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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마장 500곳, 2만원으로 즐기는 곳도 많은데 …

승마는 바른 자세를 갖게 해 주고 정서 안정에도 큰 효과가 있다. 지난해 8월 제주시 홀스타승마장에서 어린이들이 승마 교육을 받고 있다.[사진 렛츠런파크제주]



말(馬) 때문에 말(言)들이 많다. 말을 탄 여성 한 명이 온 나라를 들쑤셔놨다. ‘최순실 게이트’는 최씨의 딸 정유라(20)의 ‘공주 승마’ 소동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정유라가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입학하고 성적을 받는 과정에서 비리가 튀어나왔고, 이게 최순실 게이트의 뇌관이 됐다.



[2016 스포츠 오디세이] ‘정유라 폭탄’ 맞은 승마·말산업

정유라가 독일에서 구입한 말 ‘비타나V’는 10억원을 훌쩍 넘는다고 한다. 광화문광장의 촛불집회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부모 잘 만나 10억짜리 말 타면 이대도 가는 나라”라며 ‘헬조선’의 현실에 절망한다. 정유라의 사촌언니 장시호(37·구속)도 말을 타고 1998년 연세대에 입학했다. 그의 고교시절 성적표에는 ‘가(可)’가 쫙 깔렸다.



안 그래도 ‘승마=귀족 스포츠’ 공식이 있었다. 그런데 정유라 때문에 승마인은 무슨 범죄집단에 속한 것처럼 돼 버렸다. 경기도의 한 승마장 인근 호프집에서 승마복장을 한 교관들이 손님들한테 몰매를 맞을 뻔 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말이 무슨 죄인가. 최순실이 딸의 대학입학과 출세를 위해 ‘승마’를 택한 게 문제였다. 최순실은 심판을 매수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고, 그러면 딸이 ‘승마계의 김연아’가 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까지 바라볼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최순실 쓰나미’로 승마와 말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내용들이 많다. 이참에 ‘말 타는 사람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700kg 말 씻기고 마방에서 함께 자기도]

사람들은 “말값이 그렇게 비싼가”하고 놀란다. 말값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100만원대에 살 수 있는 말이 있는가 하면, 올림픽에 나가는 명마는 100억원을 넘는 것도 있다. 600종이 넘는 말 중에서 경마용으로 개량된 품종을 서러브레드(Throughbred)라고 한다. 서러브레드 수말 중 뛰어난 성적을 올린 '선수'는 은퇴한 뒤 씨수말로 변신한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씨수말의 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1회 교배료가 5억원을 넘는 말도 있다. ‘명마(名馬)의 정액 한 방울은 다이아몬드 1캐럿과 맞먹는다’는 얘기도 있다.



국내 엘리트 승마 선수들이 타는 말은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에서 수입한다. 가격은 5000만원∼2억원 선이다. 정태운 전주기전대 마사과 교수는 “말의 능력에 따라 가격에 큰 차이가 난다. 장애물비월의 경우 80㎝를 뛸 수 있는 말이 3000만원이라면 120㎝를 넘을 수 있는 말은 7~8배까지 가격이 뛰어 오른다”고 설명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우사인 볼트나 축구를 가장 잘 하는 호날두 선수의 ‘몸값’이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김기천 씨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호스메이트 승마장 대표다. 개인사업을 하던 그는 45세에 승마에 입문해 장애물비월 국가대표를 지냈다. 그는 “엘리트 선수는 대부분 개인 말을 갖고 있다. 보통은 선수를 가르치는 조교들이 해외 나가서 말을 골라 온다. 말값에다 관세·수수료 등이 붙는다”고 설명했다.



승마 특기자로 대학을 가려면 얼마가 있어야 할까. 김 대표는 “학부모들로부터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10억원 투자할 수 있으면 선수를 시키고, 아니면 취미로 하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1억원 안팎의 말이 두세 필은 있어야 하고, 말을 먹이고 훈련시키는 비용, 레슨비, 한해 20여차례 국내 경기와 해외 경기의 이동 경비 등 모든 게 돈이다.



