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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좌담] 트럼프 보호무역으로 미국내 좋은 일자리 늘지 의문…한국, 공공지출 늘려 최소한 사회 안전망 구축해야


이달 3일 영국 런던에서 미국인 젊은이 3명이 브렉시트와 같은 결과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달 3일 영국 런던에서 미국인 젊은이 3명이 브렉시트와 같은 결과를 피하기 위해 대통령 선거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인 이달 12일 미국 뉴욕에서 트럼프 반대자들이 ‘트럼프주의는 파시즘’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인 이달 12일 미국 뉴욕에서 트럼프 반대자들이 ‘트럼프주의는 파시즘’이라고 쓴 종이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왼쪽부터 권순원 교수, 박명림 교수, 한순구 교수. 김상선 기자

왼쪽부터 권순원 교수, 박명림 교수, 한순구 교수. 김상선 기자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에서 예상 외로 찬성 측이 승리한 데 이어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국제 질서는 보호주의의 장벽이 높아지고 국가 간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쪽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도 88만원 세대, 3포 세대 등으로 대표되는 빈부·세대 갈등이 커지고 있다. 분노 계층(angry class)의 본격적인 반기득권, 반외국인노동자 목소리도 커질 수 있다. 중앙SUNDAY는 대표적인 진보 사회학자인 박명림 연세대 교수, 노동경제학의 권위자인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 게임이론 전문가인 한순구 연세대 교수와 함께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 정치·경제 질서의 변화와 우리의 대응 방안을 모색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좌담회는 17일 오후 서울 중앙일보 본사에서 진행됐다.
브렉시트나 트럼프 당선 등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잇따라 벌어졌다.
한순구 교수=시작부터 결론을 내자면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100년 전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당시 베스트셀러의 내용이 ‘국제 교류가 발달해서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세계대전이 났다. 국가 지도층이 조금만 세상 돌아가는 것에 감을 잃으면 나타날 수 있는 결과다. 전쟁까지 가지야 않겠지만 세계화와 정세 불안이 100년 만에 반복되고 있다.
1963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원 정치학 박사  국내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학자. 독일 베를린자유대 초빙 교수 등 역임.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1963년생.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동 대학원 정치학 박사
국내의 대표적인 진보 정치학자. 독일 베를린자유대 초빙 교수 등 역임.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세계화 주도한 미국이 고립주의 선택]
박명림 교수=미국 정치학자들이 대선 다음날인 지난 9일 온갖 블로그에 글 올리고 나한테 ‘너무 창피해서 분석을 못하겠다’는 e메일을 보냈다. 정치학적으로 ‘수줍은 투표(shy voting)’ 얘기가 많이 나왔다. 숨은 수줍은 백인들, ‘부끄럽다(shameful)’는 것이다. 내가 트럼프를 지지하지만 누구와 통화하거나 써 내야 하는 반공개적인 여론조사에서 밝히기는 어렵지만 투표는 다르다. ‘분노의 투표(angry voting)’는 샤이와 셰임풀 사이에 있다. 자기가 셰임풀한 걸 알기 때문에 샤이한 거다. 그렇지만 투표 결과가 미국에 도움이 될지, 세계에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브렉시트와 미국 선거는 100~200년 후 영·미인들이 상당히 후회할 선택이다.

권순원 교수=미국에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에 대한 열망에는 동질적인 특성이 존재한다. 일자리·양극화·소득 불평등 그리고 삶의 질 문제 모두 다 연결된다. 샌더스는 양극화에 따른 소득 불평등과 저소득 계층의 소비 여력 감소, 그에 따른 경기불황 같은 계급 문제에 집중했다. 반면 트럼프는 반세계화, 보호무역, 이민 노동력 제한, 자본 해외 유출 등에서 해법을 찾아 적극적인 인종주의와 반세계 선동을 통해 당선됐다. 그래서 트럼프 당선은 단순히 민주당·공화당 문제라기보다는 그 근저에 들어가면 일자리 문제, 삶의 질 문제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
 
보통 양극화는 제3세계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유럽 선진국에서 터져 나왔다.
박 교수=미국과 영국은 첨단 산업과 금융산업을 중심으로 세계화를 주도했다. 그에 대한 가장 격렬한 반동이 미국과 영국의 중심 인종인 백인에서 나온 게 인류사적으로 너무나 새로운 현상이다. 옛날로 치면 고대 로마나 중국에서 제국의 확장 시기에 내부 저항이 시작된 셈이다. 미국·영국 사람도 당황하는 이유다. 나는 지난주 미국 컬럼비아대 학술회의와 중국 푸단대 강의에서 ‘아멕시트(American exit)’라는 단어를 썼다. 미국이 세계의 중심에서 이탈하려고 하는 것이다.

