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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그림으로 배웠네-시즌2] 넌 너무 이상적이야

안녕 오빠. 벌써 우리가 헤어진 지 일 년쯤 시간이 흘렀네. 브라운아이드소울의 ‘벌써 일 년’이란 명곡이 절로 떠오르는 요즘이야. 오빠는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는 여전히 회사에서 상사가 시키는 일을 꾸역꾸역 소화하고, 매일 목 빼고 주말을 기다리며 살고 있어.
장 베로, 기다림. 파리 샤토브리앙 거리, 19세기경

장 베로, 기다림. 파리 샤토브리앙 거리, 19세기경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엔 모든 게 신기했어.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처음 만난 장소가 외국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 클래식 공연을 취재하기 위해 홀로 오스트리아로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오빠를 만났지. 나는 낯선 땅에서 한국 사람을 만난 게 반가웠어. 오빠 역시 사람이 너무나 그리운 외로운 유학생이었지.

길지 않은 출장 기간 동안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어. 일을 끝내고 오빠와 함께 보낸 저녁 시간은 정말 행복했어. 오스트리아의 밤 거리를 걸으며 우리는 예술과 꿈에 대해 이야기했지. 음악을 찾아 오스트리아까지 오게 됐다는 오빠의 말은 너무나 낭만적이었어. 오빠는 예술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했지.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가면 예술에 관한 무지몽매한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싶다고 했어. 순수한 열정으로 가득 찬 오빠는 내가 이제까지 봤던 어떤 남자보다 더 대단해보였어.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년경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년경

그때 오빠를 생각하면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iedrichㆍ1774~1840)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Wanderer above the Sea of Fog)’가 생각나. 19세기 독일 낭만주의의 선구자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대표작으로, 광활한 대자연에 마주 선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어. 고독하지만 가슴 속에 장대한 꿈을 품은 한 남자. 꼭 오빠를 닮았어.

나는 출장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고, 우린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어. 몇 개월 뒤 오빠로부터 길고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귀국한다는 연락을 받았어. 오빠가 한국에 들어오는 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렸던지.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느꼈던 나는 오빠와 함께 걸었던 오스트리아의 밤 거리를 떠올리며 하루를 위로하곤 했거든. 오빠를 만나면 다시 황홀했던 그날의 기분이 꿈 같이 되살아날 것만 같았어.

하지만 고대하던 오빠와의 재회는 예전 같지 않았어. 다시 만난 오빠는 여전히 세상을 바꿀 원대한 이야기를 했어.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런데 오스트리아에선 환상적으로 들렸던 오빠의 꿈과 이상이 현실과 동떨어진 말처럼 들렸어. 오빠의 이상론을 듣고 있다 보면 현실과의 괴리감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지더라고. 우리가 ‘헬조선’에서 만나선지, 내가 감성이 말라비틀어진 기자의 마인드로 돌아와선지 모르겠지만.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1801년

자크 루이 다비드,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1801년

그때 오빠는 내게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ㆍ1748~ 1825)의 ‘알프스산맥을 넘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을 연상시켰어. 프랑스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위엄을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선지 사실감이 전혀 없어. 프랑스 신고전주의가 추구했던 미학이 이런 분위기였다곤 하지만. 이 그림처럼 오빠의 이야기가 내겐 전혀 현실감 있게 다가오지 않았어.

왜냐면 오빠에 비해 내 고민은 너무 하찮은 것들이었거든. 나는 당장 오늘 취재하고 기사 쓰는 게 귀찮았고, 매일 아침 침대에서 빠져나오는 게 짜증났고, 추운 날 머리 감는 게 싫었고, 출퇴근길이 괴로웠어. 하루하루 늘어나는 눈가 주름이 신경쓰였고, 내년에 연봉이 얼마나 오를지 궁금했고, 결혼은 언제 누구와 할 수 있을지 고민이었어. 결혼하면 집은 살 수 있을지, 애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워킹맘으로서의 삶은 어떤 건지, ‘시월드’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 건지 등등. 나의 사소하고 현실적이며 자질구레한 걱정은 끝이 없었어.
앤드류 와이어스, 결혼, 1993년

앤드류 와이어스, 결혼, 1993년

나는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Wyethㆍ1917~2009)의 ‘결혼(Marriage)’처럼, 피곤한 하루를 끝냈을 때, 고단한 인생의 여정을 끝냈을 때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 대단하지 않은 소소한 일상을 묵묵히 감싸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어.

어느 날 회사 상사에게 잔뜩 깨지고 난 뒤 오빠를 만났지. 나는 상사 욕을 잔뜩 하며 오빠에게 일하기 싫다는 등의 고민을 털어놨어. 이야기를 듣던 오빠는 나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충고를 해줬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선 감당해야 할 몫의 시련이 있고, 작은 것보다는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취지의 건설적인 말이었어. 지극히 오빠다운 말이기도 했지. 하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어. 동시에 내가 간장종지처럼 하염없이 작아 보이더라고.

도저히 오빠와 눈높이를 맞출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 서서히 우린 멀어졌지. 나는 여전히 보잘 것 없는 일상에 매몰된 삶을 살고 있어. 오빠는 변함 없이 자신의 신념대로 나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오빠의 철학과 가치관을 진심으로 존중해. 그리고 그걸 끝까지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 언젠가 오빠가 꿈을 이루는 그날, 내가 인터뷰하러 갈게.

간장종지 기자 Asmalldishforsoysauce@joongang.co.k*r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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