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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예술이 할 일은 무엇인가

8~1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라트라비아타



내가 만일 그림을 그릴 줄 안다면, 작품을 하나 그렸을 것 같다. 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로비를 소재로.



촛불 인파가 베르디를 듣던 날

토요일이었던 이날, 광화문 일대에 100만명이 모였다. 저마다 촛불을 들었다. 광장 바로 옆의 세종문화회관까지 그 촛불이 스며들었다. 대극장 로비에는 촛불을 든 사람이 가득했다. 이들은 실내에서 몸을 녹이거나 화장실을 이용했다. 그리도 또 한 장면. 몇몇 촛불 인파는 고개를 들어 벽면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공연되는 화면이었다. 오후 4시 시작된 집회가 절정으로 치달았던 오후 5시에 시작된 오페라다.



촛불을 든 어떤 사람이 오페라단 단장을 찾아가 물었다고 한다. “지금이 어떤 때인데 이렇게 한가한 노래들을 부르고 있나요?” 단장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일단은 우리가 할 일을 해야죠.” 그리고 ‘라 트라비아타’는 끝까지 공연됐다. 로비의 유리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입에 담기도 험악한 이야기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음악은 아름다웠다.



이 장면은 단지 아름다움과 잔혹함의 대비만은 아니었다. 이날 하필이면 ‘라 트라비아타’가 공연됐다는 사실 자체가 멋진 풍자다. 베르디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라 트라비아타’는 길을 잘못 든 여인을 의미한다. 거리에서 몸을 파는 여인 비올레타가 주인공이다. 베르디는 이 여인이 철저하게 버려지는 걸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품위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망가지는 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작곡가들이 아름다움, 또는 희극적인 스토리에 주목할 때 베르디는 이처럼 사회의 구석에 돋보기를 들이댄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그러니 어찌 음악이 바깥 세상과 상관없이 혼자 흘러간다 하겠는가. ‘라 트라비아타’가 아니었다면, 세상이 버린 여인 비올레타의 이야기에 몇 시간 동안 귀 기울일 일이 있었겠는가. 촛불 든 사람들이 밀고 들어온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유리문은 사회와 예술의 경계였고, 이날 그 문은 열렸다. 크게 들리진 않았겠지만 베르디는 마치 촛불 인파를 위한 행진곡처럼, 또 배경음악처럼 울리고 있었다. 예술가가 할 일을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회로 움직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말이다.



‘국정농단’이라 이름 붙여진 이번 일에서 화제 된 분야가 문화ㆍ예술이다. 가장 집중적으로 망가졌던 공무원 조직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였다. 누군가 검은 손을 뻗쳐도 끝까지 잘못이 드러나지 않을 것 같은 분야가 문화였던 걸까. 마치 문화와 예술이 사회와 뚝 떨어져 혼자 흘러가고 있다는 통념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부정과 비리에 대한 저항이 가장 적은 분야가 문화예술이었다는 뼈아픈 현실마저 드러내는 듯하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예술가들은 예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사람들의 눈과 귀, 마음을 잡아끌어 그 안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심어놨다. 언제나 사회에 대해 귀를 열고 있는 예술가들이 한 일이었다. 베르디가 그랬고, 수많은 블랙리스트 예술가들이 그렇게 하고 있다.



2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맥베드’가 공연된다. 역시 토요일이고, 촛불은 다시 광장에 모일 것이다. ‘맥베드’는 권력에 대한 오페라다. 맥베드는 권력에 중독된 채, 권력의 실체도 모른 채, 목숨을 걸고 끝없이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결국엔 권력 때문에 죽도록 불안했으며 권력에 의해 파멸됐다. 광장에 촛불이 모일 때마다 어떤 오페라가 공연되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풍경화다. 그 다음 토요일(12월 3일)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가 공연된다. 마음이 어수선한 사람들을 위해 예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광장 한 켠에서 이어지는 공연 목록이 그 답을 하는 듯하다.



 



 



글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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