한 교수=로마 이야기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카이사르 사후에 내란이 일어났다. 로마 시민들이 병사가 돼 해외 영토를 차지했다. 로마가 워낙 열린 사회니까 아프리카·게르마니아 사람이 로마에 와서 한 세대 지나면 시민권을 얻고 원로원에 들어가 잘 산다. 그런데 아프리카 정복할 때 싸웠던 하층 시민은 계속 하층민이니까, 우리 아버지가 정복했는데 이게 뭐냐 하는 반발이 나온 것이다. 브렉시트·아멕시트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세계화로 기술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 점점 고소득이 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전반적으로 평균소득이 올라가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내부적 격차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권 교수=또 다른 특징은 최근 이런 급진적인 선택을 하는 국가는 대부분 개인 후생을 기업복지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도 그렇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국가들에서는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된다. 단적으로 우리나라 전체 가처분소득 가운데 사회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2.9%다. 미국도 비슷하다. 하지만 스웨덴은 51.9%,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0.7%다. 우리가 흔히 일자리가 곧 복지라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이 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결국 일자리가 문제인가.
한 교수=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농업·공업 종사자들이 서비스업으로 많이 옮겨왔다. 우리나라도 일자리의 70% 이상이 서비스업이다. 이 분야는 오랫동안 기계가 침입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런데 컴퓨터·인터넷·스마트폰 발달로 갈수록 점원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서비스업이 불가침 영역인 줄 알았는데 여기서마저 밀리기 때문에 특히 충격이 크지 않겠나.

권 교수=지금 창출되는 일자리 대부분이 저임금 서비스 업종이라는 것도 문제다. 기이하게도 미국과 영국의 실업률은 최근 10년 내 가장 낮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임금은 계속 떨어진다. 경제학 교과서는 실업률이 떨어지면 임금이 높아지고, 근로 조건이 좋아지고, 노조조직률이 높아진다고 지금까지 가르쳐왔다. 그런데 실제로는 불안정하고 저임금인 일자리만 생기고 있다. 자동차·철강을 담당하던 미국 러스트벨트가 공동화되면서 시간당 20달러짜리 일자리가 다 없어졌다.

남은 건 청소, 햄버거 가게 점원, 여관 하우스키핑 이런 것뿐이다. 1960년대에 가장 고용을 많이 한 기업은 직원 120만 명의 제너럴모터스(GM)였다. 지금은 공장이 멕시코·중국·한국으로 넘어가면서 미국 내 고용이 20만 명으로 줄었다. 지금 고용 1위는 직원 250만 명인 월마트다.
 
브렉시트나 트럼프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박 교수=트럼프는 진퇴양난에 빠지지 않았을까. 미국 경제가 기술이나 생산성 격차를 유지해 온 바탕에는 중국산 제품 수입으로 저물가와 고용을 유지해 온 부분도 있다. 아멕시트로 치러야 할 비용을 생각하면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실 세계화 이후 양극화 심화에 따른 하층 계층의 반란이 벌어진 것은 결국 정치의 실패다. 우리나라 이명박 대통령,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총리, 태국 탁신 총리처럼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지도자로 선택했을 때 나라 경제는 상당히 어려워졌다. 사적 영역에서의 성공이 국가 경제 측면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허버트 후버도 광산업 성공을 바탕으로 대통령까지 됐지만 대공황까지 끌고 갔다. 트럼프를 선택한 게 개인의 성공에 대한 열망이 반영됐는지 모르지만 미국 경제를 다시 지필 것인지에 대해 낙관하진 않는다.

