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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는 기본, 미녀 아나운서 단골집


대학원에서 만난 그녀의 직업은 아나운서. 방송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중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대학원 입학을 결심했다고 한다. 입학 첫날 동기들이 한데 모인 술자리. 한 명씩 자기 소개가 이어지는데, 모 방송사에서 이미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에게 관심의 눈길이 쏠린 건 당연했다. 하얀 얼굴에 여리 여리한 몸매, 세련된 스타일. 동기 중에 아나운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동기들의 호감도는 높았다.


첫 만남은 당연히 술자리로 이어졌다. 빠르게 술잔이 돌고, 1차·2차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서서히 취기가 올랐다. 이때부터 남자 동기들이 그녀를 위한 흑기사를 자청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술을 잘 못 마실 것 같다며 자신들이 기꺼이 먹어주겠다나.


“아…네”라고 웃으며 곧바로 술잔을 건네는 그녀. 하지만 그녀는 그때 분명 속으로 코웃음을 치고 있었을 것이다. 흑기사? 흥!


곧 그녀의 진격이 시작됐다. 스토리를 짧게 축약하자면 그녀 앞에서 남자들은 우후죽순 무너졌다. 술자리에서 그녀를 이길 남자는 없다. 보통 4차는 기본.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에 주당을 자처한 남자들도 두 손 두 발 다 들고 쓰러지기 일쑤다. 한데, 그녀는 그렇게 밤새 술을 마시고도 다음날 새벽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촬영장으로 달려간다. 모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이건 뭐 대적할 자가 없다.


무적함대인 그녀가 가장 사랑한 술은 역시나 소주다. 술자리에서 소주를 남기는 일도 없지만, 혹여 몇 모금이라도 남으면 결코 그냥 두고 나오는 법이 없다. 그래서 종종 그녀는 핸드백 속에 먹다 남은 소주병을 넣고 다닌다. 소주를 한 방울이라도 버리고 오는 건 그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녀의 핸드백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내가 이러려고 명품 핸드백으로 태어났나-.


이런 애주가에게는 당연히 술 한 잔 하기 좋은 단골 맛집이 있기 마련이다. 그녀가 즐겨 찾는 곳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취재차 전화를 했다. “언니, 소주 한 잔 하기 좋은 맛집 중 어디를 제일 좋아해요?” “그건 왜?” “언니 이야기를 기사로 쓰려고요!” 돌아오는 대답은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당장 역삼동으로 오란다.


‘부산양곱창’. 2000년부터 주당들의 심야식당으로 자리 잡아온 곳이다. 새벽 6시까지 운영하기 때문에 3·4차 장소로 좋고, 밤늦게까지 이어진 야근을 끝낸 뒤 야식 겸 한잔하기도 좋다. ‘양곱창은 소주 한 잔이 곁들여지면 더 맛있는 음식’이라는 게 이 집 정연순 사장님의 철학. 10년 넘게 새벽 장사를 해오다 보니 늦은 밤에도 손님들이 꽤 많다.


메인 메뉴는 싱싱한 상태 그대로 공수해온 양·대창·곱창. 매일 아침 도축한 소를 전국 각지에서 직접 공수해오고 있다. 싱싱한 재료를 써야 구웠을 때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는데, 점점 국산 식재료 공급에 애를 먹고 있단다. 그래도 재료의 중요성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건 변함이 없다.


2인 기준으로 양·곱창·대창을 1인분씩 시키면 먹기에 적당하다. 간과 천엽은 서비스로 나온다. 재료의 신선함도 중요하지만 재료를 잘 다듬는 것도 중요하다. 아침마다 공수한 재료는 매일 매일 손질한다. 껍질을 벗기고 비법 노하우로 씻어낸다. 깨끗하게 세척된 재료를 마늘·양파·소금·후추 등 갖은 양념에 버무려 특유의 잡내를 깔끔하게 잡는다.


노릇노릇하게 구운 고기를 특제 매운 소스와 삭힌 고추를 곁들여 먹거나 참기름 장에 살짝 찍어 먹는다. 양은 많이 구우면 딱딱해지기 때문에 적당한 타이밍에 먹는 게 중요하다. 소금에 살짝 찍어서 먹는 게 제일 맛있는데 양 특유의 쫄깃쫄깃함을 느낄 수 있다. 대창과 양을 함께 집어서 먹는 방법은 사장님이 강력 추천하는 방식. 대창은 기름기가 많고 양은 담백해서 함께 맛보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오랜만에 몸보신 하느라 신나 있는데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소주잔을 든 그녀가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쏟아내고 있었다. 반항의 여지는 없다. 이어지는 소주 릴레이. 세 병쯤 마신 후 ‘2차전은 제발 밥 좀 먹고 하자’ 하소연했다.


이 집의 마지막 코스인 양김치볶음밥과 김치우동은 별미라서 꼭 챙겨 먹어야 한다. 양 볶음밥은 볶아서 나오는데, 깻잎에 싸먹으면 짭쪼름한 맛과 향이 가미돼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김치우동은 멸치·다시마·새우로 다시 국물을 낸다. 생우동면을 넣어 끓여내는데 해장용, 입가심 용으로 국물만 후루룩 마셔도 술기운이 개운하게 가신다.


하지만 볶음밥과 우동은 그저 15분 정도의 시간을 벌어주었을 뿐, 식사가 끝나자마자 다시 소주잔이 날아왔다. 결국 난 이날 언니가 건넨 소주잔을 손에 꼭 쥐고 새벽까지 달리다 장렬히 전사했다. 정말 무시무시한 밤이었다.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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