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케셀링, 질서 있는 퇴각으로 독일군 완패 막아

1 1944년 폐허가 된 몬테 카시노 수도원 근처에서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미군 병사들. [사진 United States Army]



전사에 길이 남은 전투는 대개 패자의 궤멸로 끝났다. 알렉산더의 페르시아 정복전과 한니발의 칸나에 전투가 그 전형이다. 승패를 가른 건 병력 숫자나 전력의 우열이 아니었다. 총사령관의 뛰어난 전략과 그를 이해하고 실행하는 장병들의 능력이 승자를 만들었다. 참패의 원인은 그 반대였다. 총사령관은 상황 파악에 무관심하거나 무지했고, 물러서야 할 때를 몰랐다. 중간 지휘관들은 현장에는 귀를 닫고 윗선의 명령에만 맹종했다. 제때 후퇴하지 않아 전투의 패배는 물론 왕좌나 국가까지 잃은 사례는 역사에 넘쳐난다.



[2차대전사로 보는 기업 경영] 이탈리아 전선과 삼성전자

이런 사례는 2차대전에서도 적지 않다. 독소전 초반 스탈린은 발트해에서 흑해에 이르는 방대한 국경에서 소련군의 후퇴를 금지했다. 이로 인해 압도적인 독일군의 진격에 사단·군단·야전군들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런 오판은 민스크와 키에프 같은 전략적 거점에서도 반복됐다. 소련군은 1942년이 돼서야 불리하면 후퇴해 후방 방어선을 구축하는 유연방어를 펼쳤다.



 

[산맥 끼고 구스타프 라인 구축해 방어]

독일군은 그 반대였다. 1941년 겨울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소련군의 반격으로 선봉부대가 포위됐다. 하지만 히틀러는 “보급을 충분히 유지할 수 있다”는 헤르만 괴링 공군 총사령관의 말을 믿고 후퇴를 금지했다. 다음해 봄 포위됐던 독일군이 구출되자 히틀러는 현지사수 전략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 1942년 말 독일 6군이 스탈린그라드에서 포위, 궤멸된 참사는 여기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후퇴불가 명령을 계속 남발했다. 만슈타인처럼 처벌을 감수하고 이를 어긴 지휘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잘못된 명령인줄 알면서도 이를 따랐다. 결과는 전선의 전면적 붕괴와 병력·장비의 만성적인 부족으로 나타났다.



나치 독일이 이런 잘못을 범하지 않은 전선이 한 군데 있다. 이탈리아다. 북아프리카에서 롬멜의 아프리카군단을 물리친 연합군은 1943년 7월 9일 시칠리아 남부에 상륙했다. 남유럽에서 연합군의 목표는 원래 여기까지였다. 1943년에 실행하려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병력을 영국으로 뺄 예정이었다. 그런데 상륙작전이 이듬해로 연기되자 처칠이 이탈리아 본토 침공을 강력히 주장했다. 달리 병력을 투입할 곳이 마땅치 않았기에 미군도 이에 동의했다.



9월 3일 영국 제8군과 미국 제5군이 메시나 해협을 건넜다. 이탈리아 해군의 근거지인 타란토에도 상륙했다. 예상대로 저항은 미미했다. 미군은 나폴리로 향했고, 영국군은 바리 항구와 포기아 비행장을 점령했다. 넋 놓고 있는 듯하던 히틀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탈리아를 쉽게 내주면 독일 본토가 남쪽에서 위협을 받는다. 바로 옆 발칸과 동유럽엔 전쟁에 필요한 구리와 석유·보크사이트가 있었다. 히틀러는 공군 원수 알베르트 케셀링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이탈리아 전선의 전권을 부여했다. 히틀러로선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케셀링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의심스러운 이탈리아군을 무장해제하고 믿을 수 있는 부대는 독일군에 편제했다. 로마 남쪽에 총 6개의 단계적 방어선을 구축했다. 맨 앞에 있는 볼투르노 라인과 바르바라 라인은 임시 방어선, 그 뒤에 있는 구스타프 라인이 주방어선이었다. 이탈리아의 지형은 방어에 유리했다. 남북으로 뻗은 아펜니노 산맥과 동서로 흐르는 강들이 자연 방어물이 됐다. 러시아에서 전투에 단련된 독일군은 고지에서 버티며 도로와 교량을 확보하려는 연합군을 방해했다.



 



 

[몬테 카시노 수도원 놓고 6개월 공방전]

11월 겨울이 찾아오며 연합군은 멈춰섰다. 구스타프 라인이 넘어설 수 없는 벽처럼 앞을 막아섰다. 특히 카시노가 문제였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산 곳곳에 독일군의 기관총과 대포가 매복하고 있었다. 산 정상엔 1400년 전 세워진 유서깊은 몬테 카시노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로마 교황청과의 관계를 고려해 독일군은 이곳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지만 연합군은 폭격기를 대거 동원해 수도원을 쑥밭으로 만들었다. 수도사와 피난민이 떠난 폐허는 독일군 공수부대의 훌륭한 방어진지가 됐다.