한 교수=경제학적으로 보면 유럽연합(EU)의 설계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아예 대통령도 하나인 한 나라로 만들든지, 아니면 자유무역협정(FTA) 정도만 해서 물건만 오가고 사람 이동은 막았어야 하는데 어중간한 형태다. 영국인들은 그리스가 빚을 졌는데 그리스 정부 운영에 전혀 관여하지 못하는 우리가 왜 갚아줘야 하느냐고 비판한다. 인적 이동이 없는 물적 이동, FTA 수준으로 가야 한다. 미국도 멕시코 국경 넘는 것을 제한하면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멕시코 불법체류자 때문이 아니고 우리가 물건을 못 만들어서 문제다, 이걸 깨닫게 되면. 영국인들이 못사는 게 눈앞에 몇 천 명씩 사는 폴란드인 때문이 아니라고 깨달으면.

권 교수=트럼프 식의 성공은 결국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으로 미국 내에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는 건데 과연 가능할까. 단적으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애플 제품에 관세 45%를 매긴다고 애플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겠나. 딜레마인 게 트럼프 말대로 근로자 소득을 향상시키려면 비싼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면 기업이 돌아오기 어렵다. 베트남 최저임금은 월 16만원, 평균 임금 월 30만원 수준이다. 중국 근로자 평균임금은 월 60만~70만원이다.

한 교수=미국은 노예제 폐지를 놓고 남북전쟁까지 벌였지만 결국 옳은 방향을 잡았듯이 트럼프를 겪으면서 오히려 사람들이 깨어나고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 공약대로 자유무역을 막으면 정말 큰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트럼프를 찍었던 사람들도 ‘이게 외국 노동자를 쫓아낸다고 다 되는 게 아니구나,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맞긴 맞구나’라고 깨닫게 될 것이다.
 
1968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게임이론과 산업조직론, 법경제학을 주로 연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1968년생. 서울대 경제학과.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게임이론과 산업조직론, 법경제학을 주로 연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60세 퇴직, 연금을 65세부터 받는 게 문제]
박 교수=트럼프 당선이 오히려 다른 형태의 세계 갈등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유럽 대륙에서의 극우 정당 득세, 러시아 푸틴의 강력한 국가에 대한 향수, 중국 시진핑은 유교와 공자를 내세워 근대화 이전으로 회귀. 루쉰이나 마오쩌둥이 공자를 불러내는 순간 중국은 망국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라고 그렇게 경고했는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제2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질서를 돌리려고 하고. 이런 부분에서 균형추를 잡아주던 게 앵글로색슨, 영·미 기축라인이었다. 그래도 미국은 거시적으로 보면 영국과 함께 인류 역사에서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주도하는 파시즘, 소련·중국의 공산주의 등 몇 개의 반문명, 야만 이런 걸 극복했다. 극단적인 결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다.

트럼프식 대안은 효과가 없다는 것인가.
권 교수=최근 베트남을 두 차례 다녀왔다. 삼성은 하노이에 13만 명을 고용하는 공장을 운영한다. 1차 벤더로 따라간 한국 기업만 200개 정도 된다. 한 회사가 적게는 1000명, 많으면 5000명의 베트남 근로자를 고용한다. 호찌민에는 태광도 나가 있고. 베트남 수출의 20%를 삼성전자가, 50%를 한국 기업이 차지한다. 그런데 베트남 정부와 진출 기업들이 가장 긴장하는 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특히 노동권 조항이다. 자유로운 노조의 설립과 파업권을 다 보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 내 임금 수준으로는 고립주의를 채택한다고 기업이 돌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입장에서는 기업이 더 이상 나가지 않도록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렇다면 관세·보호무역으로 장벽을 높이는 게 나을지, 아니면 다른 나라의 노동 환경을 미국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나갈 유인을 없애는 게 효과적일지 따져봐야 한다. 국가 간 노동 조건을 표준화해 원료나 기타 비용의 비교 우위를 따져 생산이 세계적으로 재분배되는 거지,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장벽을 높이는 것은 적절한 해법이 아니다.

박 교수=선진국에서 빈부 격차 심화와 함께 부와 소득의 세습 계급화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 토마 피케티 교수의 『21세기 자본』이 나오기 전부터 정치학 쪽에서는 결론은 나 있었다. 200~300년 데이터를 통해 지니계수나 불평등지수, 정부의 공적 지출, 정부소득 대 기업소득 대 가계소득 비율 등 어떤 경우든지 조금 더 친서민적, 친평등적인 것은 대통령제보다는 내각제, 양당제보다는 다당제, 단순다수대표제보다는 비례대표제, 단독정부보다는 연립정부다. OECD 국가 중 미국을 제외하면 거의 다 의회책임제·내각제·다당제·비례대표제 국가다. 세계화 이후 미국 최고 부자 한 명의 소득이 인류 5800만 명의 소득과 맞먹을 만큼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이런 미국이 세계화를 주도해놓고 세계화에서 후퇴한다? 아프리카·아시아 사람 2~3세대의 희생을 바탕으로 지금의 질서를 만들어놓고 그들의 후손이 경쟁에 나설 만해지니 발을 빼겠다는 건 이중 양극화를 불러올 뿐이다.

