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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연재소설] 거인들의 싸움 속에서 문자를 지켜라

수리는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아우라를 뿜으며 한동안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윙윙 탁탁 소리가 잦아들면서 사뿐히 바닥에 내렸다. 수리의 온몸에서 황금빛 빛줄기가 무수히 뻗어 나왔다.

판게아 - 롱고롱고의 노래<64> 깊은우물오크나무와 카치나

수리는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카치나를 이용해 깊은우물오크나무 위에 적었다. 카치나는 눈 시린 푸른빛을 뿜었다. 수리가 한 글자씩 옮겨 적을 때마다 복도 벽면을 가득 채웠던 글자들이 사라졌다.

“믿어지지가 않아. 글자들이 벽에서 깊은우물오크나무로 옮겨 가고 있어.”

수리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평소 친구들이 알던 수리가 아니었다. 사비와 아메티스트는 넋이 나간 채 수리를 쳐다보았다. 수리는 낯설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 빛났다.

단이족은 이미 피라미드 우주선 내부까지 밀고 들어왔는지 발소리가 쿵쾅쿵쾅 시끄러웠다.

“수리야. 어서 서둘러. 빠져나가야 해.”

모나가 소리쳤지만 수리는 전혀 듣지 못한 듯 글자를 옮겨 적기만 했다. 이미 복도 벽면은 텅 비어 수리가 쓸 글자는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단이족이 요란하게 긴 복도에 들어섰다. 장이족 못지않게 큰 거인들이었지만 귀가 유난히 짧았다. 신기하게도 귀의 구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였다. 그들 손에 무기 같은 건 없었다. 몸뚱이 자체가 무기였다. 단이족은 큰 망치 같은 주먹으로 벽면을 때려부수고 있었다. 사비와 아메티스트는 너무 무서워서 숨죽인 채 떨고 있었다.

“이건 상대가 안 돼. 일단 도망가자.”

마루는 이렇게 말하고 우주선 안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멈춰야 했다. 지하에 갇혔던 노예 누이족이 떼로 나타나서다. 다시 수리 쪽으로 달려온 마루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려있었다.

“수리야. 제발… 아니, 얘들아 우리끼리 가자. 수리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자 사비가 마루의 뺨을 맵게 때렸다.

“정신 나간 놈. 정신 차려. 친구를 두고 어딜 간단 말이야?”

사비는 너무 화가 났다. 아메티스트가 결연하게 말했다.

“우리도 싸우자. 다른 방법이 없어.”

“저 거인들이랑 싸우자는 게 말이 돼? 네가 지구인이 아니라서 내가 그동안 참았는데, 싸우려면 혼자 싸워. 난 못 싸워.”

마루는 사비에게 맞은 한쪽 뺨이 벌개진 채 씩씩거렸다.

“왜? 왜? 왜 못 싸워? 매를 버는구나.”

사비는 앙칼지게 굴었다.

“아빠를 만나야 하니까.”

순간 사비는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울컥했다. 모두 아빠를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누구보다 마루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사비는 마루를 와락 껴안았다.

“마루야. 미안해… 내가 미안해.”

마루는 펑펑 울었다. 아이처럼 울었다.

그사이 아메티스트와 모나는 단이족과 누이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또 누가 우리들의 편이 되어줄지 몰랐기 때문이다. 사비가 수리를 거칠게 흔들었다.

“수리야. 나 봐. 날 보라고. 이제 그만 해. 빨리 일어나.”

그러나 수리는 아직 그만둘 수 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다 끝나. 조금만 기다려줘.”

수리는 계속 적었다. 벽면의 글자를 옮겨 적으며 수리는 점점 글자들이 가진 의미가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다는 기쁨을 느꼈다. 어쩌면 수리가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거창하고, 위대한 비밀일 수도 있었다. 아직 인류의 역사 중에 해독되지 않은 인더스 문자도 있었다. 하지만 롱고롱고 문자는 일반적인 문자의 기준으로 보면 안 되는 건지도 몰랐다. 인더스 문자와 롱고롱고 문자는 분명히 연결되어 있었다. 수리는 확신했다.

“수학적 문장으로 물리학을 설명하는 방법일 수도 있고 기호적 문장으로 우주를 설명하는 방법일 수도 있어. 난 이걸 다 옮겨 적기 전엔 절대 안 일어나. 죽어도 안 일어나.”

수리는 자신의 정신력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젠 그 무엇도 수리를 말리거나 꺾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단이족과 누이족 사이에 썸이 무게를 잡고 폼 나게 섰다. 썸은 단이족을 노려보았다가 누이족을 노려보았다. 단이족과 누이족은 썸을 쳐다보며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단이족이 바닥을 쿵쿵 울리며 누이족을 향해 힘차게 걸어갔다. 단이족은 썸에게 전혀 관심 없다는 듯 썸을 그냥 지나쳐서 누이족에게 갔다. 순간 누이족 뒤에 숨어있던 장이족들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일러스트=임수연

일러스트=임수연

“와, 멋지다. 전략전술이 대단한데?”

마루는 입을 벌린 채 닫을 줄 몰랐다. 장이족과 단이족은 싸우기 시작했고 누이족은 장이족 편에서 싸우고 있었다. 그때, 수리가 벌떡 일어났다.

레벨업을 마친 수리는 카치나를 이용해
복도 벽면을 채운 수많은 글자들을
깊은우물오크나무에 옮겨 적고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단이족과 장이족, 누이족이 얽힌 격렬한 싸움

“다했어.”