경기도 이천에서 스티븐승마클럽을 운영하고 있는 박윤경씨는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다. 그는 “엘리트 스포츠로 보면 승마는 돈이 많이 드는 종목인 건 맞다. 하지만 레저나 산업의 측면에서 보면 대중적인 면이 있다. 해외에서도 스폰서를 받거나 펀드를 모아 더 좋은 말을 구입해 올림픽 등에 출전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렇지만 승마 선수 모두가 귀족은 아니다. 애완견 한 마리를 관리하는 것도 힘든데, 700kg 넘는 말을 그냥 올라타는 게 아니다. 말을 씻기고 닦고 치료하고 마방 관리하고, 심지어 아프면 마방 안에서 같이 잔다. 하루도 운동을 빼먹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을 시킬 수도 없다. 혹독한 훈련을 못 견디고 중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승마 종목은 장애물비월·마장마술·종합마술로 나뉜다. 정유라의 종목은 마장마술이다. 장애물비월이 육상의 허들 같은 거라면, 마장마술은 피겨스케이팅과 비슷하다. 마장마술은 말과 함께 호흡을 맞춰 걷고 뛰고, 각종 동작들을 수행해 정확도와 아름다움을 평가받는다. 심판 5명이 점수를 매기는 거라 판정이 주관적이고, 말썽도 많다. 김기천 대표는 “엘리트에서 장애물비월과 마장마술의 비율은 9대1 정도다. 마장마술은 판정 관련 말썽이 많아 잘 안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장애물비월은 최고 120cm 높이의 장애물을 말과 기수가 호흡을 맞춰 뛰어넘어야 한다. 매우 역동적이지만 사고도 많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김형칠 선수가 장애물을 넘다 넘어진 말에 깔려 사망하는 비극도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경쟁하는 엘리트 승마는 수준에 따라 다섯 등급(D-C-A-S-S2)이 있다. 초-중-고-대학-일반으로 나뉘는 대회에서 S2 등급에는 출전자가 적어 고등부와 대학부가 합치는 경우도 있었다. 김 대표는 “출전자가 너무 적으면 두 부문을 합쳐서 시상했는데, 언젠가부터 혼자 나와도 55점만 넘으면 금메달을 주는 걸로 바뀌었다. 심판들이 왠만하면 55점 이상 주니까 정유라가 혼자 나와 금메달을 따는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S2 등급에서 5위 안에 들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승마 특기생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지산홀스랜드에서 김동욱 수석교관이 장애물비월 시범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포토]



 

[“말 타면 정서 안정되고 자세 좋아져”]

국내에는 500여개 승마장이 있다. 일본은 1000개, 프랑스·벨기에는 7000개, 독일에는 9000개나 된다고 한다. 말을 빌려서 취미로 승마를 즐기다가 형편에 맞는 말을 사기도 한다. 억대의 말을 소유한 엘리트는 극소수다. 승마는 또한 ‘말산업’이라는 큰 영역의 일부다.



박윤경 대표는 “승마가 올림픽·아시안게임에 있는 이유가 뭘까. 부자들의 놀음이라기보다는 이들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말을 생산하는 거대한 산업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1000만원 이하 말들을 생산하는 농가도 많지만, 외국에는 수십억원짜리 말을 키워내 높은 부가가치를 올리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2011년에 ‘말산업육성법’이 통과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말을 신(新)축산 정책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말은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릴 염려도 없고, 구제역 같은 전염병에도 잘 걸리지 않는다. 이 기사 취재를 위해 농림부 축산정책국에 연락했더니 AI 방역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말이 전염병에 걸려 집단폐사하거나 살처분됐다는 뉴스는 못 봤다.



말은 경주마·승용마 외에도 다양한 용도가 있다. 고기는 육포로 만들어 개 사료 등으로 쓰고, 기름은 화장품이나 비누 원료로 사용된다. 뼈는 관절염 치료 등에 쓰이는 의약품, 가죽은 가방·지갑 등 피혁제품의 원료로 쓴다. 한 마디로 버릴 게 없다.



승마는 참 좋은 운동이다. 동물과 교감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안정을 얻을 수 있고, 바른 자세와 인내심을 갖게 된다. 김기천 대표는 “성격이 급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1년 이상 말을 타면 차분해진다. 마상에서 한 시간 이상 집중하면서 말과 교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아동이나 학교밖 아이들이 승마를 통해 심신이 치료되는 효과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말산업육성법 통과 이후 농림부와 한국마사회가 ‘전 국민 말타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승마 인구가 크게 늘었다. 2만원 정도만 내면 말을 탈 수 있는 곳도 많다. 승마 대중화의 관건은 싼값에 일반인이 탈 수 있는 승용마를 공급하는 것이다. 류원상 마사회 생산육성팀장은 “국내 말 생산 농가 680곳에서 매년 국산 승용마가 1000마리 정도 생산된다. 500만∼3000만원 정도에 거래되는 제주 한라마는 체격이 작지만 체력과 기동성이 뛰어나 호평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경마장에서 퇴역한 서러브레드가 매년 1300마리씩 쏟아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사이즈가 크고 질주본능이 있다. 다루기도 쉽지 않아 사고 위험도 높다. 그런데도 퇴역마들이 워낙 싼값에 승마장으로 공급돼 국산 승용마들이 가격 경쟁력에서 뒤진다. 전문가들은 “퇴역마들을 모아서 순치(길들이기)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 몇 달 동안 재교육을 한 뒤 승용마로 적합한 일부만 남기고 나머지는 자원화(도살) 하는 게 맞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박윤경 대표는 “한라마는 한국형 포니(조랑말)로 적합하다. 최근 일본에서 수입하겠다는 제안이 왔다. 유럽 수출길이 열리면 억대 이상을 받을 수 있다. 유소년 승마 교육이나 대회에서는 포니만 쓸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국형 포니 사업이 힘을 받고 안전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유라는 이화여대에서 퇴학당했다. 최순실-정유라 모녀가 국내 스포츠와 승마계에 분탕질을 한 죄과다. 여기에 편승해 수십억원을 갖다준 기업도 시시비비를 가려야 한다. 그러나 죄 없는 말에게 돌을 던질 일은 아니다. 더구나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말산업이 고꾸라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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