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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결 정족수, 헌재 심판, 물리적 시간이 넘어야할 산


정치권에서 최순실 사태와 관련,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8일 “대통령이 하야하지 않으면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정지시키고 정치적·법적 퇴진을 준비할 것”이라며 “후속 법적 조치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추 대표가 밝힌 ‘법적 조치’란 탄핵을 말하는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이 전했다.

앞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헌정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탄핵을 검토할 시점이 됐다”(13일)고 말했고, 유승민 의원도 18일 “대통령이 법률을 위배한 사실이 드러나면 국회는 즉각 탄핵에 착수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탄핵을 고리로 한 여야 간 접촉도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 하태경 의원은 “민주당 이언주 의원 등과 탄핵 관련 절차를 논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정치권이 쉽게 탄핵으로 중지를 모으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엔 의결 정족수, 물리적인 시간, 여론 역풍 우려 등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새누리당에서 40명은 탄핵에 찬성해야 안정적인데 지금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며 “거기서 부결되면 모든 게 끝나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의 말대로 탄핵이 가능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의결 정족수다.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의원 200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무소속 의원 전원이 찬성한다고 해도 171명에 그친다. 새누리당 의원 29명도 뜻을 같이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박 위원장은 ‘(새누리당 의원) 40명이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압도적인 의결로 탄핵안이 통과돼야 헌법재판소도 사안을 심각하게 볼 것이라는 해석이다. “250명이 탄핵에 찬성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평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명이 훨씬 넘는 의원이 탄핵에 찬성한다는 것을 보여주면 여론과는 또 다른 압박이 헌재에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새누리당 의원 54명은 지난 17일 최순실 특검법에 찬성표를 던졌다. 찬성 의원 중엔 조원진·김명연·박덕흠·염동열·강효상·곽상도·민경욱·유민봉 등 친박계도 포함돼 있다. 이 때문에 탄핵에 찬성하는 인사들은 새누리당 비박계의 상당수가 무기명으로 실시되는 탄핵 표결 때도 찬성표를 던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돼 헌재에서 탄핵 심판을 시작할 경우 국회 법사위원장은 9명의 헌법 재판관을 설득해야 한다. 일반 재판에서 원고 측 변호인에 해당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권성동 법사위원장이 새누리당 소속이어서 적극적으로 탄핵을 주장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야당에서 나온다. 권 위원장은 ‘최순실 특검법’ 심사에서 특검 임명 과정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지적하며 상임위 통과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탄핵소추 절차를 실제로 수행하는 건 법사위인데 새누리당 소속 위원장이 의지를 갖고 하겠느냐가 현실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권 위원장은 현재 이정현 대표의 퇴진을 주장하는 비박계의 비상시국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야당의 우려와 달리 탄핵심판 수행을 소극적으로 하진 않을 거라는 반론도 있다.

야당의 또 다른 우려는 헌재 재판관들이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헌재 재판관 9명 중 현재 7명 정도가 박 대통령이 추천했다는 등의 이유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된다. 여기다 박한철 소장은 내년 1월, 이정미 재판관도 내년 3월에 임기가 끝난다. 탄핵 심판이 내년 3월 이후까지 진행된다면 7명의 재판관이 결정을 내리는 일이 생길 수 있다. ‘탄핵 결정엔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7명 중 6인이 찬성 의견을 내야 탄핵안이 확정된다.

대통령 탄핵을 비롯한 정국 수습책이 한곳으로 모아지지 않고 있는 데는 야권 대선주자들의 구상이 제각각인 것도 큰 이유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는 탄핵에 대해 부정적이다. “국민의 압도적인 민심은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데 탄핵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하야를 주장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3단계 퇴진론’을 내놓고 있다. ①대통령의 정치적 퇴진 선언→②여야 합의로 대통령 권한 대행 총리 선출→③총리가 대통령의 법적 퇴진일을 포함한 향후 정치 일정 발표다. 민주당 출신의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14일 “현실적으로 국회가 헌법 절차에 따라 탄핵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탄핵 추진을 반대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탄핵이 되려면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의 결의가 있어야 하고 헌법재판소 결정까지 최소한 6개월이 걸리지 않나. 그 기간 동안 국민이 인내하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하야만이 답이고 이 과정에서 야당이 하야를 적극 주장해 대통령의 결단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탄핵을 해법으로 생각하진 않는다”며 “정치적 해결이 가능하도록 최대한 모든 방법을 모색하고 찾아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탄핵파다. 이 시장은 19일 “이런 때일수록 겁내지 말고 담대하게 법대로 탄핵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도 이날 처음으로 법적 탄핵을 주장했다. 안 지사는 이날 충남도당 시국토론회에서 “주권자들이 이미 명령하고 있는 박 대통령 탄핵을 우리가 실천해야 한다”며 “의회 지도자들은 지체 없이 탄핵 절차에 들어가야한다”고 말했다. 이들 6명의 대선주자는 20일 오찬을 겸한 ‘비상시국 전체회의’를 열고 시국수습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가 처한 난국을 타개할 유일한 해법이 개헌”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를 거론한 뒤 “두 분 중 한 명이 (대통령 하야 뒤) 60일 만에 벼락치기로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느냐”며 “새 헌법에 따라 박 대통령의 임기는 조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새누리당에선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이 탄핵을 언급했고 남경필 경기지사는 박 대통령의 ‘2선 퇴진’을 주장하고 있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20일 비상시국회의를 열어 박 대통령 탄핵에 대해 논의한다.

한편 한국일보가 17~18일 10대 이상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8.5%가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했고 퇴진 방식으론 탄핵(19.8%)보다 하야(73.1%)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최선욱, 이지상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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