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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더이상 무덤에 침 뱉고 싶지 않다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박근혜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은 사실상 끝났다. 단지 최순실이나 문고리 3인방 탓만이 아니다. 문제는 지금 국민들이 박 대통령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 정치적 고질병은 오래됐다. 윤창중·윤진숙 등 해괴한 수첩인사, 세월호와 메르스 사태 때의 무능함에 국민들은 절망했다. 정치판의 유승민 찍어내기와 이한구의 공천학살을 보며 좌절했다. 국민들은 장관과 수석비서관들이 ‘여왕님’의 유체이탈화법을 받아 적는 것을 보며 체념했다. 게다가 박 대통령은 툭하면 화풀이로 검찰과 국세청을 동원해 망신을 주지 않았는가. 이러니 지지율이 4%다. 뒤늦게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간들 동정심이나 보수 결집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화 난 촛불군중이 청와대를 포위해 “정리해고 대상자가 명예퇴직 웬 말이냐”고 외친다.

 정치적 계산을 마친 주요 정파들은 각자의 카드를 내놓고 있다. 얼마 전까지 문재인과 안철수는 “명예로운 퇴진을 보장하겠다” “질서 있는 퇴진의 길을 완전히 닫아선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탄핵과 즉각 하야로 완전히 돌아섰다. 두 사람은 탄핵을 꽃놀이패로 보기 시작했다. 일단 진보 진영과 호남 민심이라는 집토끼를 지키기 위해서도 촛불 민심에 올라타는 게 유리하다. 탄핵이 부결돼도 마찬가지다. 촛불 역풍으로 보수 진영이 무너지면 대선 승리가 손쉬워진다. 문재인은 “(조기 대선을 하면) 내가 유리할 수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상식”이라고 자신한다. 안철수도 길거리 ‘하야 서명’을 밀어붙이고 있다. 새누리당이 괴멸돼야 중도보수층을 흡수해 유리한 대선 구도로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폐족(廢族) 운명인 친박들은 오로지 생존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 서청원·최경환·이정현·윤상현 등은 결사적으로 탄핵을 막고, 새누리당 당권도 최대한 유지하려는 전략을 짜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치보복과 몰락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이다. 연말 검찰 인사가 끝나면 더 이상 신세 질 것도 기대할 것도 없어진 검사들이 청와대와 친박을 향해 칼을 휘두를 게 분명하다. 이미 대우조선해양, 엘시티, 인턴 채용 등 검찰이 손에 쥔 사건들은 무궁무진하다. 오죽하면 최근 탄핵 반대 리스트에 오른 친박 의원 16명이 항의문자 사태로 전혀 답신을 안 하다가 “형님, 엘시티 건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전화 주십시오”라는 네티즌의 낚시 문자에는 재빨리 응답 전화가 온다고 할까. 친박의 진짜 속셈은 수사 칼날을 피해 생존하는 것이다.

 지금 가장 고민하는 쪽은 새누리당 비박계다. 비박계는 탄핵의 캐스팅보트를 쥔 동시에 정치생명의 기로에 서 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을 향해 “7일 오후 6시까지 퇴진 시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으면 탄핵하겠다”는 최후 통첩을 보냈다. 비박의 ‘4월 퇴진-6월 대선’은 현재 가장 합리적인 대안이다. 비박은 그나마 친박과 여권 재구성을 통해 정치 생존을 도모해야 할 운명공동체이기에 최대한 시간을 벌기 위해 이런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만약 박 대통령이 4월 퇴진을 거부하면 그야말로 파국이다. 탄핵안이 통과될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촛불시위는 민란 수준으로 폭발할 것이다. 만약 국회에서 부결되면 비박의 집단 탈당으로 새누리당은 산산조각 나게 된다. 헌법재판관들도 섶을 지고 민심의 불바다에 뛰어들지 의문이다. 어쩌면 그 이전에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완벽히 사망할지 모른다. 국정조사와 특검 과정에서 판도라 상자인 정호성 비서관의 녹음 파일만 공개돼도 박 대통령은 끝장날 것이다.

 지난 주말 신문들을 보면서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진보 쪽 신문들은 “촛불을 믿고 가라” “정치가 못하면 시민이 한다”는 제목을 시커멓게 달았다. 촛불로 직진해 대통령을 끌어내고 빨리 대선으로 가자는 것이다. 그 밑에는 야당의 조기 대선 전략이 어른거린다. 반면 보수 쪽 신문들은 박 대통령의 4월 퇴진에 한 자락 기대를 걸고 있다. 어느 쪽이든 운명은 사흘 안에 판가름 난다. 부디 먼 훗날 우리의 아들·딸이 박정희·박근혜 무덤에 침을 뱉지 않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으면 한다. 이 땅의 정치 명문가다운 아름다운 뒷모습을 기대한다. 고령 박씨 가문을 향한 마지막 부탁이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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