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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oo으로 배웠네-시즌2] 절대 참고하면 안 될 고전도 있다

셰익스피어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굳이 지명도를 따진다면 ‘로미오와 줄리엣’을 넘을 작품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햄릿’ ‘리어 왕’ ‘오델로’ ‘맥베드’의 4대 비극이 그 뒤를 잇고, 희극 중에서 꼽자면 ‘베니스의 상인’과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데 희극이라고는 하지만 오늘날의 잣대로 본다면 참 웃지 못할 희극이다. ‘베니스의 상인’은 주옥같은 비유와 문장이 대문호의 풍모를 느끼게 하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도를 넘은 반유태주의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아울러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현대 여성들의 시각에선 도저히 눈 뜨고 봐 줄수가 없는 여혐문학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저 또 왔습니다만.

저 또 왔습니다만.

일단 줄거리.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여주인공 카타리나(애칭은 케이트)는 부호 밥티스타의 맏딸인데, 드센 성미와 고집이 널리 소문난 터라 주변에 감히 청혼하는 남자가 없었다. 그에 비해 카타리나의 동생 비앙카는 미모와 덕성으로 널리 알려져 청혼자가 줄을 섰지만 아버지 밥티스타는 “카타리나가 결혼하기 전까지 절대 비앙카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애가 탄 비앙카의 구혼자들은 ‘밥티스타의 재산에 눈이 멀어 카타리나를 치워 줄’ 정신나간 구혼자를 찾아 해메는데 멀쩡하게 생긴 페트루치오가 덥썩 그 미끼를 문다.
이렇게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과연 남자들이 치를 떠는 카타리나는 어떤 존재일까. 사실 소문난 말괄량이라고 하기엔 내용을 아무리 훑어봐도 별 대단한 게 없다. 굳이 말하자면, 남자들과의 입씨름에서 단 한번도 져 주지 않고 독설을 퍼붓는 캐릭터 정도다. 비앙카와 말다툼을 하다가 비앙카가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오히려 나중에 페트루치오가 하인들을 학대하면 가로막고 말리는 고운 심성의 처자다. 요즘의 TV 연속극에 나오는 재벌 집의 갑질하는 따님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다.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연극 말괄량이 길들이기.

게다가 그런 그녀를 신부로 맞겠다는 페트루치오의 전략도 사실 별 대단한 게 없다. 이런 식이다.

페트루치오: 말도 안 돼. 이리 와요 케이트. (그녀를 안으며) 케이트, 난 신사니까…
카타리나: 이것 놔요. (페트루치오의 뺨을 친다)
페트루치오: 한번 더 쳐 보시오. 다음엔 내 주먹이 나갈 차례니.

다짜고짜 신체 접촉에다 폭력의 위협까지 가한다. 싫다는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게다가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페트루치오: 보여주오(그녀를 다시 안는다. 그녀는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사실 내 힘은 당신에게 쓰기엔 너무 넘친다오.
카타리나: 이거 놔요. 정말 화낼 거예요. (물어뜯고 할퀸다)
페트루치오: 싫어. 당신은 참으로 상냥해. 거만하고 무뚝뚝하다는 소문은 새빨간 거짓이었어. (후략)

처가집에서 결혼식도 올리기 전에 하는 행동이 이 정도. 어쨌거나 페트루치오는 청혼을 하고 밥티스타는 얼씨구나 허락한다. 카타리나도 “여자란 여간 강하지 않고선 바보 취급 당하기 십상이네요”라며 강경하게 반발하지만 때는 17세기. 아버지의 결혼 명령을 이길 수 있는 여자는 없다. (사실 있기는 있다.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의 딸은 아버지의 뜻을 배신하고 남자와 눈이 맞아 달아난다. ‘사악한 유태인의 딸’이면 가능하다.)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

식을 올리고 신부를 데려간 페트루치오의 두번째 작전은 다짜고짜 굶기는 것이었다. 방에 가두고 음식을 주지 않으니 카타리나인들 어쩔 것인가. 굶어죽지 않기 위해 고분고분해진 카타리나에게 페트루치오는 친정 나들이를 제안한다. 그런데 길을 떠난 페트루치오는 멀쩡한 해를 보고 달이라고 우긴다. 기가 막힌 카타리나가 저게 해지 어떻게 달이냐고 한마디 하자, 페트루치오는 곧바로 얼굴을 굳힌다.

