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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를 보여드립니다

갤러리에서 스피커 전시가 열렸다. 1일부터 2017년 1월 31일까지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유국일의 메탈 스피커: 원음 그대로’다. 유국일(50) 메탈사운드디자인 대표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갤러리 대표가 원래 첼리스트인데 음악을 좀 아는 사람이라서….”



스피커 전시는 이례적이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3년 성곡미술관에서 열린 ‘사운드 아트’전에서 ‘내일의 작가’로서 첫 개인전을 했다. 이번 전시는 5년간 기획했다고 했다.



스피커 전시회 여는 유국일 메탈사운드디자인 대표

홍익대에서 금속조형디자인을 전공한 젊은 음악 매니어가 1993년부터 금속 스피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어찌보면 필연이었다. 24년째 스피커를 만들면서 그가 추구해온 것은 ‘있는 그대로의 소리’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유 대표는 지금까지 20종류의 스피커를 만들어 냈고 이중 5종류는 파기했다. 그 과정에서 취득한 기술특허가 8개, 디자인특허가 32개, 국제특허가 1개다. 2013년부터 ‘아스텔&컨(Astell & Kern)’ 고음직 뮤직 포터블 시스템을 개발해온 그는 아이리버를 다시 살려낸 주역이기도 하다. 2014년 AK240이 영국 ‘왓 하이-파이 위너(What Hi-Fi Winner)’에 선정된 것을 비롯, 다양한 AK 시리즈로 권위 있는 디자인 어워드인 독일의 레드닷(Red Dot)과 iF(International Forum)의 디자인 상을 9차례 수상했고,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인 미국 CES에서는 혁신상도 5번이나 받았다. 슈퍼카 부가티에 사운드를 집어넣는 세계적인 명성의 독일 음향 유닛업체 ‘아큐톤(Accuton)’의 소리 장인들은 그를 ‘마에스터’라 부른다.



“제가 디자인한 스피커를 튜닝하기 위해 처음 독일 회사를 방문했더니, ‘웬 옐로 멍키가 왔느냐’는 표정이에요. ‘껍데기만 요란하면 다냐’라고 얼굴에 쓰여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소리가 잘못된 부분을 딱 짚어서 지적하니까 조용히 일어나더니 커피를 타서 제 앞에 공손히 가져다 놓더라고요. ‘골든 이어(golden ear)’라면서. 그 뒤로 독일에 가면 장인들의 집으로 초대 받습니다.”



 

‘수직과 수평’ 시리즈 (2016)

[금속 스피커를 고집하는 이유]

그는 스피커를 금속으로 만든다. 비행기 소재인 ‘두랄루민’을 즐겨 쓴다. 금속을 녹이면 액체 같아서 오히려 가공이 쉬운 면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소리를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다. “개당 200kg을 넘나드는 육중한 몸체인데, 무거운 만큼 진동을 잡아주면서 깨끗하고 정확한 소리만 쭉 뽑아낸다”는 설명이다. 소리가 명확하면 95데시벨이 넘어도 시끄럽지 않다고 덧붙였다.



물론 재질만으로 소리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원음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튜닝 작업이 요구된다. “원래 사람은 소리를 20KHz밖에 못 듣습니다. 그런데 저는 100KHz까지 해놓고 점검합니다. 그래야 소리가 자연스럽거든요. 명확한 소리를 잡기 위해 저는 인간이 구별할 수 없는 0.1데시벨까지 끊습니다. 컴퓨터로만 차이를 확인할 수 있는 단계인데, AK 시리즈가 음질 1등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런 수많은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덕분이지요.”



그렇다면 그가 추구하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 그는 갤러리 VIP룸에 마련된 청음실로 안내했다. 소파 한가운데 앉아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 퀸의 ‘러브 오브 마이 라이프’, 재즈 가수 나윤선의 ‘아리랑’을 차례로 들려주었다. “소리가 어디서 들리나요? 저 뒷쪽 아닌가요? 바로 앞에 서 있는 가수는 보입니까?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은요? 스피커에서는 깊이감과 무대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스피커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어야죠. 소리 그 자체를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소리가 보이게’ 되는 것이죠.”



3년 전 내한한 ECM 레이블의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는 이런 그를 알아보고 따로 불러 “당신의 스피커에서는 이미지가 나온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원래의 소리를 담아두기 위해 그는 항상 귀를 벼린다. ‘황제’ 같은 곡은 지금까지 수천 번도 넘게 들었다. 그렇게 머리에 깊숙이 각인된 소리지만 튜닝을 앞두고는 100번은 다시 듣는다. “튜닝할 때는 전날부터 밥을 굶어요. 배가 부르면 소리가 안 들리거든요. 중간중간 맥주만 살짝 마시는 정도죠. 몸을 최대한 괴롭혀서 신경을 있는 대로 날카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아침부터는 바람소리, 새소리만 듣죠. 그런데 기껏 소리를 맞춰 놨더니 뭔가 틀어지잖아요? 그럼 ‘황제’를 처음부터 다시 들으면서 잡아나가야 되요. 그래서 한번 튜닝할 때마다 4~5kg은 금세 빠집니다. 소리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유성’ 시리즈 (2016)



[원음을 구현한다는 것]

그는 이번 전시에서 새로 만든 메탈 스피커 3점을 내놨다. 시리즈 이름도 ‘혜성(Comet)’ ‘수직과 수평(Horizontal and Vertical)’ ‘셀레네의 말(Horse of Selene)’이다. ‘혜성’은 우주의 별과 우주선을 모티브로 삼았다. 일하다 새벽에 들어가면서 별들과 대화를 하기도 한다는 그는 페가수스나 북두칠성 같은 별자리를 워낙 좋아한다고 했다.



보통의 스피커는 높이를 1m10cm로 표준화 시켜 놓았지만 ‘수직과 수평’은 높이 조절이 가능하다. 그는 이 스피커를 통해 직접 녹음해왔다는 바닷가 파도 소리를 들려주었다. “파도소리를 들으면 왜 마음이 편해지는지 아세요? 아이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 양수에서 듣는 소리거든요. 그야말로 ‘힐링’의 소리죠. 잔향이 비누방울처럼 느껴지지 않나요.”



‘셀레네의 말’은 파르테논 신전 동쪽에 있는 달의 여신이 모는 마차의 말 머리 형상에 착안했다. “소리와 역사는 동일한 주제어라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왜곡 없이 다뤄져야 하죠.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리의 본질을 구현하는 그의 노력은 스피커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일부러 튀는 디자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기 위해 하나하나 다 계산된 것이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표면이 등고선 모양으로 층이 져 있는 것은 소리의 마찰을 막기 위한 것이다. 스피커 주변에 별같이 들어간 부분은 음의 겹침을 걸러주는 디자인이다. 각 면이 대칭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도 음이 엉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가 디자인과 소리가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다.



“스피커를 만들어 온 세월이 쉽지는 않았어요. 갈 데까지 간 적도 있었고요. 음대도, 전자공학과도 안 나온 제가 스피커를 만들어 인정받았다는 게, 뭐 크게 성공했다고 하긴 어렵지만 그렇게 걸어온 길을 좀 자랑하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제가 직설적이에요. 사실 못 됐고요. 싫으면 싫다고, 아니면 아니라고, 바로 말해요. 소리 만드는 사람이 음흉하면 안 되잖아요.” 전시 문의 02-3447-0049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더페이지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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