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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여자의 실패인가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그래도 좀 달라진 줄 알았더니 별로 바뀐 게 없었다. 여성을 바라보는 주류 남성사회의 시각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진 후 “여자는 안 되겠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었다. 사석에선 물론 공적인 회의석상에서도 “여성 지도자는 앞으로 100~200년 동안 나오기 힘들 것”이란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다. 한 여성의 과오를 전체 여성의 실패로 단정 짓는 건 지난 20여 년의 직장생활 동안 이미 숱하게 겪었던지라 솔직히 별로 놀랍지는 않다. 굳이 일반화의 오류를 따지며 반박할 필요를 못 느낄 정도다. 옳고 그름을 다툴 일이 아니라 그저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문제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자면 누구나 잘못을 할 수 있다. 남자라서, 혹은 여자라서 잘못을 하는 게 아니라 특정한 개인의 그릇된 선택이 나쁜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그런데 이런 지극히 합리적인 생각은 주로 남성에게만 적용된다. 여성이 잘못하면 이유 불문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기 일쑤다. “거봐, 여자는 안 돼.” 아무 상관없는 다른 여자들까지 싸잡아 비난받는다. 박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의 “대통령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이라는 발언을 놓고 여성, 특히 사회생활 하는 여성들이 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데는 이런 피해의식이 깔려 있다. “너도 여자니까”라는 주류 남성사회의 틀을 어떻게든 깨 보려고 열심히 살아왔는데, 정작 여성 대통령이 남성의 편견만 강화할 ‘여성’ 프레임을 들고 나오니 허탈할 수밖에.

그렇다고 남자들이 박 대통령의 실패를 여자들 기세가 꺾인 걸로 생각하며 은근히 즐길 일도 아니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최근 칼럼에서 다면적인 인간을 단지 인종이나 종교, 또는 성별로만 구분 짓는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백인과 유색인종을 가르는 인종주의자나 대중과 엘리트의 구분만 중요한 포퓰리스트뿐 아니라 보통 사람들조차 스스로 이런 단순화의 함정에 빠진다고 했다. 그는 “이런 (편협한) 단순화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하고 (199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의 말처럼 세상을 싸움터로 만든다”고 했다. 서구 사회의 무슬림 혐오로 인한 갈등이나 최근 우리 사회에 불거진 여성 혐오 문제를 떠올리면 이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여자 운운하며 손가락질하기는 쉽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한발 더 나아가려면 박근혜의 실패를 여자의 실패로 규정해선 안 된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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