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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천장이 감동 주는 까닭

1 로마의 판테온 신전은 돔의 정점을 둥근 모양으로 뚫어 빛이 들어오게 설계돼 신성스런 느낌을 준다.



건축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다. 아마도 인간이 하는 행위 중에서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많은 돈이 들어가니 그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건축물은 정치·경제·기술·사회·문화·예술 등 당대의 여러 분야 사람들을 반영하는 결정체이다. 건축물 중에서도 짓는데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은 ‘돔’이다. 돔은 둥그런 천장모양의 지붕을 말한다. 대부분의 유럽 교회의 꼭대기 지붕이 돔으로 지어져있다. 우리나라에서는 8세기 경 통일신라시대 때 만들어진 석굴암이 대표적인 돔 건축물이다. 돔 건축에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엄청난 양의 목재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돔을 만드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구조 벽체를 세운다. 그 다음 돔이 위치해야하는 아랫부분에 목구조로 돔 모양의 아치를 만든다. 돔은 아치가 180도 회전한 모양이다. 돔 모양의 목구조 위에 돌이나 콘크리트로 돔을 만든다. 석굴암은 돌로 만들어졌고, 로마의 판테온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구조다. 돔이 완성된 후 목구조를 철거한다. 그런데 돔은 보통 엄청나게 높은 천장고를 가진다. 판테온은 43m, 성베드로 성당은 100m가 넘는다. 그 높이만큼 목구조로 틀을 만들어야하니 엄청난 많은 목재가 소모되는 것이다.



[도시와 건축] 돔

 

[브루넬레스키 두 겹 돔 디자인 발명]

 

3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는 목재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기술이 사용됐다.



15세기 피렌체에 두오모성당을 만들 당시엔 목재가 무척 귀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피렌체는 성당의 돔을 만들 때 목재 사용을 줄이는 방법을 고안해 내라는 공모전을 열었다. 천재건축가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9~1446)는 보통 하나의 뚜껑으로 만들어진 돔을 두 겹으로 만들고 그 속을 비우는 새로운 디자인을 발명해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목재와 건축 재료의 사용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 건축가 브루넬레스키는 지름 43m, 높이 160m짜리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지을 재료를 운송하기 위해 특수한 배도 디자인했다. 이 배 디자인이 역사상 최초의 특허를 받은 대상이었다니 브루넬레스키는 진정한 천재인 것이 틀림 없는 듯하다.



 

4 두오모 성당의 돔은 두겹으로 만들어진 이중 구조다. [중앙포토]



건축사에서 최초의 돔은 기원전 13세기 그리스의 뿌리인 미케네 문명 때 지어진 ‘아트레우스의 보고’라 불리는 아가멤논 왕의 무덤이다. 이 무덤은 위에서 보면 경주의 무열왕릉처럼 둥그런 흙더미모습이다. 그런데 그 흙더미 안에는 돌로 만들어진 돔이 숨겨져 있다. 건축적으로는 무열왕릉보다는 석굴암에 더 가까운 모습이다. 그런데 석굴암보다 무려 2000년이나 먼저 지어졌다. 이 돔은 위에서 보면 완전한 원의 모습을 띠고 있고, 옆에서 봤을 때는 고깔처럼 위로 좀 솟은 모습을 띤다. 이 무덤을 돔의 모양으로 만든 이유는 인생의 마지막 여정이 천국하늘 같은 둥근 천정아래 아늑한 공간의 중심에서 쉬라는 뜻에서 연유했다고 한다. 아트레우스의 보고 이후 둥근 천장은 천상의 공간을 뜻하는 공간디자인이 되었다. 1300년 정도 지난 후 로마의 판테온에서 또 한 번 나타난다. 판테온은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뜻이다.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을 짓기 위해 원형 평면과 원형의 단면을 품고 있는 공간으로 디자인되었다. 원은 그리스 유클리드 기하학에서 유일하게 반지름 값 하나 만으로 그릴 수 있는 도형이다. 삼각형이나 사각형의 도형을 그리려면 두 개 이상의 값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의 값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원은 완전한 도형으로 인식이 되었다.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은 그런 이유에서 평면과 단면에 원을 품고 있다. 그러나 판테온에는 이전에 없었던 혁신적인 디자인이 있다. 그것은 돔의 가장 꼭대기 부분에 구멍이 나있는 것이다. 구조적으로 돔의 꼭대기 부분은 돔 구조체에서 가장 힘을 많이 받는 부분이다. 모든 무게가 그 중심으로 쏠리게 되는데 경이롭게도 그 부분에 아무것도 없이 비우고 빛이 들어오게 한 것이다.