연합군은 우회전법을 시도하기로 했다. 1월 말 독일군 후방인 안치오에 상륙해 구스타프 라인을 협공하려 했다. 하지만 케셀링의 빠른 대처로 상륙군은 비좁은 해안 교두보에 갇혔다. 진격은 커녕 바다로 밀려나지 않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할 처지였다. 연합군은 1월부터 3월까지 카시노에 세 차례 대규모 정면공격을 퍼부었지만 매번 막대한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날씨가 풀리고 공군의 지원이 원활해진 5월에야 카시노는 연합군 수중에 떨어졌다. 폴란드군 4000명 전사라는 막대한 희생을 치른 다음이었다. 독일군은 신속하게 다음 방어선으로 후퇴했다. 독일군의 철수로 천년도시 로마가 전쟁터가 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노르망디 상륙 이틀 전인 6월 4일 로마가 해방됐다.



하지만 연합군은 아직 이탈리아 국토의 절반을 차지했을 뿐이었다. 이탈리아의 인구와 산업 생산이 밀집된 북부 지역은 여전히 무솔리니의 치하에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이탈리아에 있는 연합군 전력도 프랑스 전선으로 다수 차출됐다. 독일이 겹겹이 쳐둔 방어선을 뚫는 험난하고 지루한 전투가 이어졌다. 이제 독일의 주방어선은 피사 북쪽에서 리미니 남쪽으로 이어진 고딕 라인이었다. 베네치아와 피렌체·밀라노로 가는 길을 뚫으려는 연합군의 시도는 번번히 좌절됐다. 또다시 1944년 겨울이 찾아오며 전선이 고착됐다.



 

2 1944년 1월 15일 폭격을 마친 미군 B-17 폭격기가 몬테 카시노 상공을 날고 있다.[사진 Mathew Parker]



1945년 4월에야 연합군의 공세가 재개됐지만 이미 승부가 끝난 상태였다. 소련군이 베를린 코 앞에 다가서 있었고, 미군과 영국군은 프랑스를 통과해 서부 독일을 빠르게 점령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독일군이 열심히 싸울 이유가 없었다. 4월 25일 파르티잔 대봉기와 함께 독일 방어선이 붕괴됐다. 29일 케셀링 후임인 비에팅호프 장군이 연합군에 항복했다.



지리멸렬하는 패주 과정에서 가장 큰 희생이 생기는 것은 전쟁이나 기업 경영이나 마찬가지다. 갤럭시S와 노트 시리즈로 스마트폰 분야에서 승승장구하던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갤럭시 노트7 배터리 폭발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다. 올 8월 2일 공개된 노트7은 홍채인식 기술과 대용량 배터리 등을 탑재해 큰 관심을 끌었다. 국내 예약판매만 40만대에 달하는 등 출시 초기 500만대 정도가 전 세계 이동통신업체에 공급됐다. 하지만 8월 2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배터리가 폭발했다는 사례가 나온 뒤 전 세계에서 배터리 발화·폭발 신고 10여건이 잇따랐다. 삼성전자는 9월 2일 전량 리콜을 발표했다.



 

[필요할 땐 물러서는 것도 리스크 관리]

여기까지는 성공적인 리스크 관리 사례로 여겨졌다. 문제는 삼성 측이 삼성SDI에서 공급한 배터리 때문이라는 분석 결과와 함께 리콜 발표 2주 만에 개선품 판매를 시작하면서 불거졌다. 10월 1일부터 개선품조차 배터리 폭발이 일어난다는 사례가 잇따라 공개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10월 10일 노트7 생산을 중단했고, 이튿날 해당 모델을 아예 단종하고 구매자에게는 환불해주기로 결정했다.



리콜 결정 때만 해도 1조5000억원의 손실을 입었지만 발빠른 대응으로 브랜드 가치가 높아져 중장기적으로는 손실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성급하게 판매 재개에 나섰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단종 결정 당일에만 주가가 8% 이상 하락하는 등 큰 충격을 받았다. 삼성전자는 4조원에 달하는 리콜 비용과 단종으로 인한 매출 손실 등을 합쳐 7조원 가까운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올 3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줄어든 5조2000억원에 그쳤다.



휴대용 기기의 배터리가 발화·폭발하는 것은 매우 드물지만 어느 정도 불가피한 일이다. 일부 불량 제품이 섞여 있을 수 있고 사용 과정에서 외부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노트7 사태는 이런 일반적인 상황과는 다르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설계 또는 제조상의 문제로 인해 동시 다발적으로 배터리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진은 삼성SDI에서 제조한 배터리만 폭발했다는 점을 근거로 해당 부품만 교체한 채 재판매에 나섰다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셈이다. 냉정하게 물러서서 웅크릴 때를 판단하는 것도 리스크 관리의 기본 중 하나다.



2차대전시 이탈리아 전투는 2년이 채 안되는 기간 동안 벌어졌다. 시종일관 연합군의 공격과 독일군의 방어로 진행된 전투였다. 압도적인 공군·해군력 차이에도 미군과 영국군은 케셀링의 효과적이고 유연한 방어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승장이 아닌 그가 명장으로 평가되는 이유다. 기업 경영진이 케셀링처럼 체계적인 후퇴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결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긴 경영인뿐이겠는가. 무턱대고 버티다간 ‘단번에 훅가기’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모르고 자기 고집만 피우는 리더가 지금도 얼마나 많은가.



 



나현철 논설위원tigerace@joongang.co.kr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