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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노신의 회한

박보균  대기자

박보균
대기자

김용환 전 재무장관은 병환 중이다. 노령(84세)에 심적 고통이 겹쳤다. 그는 박근혜 정권의 탈선을 걱정했다. 그 불길한 상념은 현 정권 시작부터였다. 하지만 그의 고언은 전달되지 않았다. 그 우려와 탄식은 울화(鬱火)로 쌓였다.

김용환의 허망한 집착이었나
최태민을 거론한 탓인가
고언은 전달되지 않았다
원로의 탄식은 울화로 축적
“용인술이 통치 핵심인데
대통령 주위는 병졸과 내시”


김용환은 올해 초 지인들에게 이런 회고를 했다. 그는 대선부터 떠올렸다. 2012년 12월 19일 밤. TV 자막은 ‘박근혜 후보 승리 확실’로 바뀌었다. 그는 삼성동 후보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지금부터 경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했다. 그 당부는 기쁨과 들뜸의 노련한 표출이었다. 그는 새누리당 상임고문이었다. 당의 노년 그룹인 이른바 ‘7인회’ 좌장이었다.

그는 박근혜 당선자를 만났다. 독대의 자리였다. 그는 두 쪽짜리 건의서를 꺼냈다. 경제 재도약의 전략 방안이다. 내용에는 경제사령탑(부총리)의 부활도 담겼다. 그는 말미에 이런 말을 했다. 조심스러웠고 절제된 말투였다. “새 정권의 기운에 최태민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선 곤란하겠지요.” 당선자의 표정은 싸늘해졌다.

김용환은 2선의 원로로 자신의 위상을 설정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통찰과 간언(諫言)의 말들이 다듬어졌다. 박 대통령은 경제부총리 부활 방안을 수용했다. 하지만 김용환의 역할은 그걸로 끝났다. 대통령의 권력 공간은 압축됐다. 비선과 문고리가 득세하는 구조였다. 김용환은 차단되었다. 그에 대한 청와대의 응대는 냉담과 외면이었다. 새 권부(權府)는 그의 뚜렷한 주관을 간섭과 고집으로 여겼다.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그의 충정을 경계로 대했다.

김용환은 1970년대 박정희 시대의 특급참모였다. 그는 산업화 성취의 지휘부에 있었다. 30여 년 뒤 그의 건의서는 선명한 역설이다. “제2의 한강 기적을 이루려면 박정희 시대에 익숙한 우리 경제의 패러다임을 깨야 한다. 경제 체질을 바꾸려면 사령탑에 추진력을 갖춘 사람을 기용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첫 경제부총리에 현오석이 기용됐다. 김용환이 추천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기준으론 현오석은 ‘우유부단’이었다. 김용환은 낙담했다. “경제부총리 부활의 의미가 사라졌다.”
 
세상인심은 달라졌다. “박 대통령과 그의 전화 연락도 끊겼다”는 수군거림이 당내에 있었다. 그를 찾는 사람도 줄었다. 그의 집 거실에 청조근정훈장이 놓여 있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이 준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산업화의 혁명가는 나를 전폭 신임했다. 보답은 혁명가의 딸이 성공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는 정통 관료 출신이다. 정치판에서도 명성을 쌓았다. 그런 이력은 드물다. 그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실무 주역이었다. 그 산전수전도 인내를 키웠다. 그는 진언할 기회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대는 채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허망한 집착이었다.

김용환은 박근혜 정권의 용인술을 한탄하곤 했다. 그는 “통치의 핵심은 인사다. 장수를 기용해야 국정 책임감을 공유하고 위기 때 돌파할 수 있다. 그런데 대통령 주변에선 장수를 찾기 어렵고 병졸과 내시, 소인배만 눈에 띈다.” 소인배의 생리는 책임회피다. 그들의 세계는 폐쇄와 비선이다. 문고리 비서들(이재만·정호성·안봉근)은 최순실을 모셨다. ‘박근혜 사람들’은 권력의 단맛을 봤다. 하지만 이젠 “최순실을 몰랐다”고 한다. 민심의 야유와 조롱도 이렇게 늘어난다. “장세동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다들 도망갈 궁리뿐이다.” 그 치졸한 상황도 박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정윤회 문건 사건’이 터졌을 때다. 김용환의 표정은 문득 밝아졌다. 그는 “하늘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이 딸에게 준 반전의 기회”라고 했다. 그는 권력 운용의 재구성을 바랐다. 하지만 상황은 반대로 갔다. 비선은 더욱 설쳐댔다. 최순실과 그 무리들은 세상을 평정한 듯했다. 청와대의 기술자들이 거기에 본격 가세했다. 우병우는 사정(司正)의 권력을 휘둘렀다. 안종범은 재벌 앞에서 위세를 과시했다.

그때쯤 김용환은 미련을 버렸다. 그는 그들 무리의 득세를 개탄했다. “권력에도 품격이 있는데…”. 그는 울분과 낭패감에 휩싸였다. 그는 “딸이 실패하면 박정희 대통령의 치적도 상처 날 텐데”라고 했다.

그의 상념은 다른 형태로 옮겨졌다. “박 대통령의 임기 말은 험악해질 것이다. 그러기 전에 개헌을 해야 한다. 언제까지 제왕적 대통령제를 해야 하나.” 지난해 초부터 그는 주변에 개헌 이야기를 꺼냈다. 박 대통령의 처지는 벼랑 끝이다. 탄핵의 거친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요즘 김용환의 거동은 불편하다. 누군가 이렇게 위로했다. “왕조 때에도 2대(代)에 걸쳐 경륜을 펴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것은 체념의 단서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 한구석은 달랐다. 회한(悔恨)마저 거둘 수 없는 듯했다.

박보균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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