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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디테일의 재발견] '동주'의 창

영화 `동주`

영화 `동주`

‘동주’는 윤동주(강하늘)가 일본 고등형사(김인우)에게 취조받는 방에서 시작한다. 꼼꼼히 살펴보면 이 방의 구조는 특이하다. 취조실이라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좁고 음습하며 고문 기구가 즐비한 그런 공간이 아니다. 널찍한 곳에 책상 하나가 있고, 벽에는 큰 창문이 있다. 이 방의 창엔 길쭉한 나무 판자 여러 개가 못질돼 있다. 빛을 차단하려면 검은색 커튼을 치면 될 일이지만 나무 판자를 사용했고, 그렇게 가려진 창은 마치 교도소 창살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창살 있는 창’은 동주의 감방에도 다시 반복된다. 생체 실험에 고통받는 동주에게 유일하게 희망이 있다면, 감방 벽 위쪽에 난 작은 창이다. 비록 쇠창살이 있지만, 동주는 그 창을 통해 밤하늘의 별을 본다. 그 별은 고향 하늘에서 보던, 시를 쓰던 시절에 보던 바로 그 별이다. 이때 내레이션이 흐른다. ‘별 헤는 밤’이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창살 있는 창’의 의미는 명확하다. 동주가 처한 ‘모국어를 잃은 시인’이라는 현실이다. 그는 창밖의 별을 보며 시를 써야 하는 시인이다. 그 창엔 ‘창살’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시인은 창살 틈으로 별을 보아야 한다. 언어를 잃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시를 써야 했던 윤동주의 삶에 대한 시각적 비유다. 다시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카메라는 의자에 앉아 있는 동주의 뒷모습을 보여 준다. 막혀 있는 창을 드러내기 위한 앵글이다. 동주가 고등형사와 마주 앉은 장면에서도 대칭을 이룬, 빛을 막은 창을 보여 준다.

동주는 종종 창이 만들어 내는 프레임 안에 갇힌다. 동주는 송몽규(박정민)와 함께 고향에서 경성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바람이 불어’라는 시를 쓴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 바람이 부는데 /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청춘의 고뇌를 담은 이 시를 쓰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기차 밖으로 나가 창틀 안에 있는 두 청춘을 보여 준다. 전차에서 쿠미(최희서)와 함께 있을 때 시를 쓰는 동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프레임 내 프레임’ 효과이며, 이것은 갇힌 현실 속의 인간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동주에게 사각형의 창은, 시로 메워 나가는 원고지의 사각형과 조응된다. 동주에게 시는 갇힌 현실 안에서도, 그 부끄러움 속에서도, 기어코 써 나가야 하는 삶의 이유인 셈이다.

이 영화에서 동주는 몽규와 사촌지간이자 동지지만, 때론 대립 관계다. 동주는 시인이고, 몽규는 혁명가이기 때문이다. 그런 차이는 둘 사이에 어떤 벽을 만들어 내는데, 두 사람이 헤어지는 장면에서도 우린 창 안에 갇힌 동주의 모습을 본다. 일본 경찰에게 쫓기는 몽규가 함께 가자고 할 때, 동주는 거절한다. 이때 동주는 창밖으로 그저 몽규를 바라보기만 한다(사진 7). 동주는 다음 날 고등형사에게 체포되고, 결국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히며, 그 안에서 미처 서른 살이 되지 못한 채 삶을 마감한다. 이때 카메라는 다시 한 번 감방의 작은 창을 보여 주고(사진 2), 여기에 ‘서시’가 흐른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이 기사는 매거진M 182호(2016.09.30-2016.10.06)에 실린 기사입니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프리랜서 8년차. 매년 개봉하는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가 유일한 인생의 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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