한 교수=고대 로마 이야기로 돌아가면 내란은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해소된 다음에 로마가 더 급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때 로마는 왜 외국인들에게 시민권을 주느냐고 움츠러들지 않았다. 우리가 보기에 미국과 영국은 너무 센 나라라서 내부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리드하는 나라는 아무래도 받는 것보다 많이 줘야 다른 나라가 따라오기 때문에 안에서 갈등이 많아질 수 있다. 더구나 경제가 나빠졌을 때는 더 심하게 표출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은 합리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저력이 있고 또 그러기를 바란다.
 
한국이 우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박 교수=21일이면 OECD에 가입한 지 20주년이 된다. 세금, 공공지출, 소득 구성 세 가지는 OECD 상위는 못해도 평균에는 도달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다. 법인세를 올리든 어떻든 세금 부담을 높이고 공공지출을 늘려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자살률과 저출산 모두 1위다. 생명 탄생 중단과 생명 연장 중단에서 동시에 1등 하는 건 인류사적으로 처음이다. 우리가 발전시킨 문명이 인간의 안전과 생명 유지에서 얼마나 멀었던가를 보여주는 거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권 교수=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저출산·고령화. 둘째, 세계화에 따른 기업들의 이탈. 셋째,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변화다. 우리나라는 2000년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7% 이상)에 들어선 후 내년이면 고령사회(14% 이상),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 이상)에 접어든다.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그런데 법적 은퇴연령은 60세, 연금수령 시점은 2025년부터 65세가 된다. 연금의 소득대체율이 22% 수준에 불과한데 그나마 5년간의 갭이 발생한다. 이게 우리가 가진 가장 심각한 구조적 문제다. 다음으로 세계화 문제다. 트럼프와 마찬가지 고민이다. 대기업은 국내에 남아 있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현대자동차가 최근 10년 동안 공장 11개를 모두 다 외국에 지었다.
 
1967년생. 코넬대 경영학 박사  노동시장, 노사관계 등을 주로 연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1967년생. 코넬대 경영학 박사
노동시장, 노사관계 등을 주로 연구.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현대차 지난 10년간 공장 11개 모두 외국에 지어]
한 교수=법인세 올리고 복지 확충하는 게 기업이 떠나는 문제와 연관돼 있지 않는가.권 교수=딜레마다. 중국 장쑤(江蘇)성 기아차 공장에 가 보면 평균 연령이 27세고 임금이 월 150만원 수준이다. 국내 삼성·LG전자 공장 노동자 평균 임금이 월 300만원인데 베트남은 월 30만원이다. 세계화 과정에서 우리나라 중산층을 받치고 노조를 조직했던 일자리가 다 나갔다.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직 근로자 평균연령이 48.5세, 평균연차 20년이다. 이 사람들 은퇴하면 더 이상 안 뽑는다. 우리나라도 미국과 똑같은 이슈에 봉착해 있다. 마지막으로 4차 산업혁명 이슈다. 예를 들어 콜센터를 비롯한 비대면 영업종사자 5만~6만 명의 일자리는 5년 내 없어진다. 기계와 인공지능(AI) 기술로 일자리가 대체되는 것에 대해서는 전 세계에서 우려한다. 하지만 나도 예측이 잘 안 되는 부분이다.

한 교수=개방형 소규모 경제인 우리나라가 문을 닫아 걸 수는 없다. 오히려 정치적 고려를 줄여야 하지 않겠나. 조선 산업도 전문가 대부분의 전망이 어두운데 정부는 3개 다 살리겠다고 나섰다. 내년 대선을 고려한 정치적 판단 때문 아닌가. 정부가 욕을 먹더라도 장기적인 시각에서 정책을 펴야 하는 측면이 있다.

