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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야당의 전리품은 아니다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 말고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유독 여의도만 예외다. 누구나 아는 답도 여의도에만 가면 미로에 빠진다.



대통령 사퇴와 탄핵 문제를 놓고 혼선을 거듭했다. 현재 국회는 합의할 능력이 없다. 그런 국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 시한을 정해달라고 제안한 것은 숨은 의도가 있다. 그렇지만 뻔히 보이는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국회는 더 한심하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때의 기대를 너무나 배반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올 정부는 더 나을 건가. 지금 보여주는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 걱정이 앞선다.



김진국 칼럼

첫째, 너무 오락가락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건지 목표가 불분명하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직후 야당은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0월 26일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며 “대통령이 그 길을 선택한다면 야당도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11월 8일 국회를 방문해 “국회가 추천해 준다면 총리로 임명해서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야당은 박 대통령을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정세균 국회의장만 잠시 만나 이 말을 전했다. 야당은 권한 위임이 될 수 있느냐고 의심했다. 추천한 총리가 제대로 권한을 행사하도록 밀어붙이는 적극성이 없었다. 이후 청와대가 내각 구성을 전적으로 총리에게 맡기겠다고 약속했는데도 총리를 추천하지 못했다. 현 정국을 어떻게 풀어갈지 구상도 없었던 것이다.



탄핵이 아닌 자진 사퇴를 강조한 것도 민주당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달 20일 “대통령이 (퇴진) 결단을 내려준다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새 ‘1월 퇴진’ ‘탄핵 강행’으로 바뀌었다.



문 전 대표는 2014년 8월 광화문 농성장을 찾아갔다. 김영오씨의 단식농성 중단을 설득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김씨를 대신해 자신이 단식 농성을 시작했다. 정치 지도자에게 공감 능력은 중요하다. 하지만 목표는 뚜렷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즉흥적이다. 따라가는 사람들이 헷갈릴 수밖에 없다.



또 한 가지는 공조 문제다. 탄핵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헌법 65조2항) 2일 제출한 탄핵안에는 정세균 의장을 제외한 민주당(121석), 국민의당(38석), 정의당(6석), 무소속(6석) 의원 171명이 서명했다. 정 의장 외에 새누리당에서 28명은 가세해야 탄핵안이 의결된다.



그런데도 추미애 민주당 대표의 행보는 이해하기 힘들다. 새누리당은 물론 다른 야당까지 무시했다. 지난달 15일 박근혜 대통령과 단독회담을 약속했다가 취소했다. 다른 야당은 물론이고, 당내에서까지 반발한 때문이다. 23일에는 “부역자 집단의 당 대표가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한다”며 비박계의 수장 격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공격했다. 굳이 탄핵을 앞둔 시점에 다른 야당을 자극하고,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을 공격하는 이유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다가 지난 1일에는 ‘부역자’라고 비난했던 김 전 대표를 혼자 만났다. 하루 전 국민의당·정의당 대표와 탄핵을 위한 야권 공조를 강조한 바로 하루 뒤다. 대통령의 1월 자진사퇴를 요구했다. 야권 합의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겨우 봉합해 탄핵안을 냈지만 불신이 깔려 있다.



거리의 성난 민심은 순수하다. 바라는 바를 그대로 표출한다. 분노한 민심은 박 대통령이 즉각 사퇴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계산이 없다. 현실성을 따지거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그것을 제도권으로 수렴하는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다. 군중의 목소리를 배설하듯 그대로 옮길 순 없다. 잘 소화시켜야 한다. 감정선을 건드리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결과를 얻어줘야 한다. 정치인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군중의 분노에 합리성과 현실성을 더해야 가능한 일이다.



추 대표는 탄핵안을 가결하기 위한 의원을 확보하는 게 아니라 분열시키고 있다. 탄핵안이 부결되면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게 된다는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말도 묵살했다. 탄핵안을 부결시켜 거리 투쟁을 더 자극하려는 건가. 아무래도 문 전 대표의 대선 전략으로 밖에 해석할 수가 없다.



1월 사퇴 요구도 그렇다. 지금 당장 여론조사로는 문 전 대표가 1위다. 빨리 선거할수록 다른 변수가 끼어들 여지가 줄어든다. 박 대통령을 거세게 응징할수록 시원하다.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국민에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다음 5년이다. 다음 대통령을 잘 뽑아야 한다. 실패한 대통령을 반복할 수는 없다. 철저히 검증해야 하고, 민주적 경선 과정도 거쳐야 한다. 제도까지 바꿀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성난 민심을 수렴하는 것은 정치권이 맡을 수밖에 없다. 4·19 혁명, 6월 항쟁의 정신도 정치권이 나서서 다음 체제로 빚어냈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을 성토하는 촛불이 야당의 훈장은 아니다. 전리품은 더더구나 아니다. 오히려 기존 질서의 한 부분으로 함께 반성하고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1979년 갑자기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권력 공백기가 왔을 때 야당은 자기가 집권할 생각만 했다. 공화당도 마찬가지다. 결국 ‘서울의 봄’은 겨울이 되고 말았다. 87년 선거에서 직선제를 도입했지만 그 엄청난 국민의 민주화 열망에도 불구하고, 체제를 연장시켜주고 말았다.



97년 15대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진영은 이미 당선된 듯이 움직였다. 장관 자리를 놓고 3~4명이 경쟁했다. 선거운동보다 선거 후 자리 다툼을 벌였다. 캠프 내에서 서로 견제했다. 그러니 김종필·이인제 후보를 끌어오려는 노력도 없었다. 결국 불가능하다던 김대중 후보의 당선을 가져왔다.



2002년 16대 대선 때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대통령과 결별한 김종필 자민련 총재를 끌어안을 수도 있었으나 손을 내밀지 않았다. 정몽준 후보는 오히려 노선이 전혀 다른 노무현 후보에게 가게 했다.



골프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 결과를 모른다고 한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는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했다. 선거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형세는 끊임없이 변한다. 지지도 외에 거부 지수도 봐야 한다. 선거에서 결정적인 변수는 실수다. 실수는 오만에서 나온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jinkook@joongang.co.kr

포함의 아픔을 아직도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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