하도록 맡겼다. 양반이든 천민이든 시신을 염하고 장례절차를 도와주는 일로 생계를 이었다. 현감도 멀리 지방에 내려와 있어서 큰댁의 상례에 손을 보탤 수 없는 처지라 유희경에게 연통을 넣어 부탁을 한 것이다.
 
“한양이라. 한양에는 없는 것이 없다고들 하지만 진짜배기는 이런 곳에 박혀 있는 법이지. 자네도 괜히 한양에서 매창 같은 여인 만나리라는 큰 꿈은 꾸지 말게. 거문고 한 곡조 제대로 듣고 싶거들랑 부안으로 내려오면 되지 않겠나. 내 언제든 단단히 준비하고 기다림세. 나도 일이 고달픈 날은 발이 절로 이리로 향한다네. 저 거문고 소리만 들으면 세상 시름 다 잊게 되지. 어릴 때 어머니가 배 문질러주며 부르던 자장가 소리 같지 않은가?”
 

현감은 헌걸차게 웃으며 긴 대답을 했다. 매창은 술잔을 들어 두 사람을 향해 잔을 살짝 들어 올려 인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정담과 술잔이 오가는 사이 어느새 어스름을 지나 밤이 되었다. 창호지 문에 마당의 매화나무와 산당화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매창은 일어나 촛불을 밝혔다.
 
“거문고 연주에 보답도 할 겸 해서 모자란 재주나마 시 한 수 지어 올리겠사옵니다.”
 
“어허, 이거 촌은이 절로 시심이 솟아나나 보구만. 어디 한번 들어봄세.”
유희경은 소년처럼 부풀어 오른 기대가 가슴을 채우고 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다음에 일어날 장면들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앞에 놓인 술상도 거문고 연주도 두 뜨거움이 만날 미래의 그 순간 앞에서는 식은 밥에 불과했다. 의미란 그런 것이었다. 갈급한 의미 앞에서 느긋한 의미는 초라했다. 그녀가 그의 술잔에 술을 따르는 동안 그의 눈길은 그녀의 손끝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 몰랐다. 자신의 눈동자에서 끈끈한 진액이 흘러나와 그녀의 손을 친친 감는 상상을 했다. 유희경은 술을 한 모금 입에 넣고 입안을 적신 뒤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한 수 읊었다.

일찍이 남쪽 땅의 계랑이라는 이름 들었는데
글재주와 노래 솜씨 한양까지 자자하네
오늘 만나 진면목 대하고 보니
선녀가 떨쳐입고 지상으로 내려온 듯하네

 
계랑은 매창의 어릴 때 이름인 계생의 애칭이다. 현감은 유희경이 한 구절 한 구절 외울 때마다 고개로 허공을 찧고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장단을 맞추었다. 시를 다 읊고 나서 유희경은 어찌 들었냐고 물어보는 눈빛으로 매창을 쳐다보았다. 말없이 듣고만 있던 매창은 대답 대신 빙그레 웃었다. 의미 있는 표정으로 그를 잠깐 바라본 다음 목을 가다듬었다. 노래하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시를 읊었다.
 
내게는 오래된 거문고 하나 있다오
한번 타면 온갖 정담 다투어 생기는데도
세상 사람들이 이 곡을 아는 이 없으나
임의 피리소리에 한번 맞춰보고 싶다오

 
유희경의 퉁소 솜씨가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를 듣고 빗대서 지었다. 퉁소 소리는 워낙 깊고 울림이 커서 용을 부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가 부는 퉁소라면 남다를 것이었다.
 
“어이쿠, 내가 미안하게 됐네. 오늘은 미처 퉁소를 챙기지 못했네.”
 
그 말을 하면서 유희경은 귀까지 붉어졌다. 자신을 향해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주는 여인을 앞에 둔 사내의 천진한 떨림이 그의 얼굴에 번져 있었다. 남자와 여자의 일, 음과 양의 이치는 끌림에 있다. 끌리고 당기고 합쳐지는 속에 생명의 기운이 샘솟는다. 현감은 뿌듯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퉁소가 없어 아쉽지만 이번에는 내가 자네 시에 대한 답을 하면 어떤가?”
 