페트루치오: 여봐라. 그만 돌아가자. 아씨가 내 말에 일일이 딴지를 거는구나.
호텐쇼: (작은 목소리로 카타리나에게) 저 사람 말대로 달이라고 하세요. 안 그러면 오늘 친정에 못 가요.
카타리나: 제발 그냥 가요. 저게 달이든 태양이든 상관없으니까요. 촛불이라고 해도 그렇게 부를게요.
페트루치오: 글쎄 달이라니까!
카나리나: 맞아요. 달이에요.
페트루치오: 아니야. 당신은 거짓말쟁이야. 저건 고마운 해야.
카타리나: 그렇다면 저건 해에요. 모든 건 당신 뜻대로 되는 거예요. (후략)

남편의 학대에다 친정 또한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카타리나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로 살 길을 찾았다. 그건 순종 외에는 없었다. 아예 이 쪽으로 방향을 잡은 카타리나는 오히려 페트루치오가 겁을 낼 정도로 180도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은 우리의 생명이자 보호자이며 군주이세요. (중략) 남편은 아내의 사랑과 고운 얼굴과 순종밖에 바라는 게 없죠. (중략) 하물며 아내가 고집을 부리고, 짜증을 내고, 남편의 의사를 무시한다면 그게 배은망덕이 아니고 뭐겠어요?”

페트루치오가 현대 남성이라면, 이런 식으로 아내가 돌변하면 정신 감정을 받아 보게 할지도 모르고, 혹시 자신을 비꼬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할 것 같다. 아무튼 불행중 다행인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 아내를 때리는 남자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거의 폭행에 준하는 감금과 굶기기, 순종의 강요가 ‘연애의 방법’으로 제시된다니 참 놀라울 뿐이다. 문득 현실에도 존재하는 한 남자가 생각난다.
그 시대에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그 시대에도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

벌써 꽤 오래 전 일이다. 의성이의 친구 중 유명한 ‘교회 오빠’가 있었다. 이 교회 오빠에게는 당연히 예쁜 교회 동생이 있었는데, 이 동생이 하루는 길에서 수작을 걸어 오는 한 남자를 만났다. 특별히 눈길을 끄는 구석은 없고, 방법도 고전적인 ‘시간 되시면 어디 가서 얘기 좀 하자’는 것이었다.

‘그 남자(이제부터 ’자신맨‘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워낙 첫 눈에도 자신감이 넘쳐 보이더라는 얘기다)’도 제법 인물과 학력이 그럴싸 해서 어디 가서 쉽게 박대당할 처지는 아니었으나 당시 교회 오빠에게 흠뻑 빠져 있던 교회 동생은 단호하게 수작을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자신맨은 어찌 수소문을 했는지 학교와 이름을 알아내고, 계속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집 앞에서 기다리는가 하면, 전화번호를 알아내 집으로 전화를 걸어오더라는 것이다(그렇다. 핸드폰도 삐삐도 없던 시절의 얘기다).

예상을 벗어나는 자신맨의 행동력에 놀란 교회 동생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을 썼다. 아버지에게 대신 전화를 받게 한 것이다. 당연히 아버지는 “네가 뭔데 우리 XX이를 바꿔 달라는 거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대체 뭐하는 놈이냐”고 호통을 쳤다. 딸이 좋다면 모를까, ‘딸이 싫은데 계속 따라다니는 놈’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당연한 응징. 웬만한 남자라면 그 자리에서 헉 하고 전화를 끊어야 정상일 상황이었다.

그런데 자신맨의 태도는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아버님 되시냐”고 일단 확인을 한 뒤, “나는 위험한 사람도 아니고, 강제로 손목을 잡아 끈 것도 아니고, 나름 괜찮은 놈이다. 따님이 따로 사귀는 남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긴 인생을 놓고 볼 때 내가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따님은 내게 얘기해 볼 기회도 주지 않고, 이런 식으로 아예 말문을 막으려 하니 참 답답한 노릇이다. 아버님도 남자로서 생각해 볼 때, 따님이 다가오는 남자에게 다짜고짜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남자가 이렇게까지 정성을 기울이면 여자가 예의상 관심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조목조목 따지더라는 것이다.

