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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교향곡

제이가 일이 있어 부산에 간다고 했을 때 운석과 서성은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나도 갈 거야!”



성석제 소설

제이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너는 왜 가는데? 당신은?”



당신이라고 불린 운석이 먼저 대답했다.



“친구 따라 고향에 간다는데 뭔 이유가 필요해요.”



제이가 서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넌 무슨 볼 일?”



“그걸 몰라서 묻나? 우린 같은 과가 아니었나? 네가 나를 그리도 모를 줄 몰랐어. 그동안 즐거웠네.”



“같은 과라니? 너도 영문과였어? 공대 아니고?”



제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서성의 대사가 더 장황해질 것을 우려한 운석이 대신 대답해 주었다. “국수 먹으러!”라고.



그로부터 이틀 만에 그들은 부산에서 조우했다. 서성은 점심은 밀면, 저녁으로 회국수를 먹고 난 뒤 저녁 열 시에 술자리가 끝나지 않은 일행을 뒤로 한 채 호텔방으로 들어와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 여섯 시에 눈을 떴다.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두 사람은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서성은 망설임 없이 호텔을 나서서 음식점이 즐비한 시장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는 몇 걸음 가지 않아 전복죽을 파는 음식점을 발견했다. 죽과 물김치가 담긴 그릇을 숟가락 하나만을 이용해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이 비운 서성은 휴대전화로 빈 그릇 사진을 찍어서 호텔에서 자고 있을 두 사람에게 전송했다. 그럼에도 결국 세 사람이 호텔 앞 카페에서 만난 것은 열 시가 넘어서였다. 서성이 물었다.



“오늘 기차가 몇 시에 떠나지?”



“오후 2시 반. 우리가 부산에서 밥 먹을 기회는 한 끼밖에 없는데 지금 아침을 먹으면 점심을 먹기가 부담스럽겠어. 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점심을 위해 과감하게 아침밥을 포기하겠소.”



운석의 선언에 제이 역시 동조했다. 두 사람은 이미 호텔 안에서 운석이 이십대 초반 대학시절 다니던 단골음식점에 가기로 합의하고 나온 참이었다. 서성은 자신도 당연히 같이 가겠다고 말했다. 그러고서 혼자 길 건너편에 있는 국수 집으로 들어가서 소면 한 그릇을 주문해 조용하게 국물까지 먹어치웠다.



열두 시가 조금 지난 시각, 세 사람은 용두산공원 아래의 오래되고 좁은 골목 한 가운데 있는 음식점에 들어섰다. 1층은 주방과 대여섯 개의 식탁이 들어있는 좁은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벽에는 화가들이 스케치한 초상들이 붙여져 있었고 간단치 않은 사연을 담은 낙서가 그득했다. 모임이 있는 큰방과 화장실이 있는 이층에서 손님이 남기고 간 그릇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던 안경 쓴 40대 여자가 그들을 힐끗 보고는 “밥 떨어졌는데” 하다가 운석을 알아봤는지 앉으라고 했다. 운석은 일행이 자리를 잡은 뒤 혼자 주방 앞으로 가서 주인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와 앉았다.



“이 집 할매가 우리 젊을 때 개인전 한다고 하면 슬쩍 불러다가는 봉투에 돈을 넣어서 보태쓰라고 주머니에 넣어주시고는 했어요. 전시 끝나고 여기로 몰려와서 외상으로 술, 밥을 얻어먹은 건 또 얼마나 많았는지. 너무 늦거나 자취방 갈 돈 없으면 저기 방에서 방석 베고 자고 가기도 했어요. 주인 할매는 손님이 마음에 안 들면 밥 없다, 하고 한 마디로 쫓아내. 이 집 메뉴도 밥, 그 한 가지고.”



서성이 조그만 소리로 물었다.



“그럼 아까 밥 떨어졌다는 소리가 우리 같은 뜨내기는 도로 나가라는 이야기였소? 누구 인상이 그리 안 좋았나?”



운석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른 식탁 앞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이 “이모, 여기 숭늉 좀 주이소!” 하고 여러번 주문을 했으나 ‘이모’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한 사람이 주방 앞으로 가서는 약소국의 외교사절처럼 굽실거리며 간청을 하고서야 스테인레스 그릇에 담긴 숭늉 한 그릇이 그의 앞에 놓였다. 운석이 논평했다.



“숭늉은 밥에 포함이 안 되는 거요. 손님이 마음에 들면 주고 마음에 안 들면 안 줄 수도 있는 거지.”



그들은 주인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사인용 탁자가 비좁도록 밥과 시락국, 김치, 콩자반, 김과 간장, 초고추장, 창란젓 등속의 밑반찬, 고등어 자반, 멸치찌개, 쌈채소, 여분의 밥이 놓였다. 거기다 자연산 미역과 다시마가 날라져왔다.



“니는 서울 가서 밥이나 제대로 얻어먹나. 이런 거는 부산 아이모 절대 못 먹을 끼다.”



주인 할머니가 직접 숭늉을 사람 수만큼 가지고와서 운석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서성을 향해 “이 사람은 와 이리 밥을 깨작거리쌓노. 이래 가 밥 한 그릇 지대로 다 묵겠나” 하고 물었다.



“저 사람은예, 아침부터 지금까지 벌써 밥을 두 끼나 먹고 왔심더.”



운석이 때를 놓칠세라 일러바쳤다. 서성이 그날의 두 끼가 ‘밥이 아니고 죽과 국수’였다고 소극적으로 항변했으나 주인 할머니는 수리부엉이 같은 시선으로 서성을 쏘아보고 있었다.



상추 위에 밥 한 숟가락에 된장·고추·양파 등속을 넣고 자작하게 끓인 멸치찌개를 적당히 끼얹은 뒤 매운 고추와 마늘 조각, 막 장독에서 퍼온 듯한 막된장을 얹어서 쌈으로 먹는 동안 사람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입이 터져라 쑤셔 넣고 씹느라 말을 할 수가 없기도 했다. 음식은 거장의 지휘를 받는 오케스트라처럼 정밀한 조화를 이루면서 마음을 울리는 깊은 맛을 만들어냈다. 특히 멸치찌개의 생멸치는 죽방렴에서 잡아와 모양이 뭉개지지 않았고 비린내가 전혀 없었다. 생멸치가 탁월한 독주자처럼 밥상 전체를 리드하면서 다른 음식의 부족한 점을 채우고 튀는 맛을 가라앉히는 인상적인 맛을 보여주었다. 서성은 까미유 생상의 ‘오르간 교향곡’의 악보를 멸치들이 채우는 것을 상상하면서 밥그릇을 말끔하게 비워냈다.



“우아, 나 밥 다 먹었다!”



서성이 뿌듯하게 배를 두드리며 외치자 운석이 밥알이 절반쯤 든 숭늉그릇을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것까지 한 그릇 다 먹어야 먹었다 할 수 있소. 여기는 부산이니까.”



멸치찌개 뚝배기가 두 번 채워지고 밥은 4인분 정도가 더 왔으며 김치· 김과 같은 반찬 역시 두세 번씩 더 공급되었다. 그 모든 것이 일인분에 육천 원이었다. 운석이 마침표를 찍었다.



“작년 가을에 개업 사십주년 기념으로 잔치를 벌였대. 잔치에 온 손님들한테 전부 다 공짜로 대접을 했다네요.”



지나가던 손님이 거기에 한 마디 덧붙이고 갔다.



“그 잔치, 하루도 아이고요. 사흘을 내리 했심더.”



 



[※‘성석제 소설’은 성석제씨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험적 칼럼으로 4주마다 연재됩니다.]



 



성석제



소설가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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