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산사의 월동준비

얼마 전까지 덥다고 했던 것 같은데, 벌써 연말이 내다뵈는 겨울이다. 빡빡 깎은 머리 때문인지 스님들은 겨울을 많이 탄다. 그래서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바로 문풍지 바르기와 김장이다.



문풍지 바르기는 창호지 문틈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오는 곳을 한지로 막아 덧바르는 일이다. 산사에선 문풍지가 없으면 작은 틈새에서 들어오는 황소바람을 이길 수가 없다. 잘 때 머리가 엄청 시려서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자야할 정도다. 그러니 문풍지를 꼼꼼하게 바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문풍지는 찬바람 드는 가을에 발랐다가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시 산뜻하게 뜯어낸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며칠 전 나도 문풍지를 발랐다. 올해는 한지 대신 방한용 비닐을 사서 발랐는데, 몸도 마음도 금세 훈훈해지는 느낌이다.



삶과 믿음

다음은 김장이다. 요즘엔 김장을 하는 집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하던데, 절집은 다르다. 찾아오는 신도들이 많으니 김장도 여느 가정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한다. 특히 절에선 김장을 해서 독거노인들에게 가져다 드리는 일이 많아, 정말 많은 양의 김장을 신도들과 함께하곤 한다. 예전에 운문사에 살 땐 스님들만 250여명이 살았다. 그러다 보니 김장을 1만포기씩 했다. 지금은 스님들 숫자도 많이 줄어 4000포기 정도 한다. 그래도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김장과정을 얘기하면 이렇다. 서열이 낮은 1학년 스님들이 배추밭에서 갓 뽑은 배추를 리어카에 싣고 개울가로 나르면, 바로 윗반 2학년 스님들이 열심히 씻는다. 그럼 3학년 스님들이 산처럼 쌓인 배추를 반으로 잘라 소금물에 절여둔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내면, 드디어 포스가 예사롭지 않은 고수들이 나타난다. 손놀림이 빠른 4학년 스님들이다. 그 와중에도 아래학년 스님들은 배춧속을 빼서 양념 찍어먹기 바쁘다. 그야말로 배추로 배가 꽉 찬 김장 날이다.



이렇게 산사에서는 모든 스님들이 나와 겨울을 대비한다. 문풍지와 김장이 끝난 뒤라야 스님들은 겨울을 무사히 넘긴다. 추운 시절을 대비하는 일, 비단 산사의 일만은 아닐 터, 국가도 월동준비가 필요하다. 알다시피 이 나라는 현재 국정마비 상태다. 혹한은 다가오는데 도무지 대비할 겨를이 없다. 다양한 위협에 시달리는 외교안보도, 외환이나 무역, 가계부채에 비상등이 켜진 경제문제도 마냥 먹통이다. 세상은 급변하고 혹한은 다가오는데, 정치경제외교가 문풍지 하나 바르지 않고, 김장 한포기 담그지 않은 채 추운 겨울을 보낼 모양이다.



온 나라가 신음한다. 신음소리는 전국 산천을 돌아 주말이면 다시 광장에 모여 울려 퍼진다. 아련한 촛불 사이로 그곳에서 혼이 깃든 한국인의 얼굴을 본다. 누군가 할퀴고 간 뒤치다꺼리 하느라 시민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그러는 사이 혹한기는 다가오고 있다. 도대체 이 나라는 월동준비를 언제 하려는가.



 



 



원영 스님

구독신청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