판테온에서 선보인 돔은 수백 년 후에 로마가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로 수도를 옮긴 후 지은 ‘하기아 소피아 성당’에서 더욱 발전한 모습을 띤다. 하나의 돔에서 더 발전해서 맨 위에 하나의 돔을 두고 그 아래에 세 개의 돔이 받치고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하나의 돔은 유일신 하나님, 아래에 있는 세 개의 돔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디자인이다. 서양의 돔 건축은 계속 발전해 더욱 복잡해지는 형태로 발전을 거듭했다. 하지만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어느 시대나 돔 건축은 그 시대 최고의 권력자가 소유했다는 것이다. 그 규모가 장대하고 돔 아래의 실내공간은 너무나 대단해서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보더라도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니 오막살이에 살던 당시의 평민들이 보기에 돔 건축은 얼마나 경외스러운 공간이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종교의 권위를 보여주기에 돔 건축처럼 좋은 방식은 없었을 것이다. 때로는 교황의 건축물에, 때로는 왕을 위한 건축물에 돔이 사용되면서 권력자의 권위를 강화시켰다. 현대에 와서 주목할 만한 돔 건축이 하나 만들어졌다. 통일 독일의 하원의사당 건축물(라이히스탁)이다.



 

2 베를린 하원의사당(라이히스탁)의 유리돔은 투명한 정치를 상징한다. 김경빈 기자·[중앙포토]



 

[승전국 영국 건축가에게 설계 맡긴 독일]

베를린 의사당 돔의 역사는 1871년에 시작된다. 당시 비스마르크 재상이 이끄는 독일은 주변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전쟁보상금을 받았다. 독일은 그 돈으로 제국의회 의사당을 건축했다. 이후 그 건물은 2차 세계대전 중 폭격으로 철골만 앙상하게 남게 되었다. 히로시마 원폭에 살아남은 앙상한 돔이 일본의 패망을 상징하듯 베를린 의사당의 앙상한 돔의 모습은 독일 2차 대전 패전의 상징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가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후 이 의사당은 리모델링을 통해 부활했다. 놀랍게도 현상설계를 통해 선정된 건축가는 노먼 포스터라는 영국건축가다. 알다시피 독일은 2차 대전에서 영국에 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세계대전 폭격으로 무너진 자국의 의사당 건축을 영국건축가에게 맡기는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였다. 만약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을 일본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다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독일은 냉정하게 최고의 설계안을 낸 영국건축가에게 디자인을 맡겼다. 그뿐 아니다. 지금도 하원의사당에 가보면 2차 대전 당시 소련점령군이 벽에 한 낙서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입주한 의원들이 지우자고 항의했지만 건축가가 남겨두라고 해서 설계자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결정했다. 과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독일인들의 노력은 참으로 높게 평가할 만하다.



베를린 하원의사당 디자인이 특별한 것은 돔이 유리로 만들어져있다는 점이다. 유리 돔은 투명한 정치를 상징한다. 그리고 그 돔의 내부에는 사람이 걸을 수 있는 램프가 돌면서 올라간다. 방문객들은 램프 위를 걸으면서는 두 가지를 볼 수 있다. 유리 돔을 통해서 베를린의 전경을 360도로 감상할 수가 있고, 의원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게 돼있다. 돔이 전망대 겸 의원 감시탑이 된 것이다. 형태는 과거 권위적인 돔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건축인 것이다. 돔 건축은 기원전 13세기 미케네 왕의 무덤에서 시작해 21세기 국민의 권력을 상징하는 돔으로 진화되어왔다. 하지만 3000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동안에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왕을 위한 무덤이건, 신을 위한 신전이건, 민주주의의 상징이건 상관없다. 이들 모두는 중력을 이겨내기 위한 인간의 노력과 정신의 상징이다. 그래서 돔 건축은 언제 봐도 자연과 인간의 팽팽한 줄다리기의 긴장감이 주는 감동이 있다.



 



 



유현준홍익대 건축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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