긴 복도의 벽면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하는 수리를 향해 장이족과 누이족이 다가왔다. 수리는 깜짝 놀라 깊은우물오크나무와 카치나를 품에 안았다. 빼앗길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이족과 누이족은 수리를 둥글게 에워쌌다. 수리를 보호하고 있었다. 수리도 놀랐지만 사비, 마루, 모나, 골리 쌤 모두 놀랐다. 먼저 장이족 거인들과 단이족 거인들의 몸뚱이가 서로 퍽퍽 부딪혔다. 나가 떨어지거나 쓰러지는 거인들도 있었다. 싸움은 점점 더 격렬해졌다.

단이족 거인들 중에선 벽을 주먹으로 부수는 이도 있었다. 사비와 마루, 아메티스트 골리 쌤은 수리와 함께 모여있었다. 모나는 수리에게 바짝 붙어서 그를 보호했다. 수리는 장이족과 함께 싸우는 것보다 깊은우물오크나무와 카치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곳을 탈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틈을 봐서 탈출해요, 모나.”

수리가 말하자 모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나는 수리 주변에 몰려드는 단이족을 주시하고 있었다. 순간 단이족 하나가 수리 쪽으로 급하게 몸을 틀더니 모나를 날려버리고는 수리를 한 손에 낚아챘다. 모나는 멀리 나가떨어지면서 바닥에 뒹굴더니 정신을 잃었다.

순간 장이족 거인이 수리를 낚은 단이족 거인을 밀어 넘어트리면서 수리를 다시 되찾았다. 마루는 기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그러나 이번엔 또 다른 단이족 거인이 수리를 되찾은 장이족 거인의 팔을 부러뜨렸다. 장이족 거인은 수리를 그만 놓쳐버렸다. 수리는 바닥에 쿵쿵 떨어졌고, 그때 단이족 거인이 확 채 갔다. 사비는 아메티스트와 손을 잡고 발을 동동 굴렀다. 숨이 막힐 정도로 긴장됐다.

“앗.”

갑자기 단이족 거인들이 장이족 거인들의 눈에 무언가를 던지기 시작했다. 눈을 맞은 장이족 거인들은 비명을 질렀다. 곧이어 그들의 눈이 녹아내렸다. 흉측한 광경이었다. 단이족 거인들이 던진 것은 애니미라는 독이었다. 애니미는 단이족이 재배한 풀의 일종으로 진하게 달여 동글동글 단단하게 만든 무기였다. 이를 본 누이족은 활을 쏘기 시작했다. 원시적인 형태의 활이었다. 아메티스트도 화가 나서 누이족의 활을 빌려 쏘았다. 아메티스트는 태어날 때부터 전사였던 것처럼 활을 매우 잘 쏘았다. 장이족과 누이족은 힘을 합쳐 단이족을 곤경에 빠트렸다.

“저 거인들은 왜 싸우는 거야?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겠어. 우리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니까. 일단 여기서 나가자. 제발.”

마루가 수리에게 통사정을 했다.

“깊은우물오크나무와 카치나 때문이야. 단이족이 이것을 빼앗으려 하고 장이족과 누이족은 지키려 하고.”

수리는 문자를 차지하는 쪽이 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마어마한 문자다. 그래서 장이족과 누이족들이 수리를 보호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팬옵티콘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럴 때 우리를 도와주면 좋잖아? 수리, 너를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면 말이야.”

마루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팬옵티콘은 인류의 역사에 개입하지 않아. 우리들 스스로 이겨내고 극복하고 만들어내야 해.”

수리의 말은 엄숙하기까지 했다.

“저 거인들이 인류란 말이야? 말도 안 돼. 아무리 초기인류라고 해도 말도 안 되지. 암, 감히 우리 같은 문화인류와 비교한단 말이야?”

마루는 수리의 말을 부정했다.

“북극의 북극곰(흰곰)과 록키 산맥의 붉은곰은 어떻게 생각해?”

“뭐라는 거야? 둘 다 같은 곰이잖아? 같은 종이라고.”

사비의 질문에 마루가 툴툴거렸다.

“그러니까 네가 밥통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북극곰과 붉은곰은 종이 달라. 전혀 다른 종으로 진화했어. 너는 그저 모습이 닮았으니까 같은 종이라고 생각했지? 거꾸로 모습이 전혀 다르면 인류가 아니라는 것도 모순이잖아? 그럼 호빗도 인류가 아니겠네?”

마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몰라, 몰라.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사비 네 말이 맞다고 치자. 일단 도망가자. 저 단이족 거인 하나가 아까부터 날 노려보고 있어. 내가 살집이 통통하니까. 먹고 싶은 것 같아.”

그사이 단이족은 밀리고 있었다. 수리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밀려가던 단이족이 다시 앞으로 꾸역꾸역 나오고 있었다. 뒤편에서 더 많은 단이족이 몰려오고 있었고 그 끝에 폴리페서가 나타났다.

“폴리페서가….”

수리는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폴리페서 같은 인간은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나 있는 종류였다. 생김새만 달라질 뿐이었다.

다음 호에 계속

 
하지윤은 시인·소설가.
판게아 시리즈 1권 「시발바를 찾아서」,
2권 「마추픽추의 비밀」,
3권 「플래닛 아틀란티스」 를 썼다.

소년중앙에 연재하는 ‘롱고롱고의 노래’는
판게아 4번째 시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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