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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국 헤쳐갈 프로그램이 없다

우리 현대사는 존경할 만한 인물 만들기에 실패한 역사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존경하는 인물을 들라고 하면, 신문 지상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본 인물 가운데서는 답을 찾지 못한다. 결국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에 이르기까지 먼 옛날을 탐색해야 한다. 쉬운 예로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 결정적인 흠결 없이 민족을 사랑하고 국가에 기여한 인물을 찾아낼 수 있을까. 없다. 존경은커녕 대다수가 퇴임 후 감옥에 갔거나 갈 만한 형편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의 여망을 모을 수 있는 지도자, 동시대의 ‘영웅’을 배출하지 못하는 현실은 우울하고 슬프다.

Outlook

일제강점기로부터의 광복 70년을 갓 넘긴 2016년, 우리 사회는 또 다시 이 해묵은 도식을 확인하고 있다. 대통령 측근과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으로 온 나라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불길에 휩싸였다. 어느 지도자도 국민이 수긍할 만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 매스컴에, 사람들의 입초사에 ‘플래카드’만 난무할 뿐 이 절체절명의 난국을 넘어설 ‘프로그램’을 볼 수가 없다.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다. 논리만 앞서고 신념이 부재한 시대, 정권적·정파적 욕심만 충일하고 국가적·민족적 비전이 퇴화한 시대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자화상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 측근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는가는, 도리를 따지고 법규를 적용하는 사문(査問) 담당자들의 몫이지 그들의 것이 아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는 이런 경우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대통령이 문제를 유발한 당사자인 까닭으로 그 해법에 대해서도 능동적인 자세를 보여야 옳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를 궁구(窮究)하되, 그 방향성은 개인의 욕망을 버리고 국가와 공익을 생각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대목의 진정성을 국민이 납득하면 모양이 덜 망가진 퇴진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그와는 별개로 우리 모두가 대통령만 몰아세울 일이 아니라, 스스로에게는 잘못이 없는지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오늘의 박근혜 사태를 그 혼자서 만들었는가. 최태민이 암적인 존재라는 것이 알려진 지 오래고, 그 일가가 부당하게 국정에 개입한 것도 오래 되었다. 그동안 대통령을 보좌해 오면서 이 사실을 알고 묵인했던 공직자들은 깃털과 몸통의 구분 없이 모두 ‘동업자’들이다. 현행법의 적용으로 이 동류들을 얼마나 가려내고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절대권력 주변에 기생하는 잘못된 공직의 행태를 근절하지 못하면 이 힘겨운 고투는 값이 없다. 일제와 독재의 시기를 지나오면서, 제대로 과거 청산을 못했던 역사의 폐해를 다시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여야 정당과 국회의원, 또는 소위 ‘잠룡’으로 불리는 정치인 가운데 이 난국의 해법을 내놓고 길을 제시할 만한 인물이 없다. 이 순간에 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신뢰를 축적한 인물, 준비된 인물이 없다는 말이다. 지난번 총선을 거치면서 집안싸움의 추한 면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새누리당은 이 정부와 공동의 책임이 있다. 비주류라고 해서 책임을 비켜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누리당이 무슨 말이라도 내놓자면, 통렬한 자기반성과 고백이 앞서야 한다. 잠룡은 무슨 잠룡인가. 숨은 용이 참다운 용인 것은 마침내 비를 부르고 하늘을 날 잠재력을 숨기고 있을 때의 일이다.

나라의 위기를 앞두고 그 정쟁의 시대사를 공유해 온 야당 또한 면색이 무너지기는 매한가지다. 이 충격적 난국에 정돈된 관점을 보여주지 못하고 버벅거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왜 금방 취소할 영수회담을 제의했는가. 이 ‘아니면 말고’가 제1야당으로서 얼마나 무책임한 태도인지 제대로 판단해 보았는가. 이 형국에 문재인 전 대표는 ‘호남 패배 시 정계 은퇴’ 발언을 선거전략이었다고 얼버무릴 수 있는가.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는 박근혜 하야를 주장하면서, 그 이후의 일정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는가. 여당에 희망이 없으면 야당이라도 좀 정당답게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게 움직여야 한다.

이 난국을 타개할 ‘공’이 어디로 가 있을까. 정부나 여당이 아니라 야당에게다. 야당으로서는 어쩌면 선물처럼 주어진 기회다. 야당에서 해답이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차제에 정략적 사고를 내려놓고 국가와 민족을 바라보는 대국적 견지를 확립해야 한다. 대통령의 잘못을 세몰이로 압박하지 말고, 법률적 절차에 따라 객관적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공당(公黨)의 명분이 선다. 그보다 더 앞서야 할 것은, 하야나 2선후퇴나 조기대선이나 개헌이나 그 무엇을 주장하든 주장의 근거를 분명히 밝히고 로드맵의 선후를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비판을 넘어 대안을 내놓는 일이며, 플래카드를 내려놓고 프로그램을 거양하는 일이다. 그 바탕에는 자기이익을 도모하는 구차한 논리가 없고, 국익에 헌신하려는 신념이 깔려 있어야 한다.

정치적 사안과 더불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려야 하는 국민, 경제가 어려워 살기가 팍팍하고 출구 없는 청년실업에 한숨짓는 국민을, 모두 함께 생각하자. 눈앞에 있는 북핵의 위험과 예견되는 국제적 통상압력도 생각해 보자.

국정농단 문제를 그야말로 민족적 차원에서 심사숙고해야 할 이유다. 개인에게 있어야 할 인격, 정치세력에게도 있어야 한다. 일찍이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렇게 가르쳤다. “그대가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러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이 되라.” 이 상식적 인격과 균형 있는 정치의식, 성숙한 시민의식은 모두 같은 말이다.

김종회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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