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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제대로 된 혁명

박정호 논설위원

박정호 논설위원

국보나 보물은 없다. 왕실이나 귀족이 쓰던 화려한 물건도 없다. 하루하루 힘겹게 살았던 백성과 함께했던 유물 1만여 점이 박물관 나들이를 했다. 지난 22일 국립대구박물관에서 개막한 ‘고대마을 시지(時至)’ 특별전이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선조의 생활상 4000여 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대구 신매동·노변동, 경산 옥산동·중산동 등을 아우르는 시지 유적은 방대하다. 총 면적이 21.5㎢에 이른다.

지명 ‘시지’는 ‘때맞춰 도착하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이곳에 숙박시설인 원(院)이 있었다고 한다. 구석기시대 뗀석기부터 삼국시대 접시와 항아리, 그리고 고려·조선시대 숟가락·자기까지 이 땅을 거쳐간 서민의 살림살이가 한눈에 들어온다. 옛사람의 손때 묻은 물품을 국립박물관이란 반듯한 공간에 불러냈다는 점에서 전시기획의 작은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문화재는 고귀한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

나는 이 시대의 ‘시지’를 광화문광장에서 본다. 직장인·노동자·주부·학생 등의 분노 속에 담긴 지혜가 놀랍다. 어디 광화문광장뿐이랴. 지난주 전국 곳곳에서 열린 집회는 사유화된 권력에 대한 민초의 매서운 죽비였다. 광장을 가득 메운 구호와 노래, 그 안에 녹아 있는 풍자와 해학이 유쾌했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 패러디부터 ‘박근혜 그만 두유(豆乳)’ 차량까지 우리 시대의 상상력이 ‘때맞춰 도착한’ 느낌이었다. 새 시대를 향한 명예혁명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가 영국 작가 D H 로런스의 시 ‘제대로 된 혁명(A Sane Revolution)’을 엊그제 보내왔다. ‘혁명을 하려면 재미있게 하라’ ‘너무 진지하게 하지 마라’ ‘미워하기 때문에 가담하지 마라’ ‘그저 원수들의 눈에 침이라도 한번 뱉기 위해서 하라’ ‘획일을 추구하는 혁명은 하지 마라’ 등의 시구가 쏙쏙 박힌다. 불의를 비웃되 유머를 잃지 않고, 폭정을 꾸짖되 여유를 찾는 성숙한 민주의식의 분출이다.

지난 몇 차례 광화문광장 시위는 재미있는 혁명을 닮았다. 이참에 광장을 물들인 피켓·유인물 등 시민의 소리를 그러모았으면 한다. 오는 26일 대규모 집회도 마찬가지다. 혹시 아나,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이나 남북 이산가족찾기 기록물처럼 먼 훗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를지 말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모양새 갖춘 특별전은 열 수 있을 것이다. 민의를 등진 권력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대통령 탄핵과 더불어 ‘제대로 된 혁명’ 이후를 준비할 때다.

박정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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