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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의 ‘귀거래사’가 가슴을 울리고…

1 운무에 가린 중국 강서성 여산의 자태. 이백의 시로 유명한 수봉폭포, 총 낙차가 155m에 이르는 3단 폭포 삼첩천 등 그 진면목을 다 보기 어려운 비경이다.



중국 대륙을 여행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송재소(73)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전공인 한문학을 바탕으로 그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발자취를 좇는 ‘한시(漢詩) 인문기행’을 해마다 몇 차례씩 다녀온다. 1989년 처음 중국 땅을 밟은 이래 100여 회 문학 답사를 한 송 교수는 지난해 한시에 취해 거닌 26년간의 얘기를 엮은 『시와 술과 차가 있는 중국 인문 기행』(창비)을 펴냈다. 송 교수의 동료이자 도반인 임형택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그와 함께하면 눈과 귀와 입이 모두 즐거운데 특히 입이 세 번 호강한다”고 했다. 한시의 고적(古蹟)을 보고, 유려한 해설을 들으며, 맛있는 음식에 더해 명주(名酒)와 명차(名茶)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송 교수의 높은 안목을 흠모하는 다산연구소(이사장 박석무) 회원들과 함께하는 ‘중국 인문기행 2016-여산(廬山) 진면목’을 중앙SUNDAY S매거진이 다녀왔다. (*중국 지명과 인명, 고유명사는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말로 읽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



다산연구소와 떠난 중국 한시 기행

 

2 호북성 무한의 전경과 장강대교, 양자강, 한강 등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황학루. 도사가 벽에 그린 학이 때마다 춤을 춰 큰 돈을 벌게 된 술집 주인이 그 인연을 기려 학이 날아간 뒤 누각을 세우고 황학루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3 강서성 여산 화경(花徑) 공원 안에는 당나라의 대문장가 백거이를 기리는 초당이 복원돼 그를 흠모하는 관람객을 맞는다. 송재소 교수가 초당 들머리에 선 백거이의 석상 앞에서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은 건설, 또 건설 중이었다. 지난 4일 도착한 호북성의 성 소재지인 무한(武漢)은 제3국제공항을 비롯해 아파트 신축과 다리 공사 등으로 “무한시는 매일 다르다”는 표현을 낳을 만큼 변화 일변도였다. 빠르게 변모하는 와중에도 장강(長江) 연안 시 중심에 우뚝 선 황학루(黃鶴樓)는 180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강남 지역에서 손꼽는다는 3대 유명 누각의 풍모는 전설 속 황학의 모습처럼 하늘로 오를 듯 표표하다. 여러 번 불이 나서 사라졌던 건물을 1980년대에 다시 지으며 콘크리트로 도배한 걸 보니 중국의 문화재 복원 원칙이 얼마나 과감한지 실감났다.



“황학루는 수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올라 감회를 읊은 작품을 남겼는데 그중 으뜸은 최호(崔顥)의 ‘황학루’이지요. ‘맑은 강엔 한양수가 뚜렷이 보이고(晴川歷歷漢陽樹) 앵무주엔 고운 풀이 우거졌도다().’ 이백(李白)도 황학루를 노래했지만 역시 최호 것이 유명합니다.”



송 교수의 설명을 들으며 황학루에 오르니 과연 여러 인걸들이 남긴 시가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하나하나 음미하며 사진에 담는 중국 젊은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화재의 대중적 활용을 생각하는 사이 버스는 강서성 구강(九江)으로 달렸다.

4 ‘호계삼소’ 고사가 태어난 동림사 풍경. 혜원 대사가 창건한 중국 정토종의 본산으로 절 앞에 일군 연지에 백련이 하얗게 필 때마다 백련결사를 벌여 수행정진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백거이가 남긴 명작이 한눈에]



구강은 강서성 북단의 작은 도시이지만 한시 애호가에게는 도연명(陶淵明·365~427)의 고향이자 백거이(白居易·772~846)가 좌천돼 살았던 곳으로 기억된다. 송 교수가 답사단을 맨 먼저 이끈 곳은 심양루(?陽樓)다. 『수호지(水滸誌)』의 호걸 송강(宋江)이 읊었다는 반시(反詩) 강의가 이어진다.



“송강은 영웅의 기상이 도저했다는 인물인데, 어느 날 심양루에서 술에 취해 벽에 ‘서강월(西江月)’이란 시를 쓰죠. 유배된 자신의 처지를 발톱, 이빨 감춘 맹호라 표현하며 ‘후일 만약 원수를 갚게 된다면 심양강 어구를 피로 물들이리라’ 호언합니다. 반역죄로 몰려 형장에 선 그를 살린 이들과 후일 모인 곳이 양산박이고 108명 호걸이죠.”