이대로라면 정권 교체기를 앞두고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이 커질 수밖에 없다.
권 교수=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하다. 나도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면서 1년6개월 고생했다. 노동개혁 실패의 핵심 요인은 개혁에 초래되는 비용을 근로자들이 전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특성 탓에 노동조합이 타협할 수 없는 데 있다. 유럽은 통상임금의 80%를 실업급여로 준다. 우리는 그것도 까다롭고 경력자로 들어갈 일자리도 없다. 그러니 끝까지 못 나가겠다고 버틴다. 나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어떤 식으로든지 만들어줘야 한다. 이쯤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고민해야 한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기업 입장에서 사람을 고용할 때 들어가는 비용이 너무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조선소 용접공, 미용실 스타일리스트도 다 1인 사업자로 도급 계약을 한다. 이마저도 일자리가 줄어든다. 기계가 대체하니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소득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소수에게 집중된다. 그런데 전체 부가가치는 또 늘어난다. 국가적·기업적 차원에서 이렇게 집중되는 소득을 적절히 분배할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 교수=기본소득 얘기에 공감한다. 정부는 한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교육비와 교육을 마친 다음 시민으로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계비를 누가 어떻게 부담할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지금까지 개인 부담이었다. 유치원부터 로스쿨까지 개인 비용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시민으로 자라기보다는 개인으로 자랐고, 보상받기 위한 행동이 현재 사회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복지에 대한 대토론에 들어가야 한다.

한 교수=기업이 투자 안 한다고 비판하는데 요즘 상황을 보니 안 하게 생겼네, 그런 생각이 들더라. 준조세만 20조원이다. 세율은 안 올렸지만 여기저기 많이 냈다. 그런 방법보다는 차라리 세율을 올리는 것이 낫다. 그런데 시뮬레이션을 해 보면 소득세나 법인세를 올려서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모자란다. 결국 전 국민에 소비세를 매기거나 부가가치세를 12~15% 정도까지 높여야 한다. 그러면 과연 국민이 행복할까. 일본도 세율을 올리면 총리가 다 물러났다. 아무리 복지에 쓴다고 해도 깃털을 뽑으면 거위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이건 경제학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심리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이다. 국민의 부담이 늘지 않으면 의미 있는 복지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딜레마다.
 
중장기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이 준비해야 할 어젠다는.
박 교수=경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우리는 원조 경제에서 수출 경제로, 개방 경제로, 세계화 경제로 변신해 왔다. 한 단계를 넘어설 때마다 박정희 정부의 8·3 사채동결 조치, 전두환 정부의 기업 구조조정, 김영삼 정부의 외환위기 등을 겪었다. 한국 경제가 다섯 번째 단계로 전환하려면 정경유착과 부패고리를 끊고 시민 공동체를 만드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는 미국 국민에게는 재앙이 될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동안 세계화에 적응하느라 놓쳤던 국제 경쟁력, 정보기술(IT) 이후의 새로운 먹거리, 성장동력 창출에 집중하자. 새로운 국가 발전의 길, 가능성이 열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 교수=공감한다. 특히 현 시점에서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가 재정의 역할이 갈수록 커지는데 경제학자로서 정치인·관료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런 불안감이 없지 않다. 임기 2~3년 만에 대통령이 흔들리고 공무원들이 떨어져 나가는 판에 20~30년 후의 고령화 문제, 4차 산업혁명 문제를 누가 챙기겠나. 정치 쪽에서 장기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권 교수=현재 우리의 인사관리 시스템이 발 빠른 변화에 과연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가 보면 위험 작업을 100% 자동화할 수 있는데 노조가 일자리 때문에 도입을 막고 있다. 기업 차원에서도 유연한 적응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은 기계가 노동을 변화시키고 노동이 산업을 변화시키는 복합적인 것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문과와 이과로 나눠놨다. 정부도 칸막이를 치고 자신밖에 챙기지 않는다. 기획재정부는 돈 안 주려 하고, 보건복지부는 연금 안 놓치려 하고, 고용노동부는 기를 쓰고 기금 운용 권한을 확보하려 한다. 서로 정책에 대한 간섭도 싫어하고. 이렇게 가면 멸망한다. 범정부 차원에서 통합적·융합적 해법을 모색하는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 김창우 기자, 정리= 이우연 인턴기자 changwoo.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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