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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픽션

우리의 상상력은 현실적인 조건들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흔히 벌어지는 꿈조차도 대부분 현실의 조각들이 모자이크된 것이라는 의견이 많은 것을 감안하면 현실의 구속력이 크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연극·영화 그리고 미술이나 음악까지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예술가들은 현실을 베끼기보다는 꾸준히 픽션(fiction)을 만든다. 픽션의 라틴어 어원은 픽티오(fictio). ‘형성하다’는 뜻이고 따라서 픽션은 꾸며내거나 상상력에 의존해 만든 이야기라는 뜻이다. 예술가들은 왜 픽션을 만들까?



그것이 언어든, 움직임이든, 소리든, 영상이든 인간이 예술에 동원하는 도구들이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 인간이 가진 인식의 한계는 너무나 분명하다. 한 마리의 개미가 되었든, 우주가 되었든 일단 인식의 대상이 되면 그것을 통일적으로 인식하고 형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철학적으로, 그리고 물리학적으로 모든 관찰과 측정에 ‘불확정성 원리’가 적용된다. 우리는 관측 대상의 위치와 에너지를 동시에 정확하게 기술할 수 없다. 그 크기가 작든 크든 전체에 대한 형상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형상화하려는 대상과 동일한 크기의 텍스트는 결국 무한한 크기의 텍스트를 의미한다. 그런 텍스트는 만들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가능한 것은 상징이나 알레고리와 같은 장치들을 동원해서, 부분적인 픽션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작업뿐이다. 인식의 범주 안에서 질서를 만들고 읽을 수 있는 대상으로 축소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다. 픽션을 만드는 작업이다.



공감 共感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야기를 꾸미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그냥 털어놓거나 사건을 형상화하기보다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예술가들이 있었다. 논픽션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경향의 작품들을 묶기도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는 애매하다. 아니,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원론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것으로 글로 만들거나 무대에 올리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므로.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독자나 관객이 존재한다면 그들이 보는 것은 구성된 픽션일 수밖에 없다. 이야기를 좀 더 극단적으로 끌고 가면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데 의지하고 있는 큰 틀조차도 하나의 픽션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우주론은 픽션의 완벽한 사례이다. 고대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픽션에 의지해 살았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달이 지구를 도는 궤도를 경계로 천상계와 지상계로 나뉜다. 세상의 물체는 물·불·흙·공기라는 4원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원소의 혼합비율에 따라 우주의 중심이나 천상계와 지상계 사이로 움직인다. 천상계의 별들은 제5원소로 이루어져있고 완벽한 원운동만 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믿고 있는 우주론도 과학에 입각한 사실들의 체계처럼 포장되어 있지만 약간 거칠게 정리하면 이런 정도의 픽션에 근거한 이야기다. 태초에 한 점에서 빅뱅이 있었고, 그때부터 시간이 흐르고 우주는 점점 팽창하고 있다. 빅뱅 때 생긴 작은 입자들이 원자를 만들고 원자들이 다시 분자나 고분자를 형성한다. 우주가 식어가면서 뭉친 입자들이 별도 만들고 행성도 만들고, 그들이 서로 간에 작용하는 힘에 따라 궤도를 이루어 돌고 있다.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서 한참 떨어진 변방의 작은 행성이다. 우리는 픽션에 의지해 세상을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가끔 그 픽션이 바뀌기는 하지만.



예술가가 태생적으로 픽션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작품을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라고 주장할 때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의심한다.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의 규모와 파장에 압도당해서 다시 이야기를 꾸밀 힘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마치 압도적인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고 그 앞에서 불과 몇 초 후엔 휩쓸려 버릴 상황에서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아 그저 몸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태, 혹은 지구에 충돌하는 다른 천체가 무서운 속도로 다가오는데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그런 상황에서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을 꾸미는 예술가는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살아남아 예술을 통해 증언하려는 이가 압도적인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가 만든 작품은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상황을 돌파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게으름에 대한 변명으로 픽션을 포기했다 이야기하는 경우일 것이다. 현실이 압도하는 시대에도 예술가들의 분투를 여전히 기대한다.



 



 



주일우문학과 지성사 대표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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