심양루는 허름한 누각이었으나 108 호한상(好漢像)의 다채로운 모습을 묘사한 경덕진 요의 도자기 인물상과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도판 그림이 나그네 눈길을 끌었다. 각기 다른 자태와 채색 기법이 빼어났다. 2층에 오르니 강택민 전 주석이 1995년 3월 이곳을 방문해 일필휘지한 사진과 서예 도구 일습이 전시되고 있었다. 어느 유적지나 붓글씨와 한시를 넉넉하게 전시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비파정(琵琶亭)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남긴 명작 ‘비파행(琵琶行)’을 기려 세운 정자다. ‘장한가(長恨歌)’와 더불어 백거이의 대표작인 장편 서사시 ‘비파행’의 백미를 송 교수는 ‘큰 구슬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네(大珠小珠落玉盤)’로 들며 비파 음의 묘사가 절묘하다고 평가했다. 비파정 정문에는 모택동(1893~1976)이 ‘비파행’ 616자 전문을 한달음에 쓴 글이 대리석판에 새겨져 백거이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을 엿보게 한다.



이번 답사 회원 중에는 도연명의 시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았다. 도연명 기념관으로 가는 길은 그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새삼 음미하는 시간이었다. ‘돌아가자(歸去來兮)’로 시작해 ‘천명을 즐길 뿐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樂夫天命復奚疑)’로 끝나는 시의 마디마디가 가슴을 울린다. 사당 뒤쪽에 있는 도연명의 묘에 술 한 잔을 올린 송 교수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음주(飮酒)’의 제5수를 소개했다.



“묻노니 그대는 어찌 그럴 수 있는가(問君何能爾) / 마음이 멀어지면 땅도 절로 외지다오(心遠地自偏) / 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따다가(採菊東籬下) / 유연히 남산을 바라보노라(悠然見南山).”



도연명의 자서전인 ‘오류선생전(五柳先生傳)’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독서를 좋아하되 깊은 해석을 구하지 않는다(好讀書 不求甚解).” 또 중국 산수자연시의 시조라 할 ‘귀전원거(歸田園居)’ 제1수에서 “남쪽 들 황폐한 땅 개간하여서(開荒南野際)/전원으로 돌아와 졸(拙)을 지키리(守拙歸園田)”라 했다. 그 ‘수졸(守拙)’의 마음이 그가 살던 땅에 발을 디디니 더 진하게 우러났다.



 

5 여산 서북쪽에 선 비구니 절 서림사를 유명하게 만든 ‘제서림벽’ 시비. 소동파가 지은 이 명문에서 ‘여산진면목’이란 한마디가 탄생했다.

6 백거이의 장편 서사시 ‘비파행’을 기려 세운 ‘비파정’. 정문 중앙에 모택동이 암기해 일필휘지했다는 ‘비파행’ 전문이 돌에 새겨져 있다.



[“여산의 진면목은 우리 마음에 있다”]



인문기행의 본산이라 할 여산으로 향하는 발길이 분주해졌다. 여산 서북쪽 기슭에 선 동림사(東林寺)와 서림사(西林寺)는 우리에게도 낯익은 얘기가 유래한 고찰(古刹)이다. 동림사 들머리에는 이 절이 ‘호계삼소(虎溪三笑)’의 고사가 태어난 곳임을 알려주는 그림 비석이 서있다. 동림사를 세운 고승 혜원이 도연명과 육수정(陸修靜)을 만나 유교·불교·도교, 세 종교의 벽을 뛰어넘은 융합의 심정을 나눈 경지가 표현돼 있다.

7 도연명 사당 뒤쪽에 조성된 대시인의 묘소에서 송재소 교수(오른쪽)와 답사단의 최일성 선생이 술 한 잔을 올렸다.



서림사로 들어서자 송 교수가 절 뒤편에 선 시비(詩碑) 앞으로 사람들을 부른다. “횡으로 보면 영(嶺)이 되고 측으로 보면 봉(峯)이 되고(橫看成嶺側成峯) /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이 각기 같지 않은데(遠近高低各不同) / 여산의 진면목을 알지 못함은(不識廬山眞面目) / 몸이 다만 이 산중에 있기 때문일 터(只緣身在此山中). 이 구절이 바로 ‘여산진면목’이란 심오한 한마디를 탄생시킨 소동파의 ‘제서림벽(題西林壁)’입니다. 소동파가 49세에 여산에 들러 10일간 머물 때 쓴 시인데, 수많은 여산 시편 중에서 단연 압권으로 꼽혀 여산시의 총결이란 것이 후대인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사물의 진정한 모습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철리시(哲理詩)라 불리기도 하죠.”



여산에 드니 비로소 ‘여산진면목’의 참뜻이 가슴을 울렸다. “여산의 진면목은 우리 마음에 있네.” 말을 잊은 답사단은 저마다 이 한마디를 음미하며 여산의 봉우리를 올려다보았다.



묵묵한 일행의 심정을 아는 듯 송 교수는 백거이가 도연명을 연모하며 바친 ‘효도잠체()’중 제12수를 읊었다. “나 이제 늙으면서(我從老大來) / … / 다른 점은 따르지 못하겠지만(其他不可及) / 얼큰히 취하는 건 본받으려네(且?醉昏昏).” ●



 



 



무한·구강·여산(중국) 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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