아버지도 일단 질러 놓은 기세가 있어 “무슨 헛소리야 이놈!”하고 전화를 끊기는 했지만, 그 뒤로 교회 동생에게 와서 학교는 어디 다니는 놈이냐, 생긴 건 어떠냐며 은근한 관심을 보이더라고.

다음날. 교회 동생의 앞에 자신맨이 다시 나타났다. 아버지와의 통화 내용을 들은 터라 왠지 교회 동생은 뭔가 죄진 느낌이 들었고, 결국 차 한잔을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나서의 대화 내용은 구애라기보다는 “더 이상 귀찮게 굴지는 않겠다. 하지만 앞으로 누구라도 당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식으로 불량배 취급은 하지 말라”는 일장 훈계에 가까웠다. 그러고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가는데, 자신맨의 모습이 은근히 괜찮아 보이더라는 것이 교회 동생의 회고담이다.

아마도 요즘이라면 자신맨의 행동이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일단 자신맨의 주장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여자가 말이야…” 를 기본으로 깔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의 젊은 여성들이라면 당연히 “니가 뭔데?”라고 맞받아 쳤어야 당연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시절의 자신맨은 자신이 성장하면서 주입당한 성 역할에 비쳐 볼 때 저 정도면 꽤 중도를 걷는 편이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그 시대의 여성들 중 상당수는 저런 태도를 ‘박력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과장이 아니라 그 시절은 정말 그랬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언하면, 1990년대까지만 해도 영어로 된 “숙녀가 ‘안 돼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마도’라는 뜻이고, 그녀가 ‘아마도’라고 말하는 것은 ‘돼요’라는 뜻이다. 만약 그녀가 ‘돼요’라고 말한다면, 그녀는 숙녀가 아니다 (If a lady says ”no“, she means ”maybe“; if she says ”maybe“, she means ”yes“; and if she says ”yes“, she‘s not a lady)” 라는 말이 진리처럼 여겨졌다. 아마 오늘날에도 이 문장을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을 법도 하다. 그만치 세상에 변하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사나이들의 짙은 땀냄새…ㄷㄷ

사나이들의 짙은 땀냄새…ㄷㄷ

1980년대를 휩쓴 이현세의 전설적인 히트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는 외인구단 멤버 중 최경도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최경도는 한 은행원을 짝사랑하지만, 이 은행원은 자신이 키가 작고 돈도 없다는 이유로 최경도를 거절했다. 지옥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최경도는 매일 그녀가 근무하는 은행 창구 앞에 찾아와 하루 종일 그녀를 바라보는 것으로 일과를 보냈다. 두려움을 느낀 그녀는 경찰에 신고하지만, 출동한 경찰에게 최경도는 당당하게 말한다. “제가 무슨 짓을 했습니까? 사랑하는 여자를 하루 종일 바라보고 싶어 한 것이 죄란 말입니까?” 경찰은 그냥 돌아간다.
이 포스터는 과연…

이 포스터는 과연…

가정 폭력 사건 등으로 경찰 신세를 져 본 사람들은 요즘도 한국 사법당국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증언을 하고 있다. 무서운 일이다. 아무튼 연애 관계를 전제로 할 때 ’스토킹‘이라는 개념은 최근까지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남의 연애 관계나 부부 사이에 개입하는 것은 공권력에게도 금기에 해당한다는 시각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생각해 볼 때 의성이가 기억하는 위 이야기의 자신남을 17세기 이탈리아로 데려다 놓으면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치오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요즘이라면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에 여자들은 ’세 번만 찍어도 스토커‘라는 반응을 보이고, 남자들은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아느냐. 대체 왜 넘어 온다는 보장도 없는 여자에게 그리도 정성을 바쳐야 하느냐‘고 말하는 게 정상이니, 저런 태도는 다시 볼래도 볼 수 없을 것 같다. 결론적으로 여자가 ’no‘라고 말할 때 그게 진짜 그냥 ’no‘ 라고 받아들이는 세상이 온 건 남녀 모두에게 참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나노는노 기자 noisno@joongang.co.k*r
 
‘연애를 OO으로 배웠네’ 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들이 다양한 문화콘텐트에 연애 경험담을 엮어 연재하는 잡글입니다. 잡글이라 함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기자 이름과 e메일 주소는 글 내용에 맞춰 허구로 만든 것이며 익명으로 연재합니다. 연애 좀비가 사랑꾼이 되는 그날까지 매주 금요일 업데이트합니다. 많은 의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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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