유희경은 흡사 물 만난 고기였다. 시심이 동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제 속에서 용틀임하고 있는 시를 빨리 내보내고 싶어 안달이었다.
 
“어허, 이거 내가 복이 터졌네그려. 매창아! 참 재미지지 않느냐? 우리 세 사람이 이리 죽이 잘 맞을 줄은 몰랐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구나. 이거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어 뭐가 터져도 곧 터져버릴 것 같다. 그런데 내 가슴이 왜 이렇게 떨리는 것이냐?”
 

유희경은 현감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매창의 얼굴을 아련한 눈길로 바라보며 한 마디 한 마디를 귓속말이라도 하듯 속삭이는 말투로 건넸다.
 
내게 신비의 미약이 있어
찡그린 얼굴도 고칠 수 있는데
금낭 속 깊이 간직한 이 약을 모두
사랑하는 그대에게 아낌없이 주리라
 

이보다 더 적극적인 고백이 또 있을까. 은근하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감정을 담아냈다. 시를 듣던 현감이 손바닥을 세게 마주치며 큰 소리로 박수를 쳤다.
 
“시의 선경일세. 두 사람이 시를 주고받는 모습에 색기가 물씬 묻어나는군그래. 진진하고도 물컹하구나. 초희 왕과 무산 신녀는 아침에 구름이 되고 저녁에 비가 되어 사랑을 나눈다는 얘기가 있지 않나. 그들도 자네들만큼 끈끈하진 않을 것 같네.”
 
매창은 현감의 잔을 채워주고자 술병을 들었으나 벌써 비어 있었다. 찬모를 불러 한 병 더 청하고 유희경에게 한양 얘기를 들려달라고 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다. 한양이라는 말이 나오자 그의 표정이 굳었다.
 
“한양 얘기 들려줄 게 뭐가 있겠나. 이 궁색한 중노인을 보면 모르겠는가?”
 
이것이 유희경의 성정이었다. 자신의 부끄러운 점 때문에 비굴해지기보다는 아예 위악적인 모습으로 맞섰다. 비감스러운 자신의 처지를 그리 표현한 것이다. 마흔여덟의 나이에 홀몸으로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며 끼니만 겨우 이을 정도로 궁핍한 살림을 꾸려나갔다. 세상사와는 거리를 둔 채 시를 좋아하는 평민, 천민, 사대부 등 신분을 가리지 않고 어울리며 조용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조용하지만 결코 조용할 수 없는 술잔 속의 태풍 같은 나날들이다. 매창은 그의 흔들리는 눈빛을 알아보고 얼른 자세를 바꾸었다.
 
“한양에 돌아다니는 나으리들의 시는 저 같은 시골 여자가 탐하기엔 아깝다는 말처럼 들리옵니다. 제 귀가 그리 어둡지는 않사옵니다.”
 

“무슨 그런 말을 하는가. 자네와의 귀한 시간을 그런 허튼소리들로 허비하고 싶지 않다는 뜻일세.”
유희경은 목소리를 고르며 자신을 변명하고자 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비탄이 묻어났다. 복사꽃처럼 달아오르던 얼굴색도 차갑게 식었다. 현실을 환기시키는 말 한두 마디에 그토록 못 견뎌하다니 아픔이 깊은 사람이었다.
 
“그러하오면 그 얘긴 그만두고 거문고 한 곡조 더 올리겠사옵니다.”
 
“고마우이. 사내로 하여금 오르지도 못하면서 위만 바라보고 살도록 하는 곳이 한양 땅이라네. 그곳 얘기가 뭐 궁금할 게 있겠나? 오늘 밤은 술이나 마시며 음악이나 즐기세. 가난하고 외로운 사내에게 던지는 덕담 한마디 같은 곡으로 부탁하네.”

작가소개
1964년 전북 익산 출생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 졸업.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저서로는 소설집『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On the road』, 에세이집『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 『소설수업』, 번역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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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사람들
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