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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것 된 일본만의 것 비결은 ‘다른 피’ 받아들이기

우리 전통공예의 어제와 오늘이 한자리에 모였다. 11일부터 13일까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제1회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이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이 주최하고 한국문화재재단이 주관한 이번 행사는 매년 열리는 무형문화재 관련 행사를 처음으로 한 데 모았다는 의미가 있다. ‘코리언 에토스(KOREAN Ethos·한국적 특질)’를 표방한 주제관에서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보관중인 한창기 컬렉션 일부를 가져와 선보였다. 국가무형문화재들의 작품 전시와 시연, 체험 프로그램은 관람객들의 흥미를 돋웠다. 각 지자체 무형문화재관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서울디자인재단도 다채로운 상품을 내놨다. 전통의 현대화에 앞장서고 있는 민간단체인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재단법인 예올의 부스에도 세련된 쓸거리를 보려는 관람객이 몰렸다. ‘설화문화전’을 이어오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를 비롯해 포스코1%나눔재단과 스위스 명품 시계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도 전통공예를 지원하며 행사에 힘을 보탰다.



이중 유일한 국제관이었던 ‘재팬 크리에이티브(Japan Creative)’는 새로운 움직임을 통해 일본 전통공예의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전통공예의 현대화, 재팬 크리에이티브에서 배운다

 



“일본의 창조성은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물건 만들기)’에 의해 성장했다.”



이같은 ‘일본 모노즈쿠리의 새로운 가치’를 전세계에 전파하기 위해 2011년 10월 설립된 것이 사단법인 ‘재팬 크리에이티브(Japan Creative·이하 JC)’다. 일본의 전통 공예는 물론 지역 산업과 첨단 기술을 다각적 시점에서 다시 살펴봄으로써 현대 생활에 맞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제시한다는 모토다. 2011년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해다. 재단의 구심점인 건축가 나이토 히로시(內藤廣·66) 명예이사는 “전례 없는 자연 재해와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모든 일본인들은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일상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역경을 극복해낸 일본 문화의 원천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설립 의도를 설명한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디자이너 쿠라모토 진은 “일본에서만 만들어지는 물건 혹은 일본에만 있는 첨단 산업을 해외 디자이너와의 협업을 통해 새롭게 선보임으로써 국내외에 새롭게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라며 “해외 디자이너들은 일본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따라서 무엇이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문화를 잘 모르는 디자이너를 통해 우리도 잘 몰랐던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세대를 거쳐 계승된 물건 만드는 기술과 미(美)의식에 신선한 시각을 수혈하고 외부로는 일본 특유의 전통 문화와 산업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양수 겹장’이 아닐 수 없다.



조직은 단출하다. 대표이사인 디자이너 히로무라 마사아키(廣村正彰·62)를 중심으로 2명의 이사와 1명의 감사, R&D팀에 소속된 4명의 디자이너가 전부다. 모두 자신의 일이 있으면서 ‘대의’를 위해 틈틈이 모여 일한다. 노무라·JAL 등 21개 기업이 이들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5년간 16개 일본 브랜드와 16명(팀)의 해외 디자이너가 만나 새로운 결과물을 내놨다. 이중 6개 작품이 이번에 킨텍스를 찾았다.



 



[일본 전통장인과 외국 디자이너의 신선한 결합]



전시장 내 JC관에서 앞줄 맨 오른쪽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오이겐(Oigen)의 검정색 무쇠 주전자와 티팟, 프라이팬 등 남부철기(南部鐵器) 제품들. 1852년 설립된 오이겐은 이미 11세기부터 주물로 유명한 이와테 지역의 남부에서 전통과 명성을 쌓아왔다. 하지만 3·11대지진 때 공장의 용광로가 파손되면서 엄청난 재난을 겪었다. JC가 프로젝트의 첫 대상자로 오이겐을 선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은 셈이다. 여전히 전통의 수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오이겐의 파트너는 재스퍼 모리슨(64). 스위스의 비트라, 이탈리아의 알레시 등과도 협업해온 영국의 베테랑 산업 디자이너다. “나는 2~3년 쓰다 버리는 프라이팬 같은 것이 아닌 진정한 부엌용품을 디자인하고 싶었다”는 모리슨은 자신만의 감각을 드러낸 무쇠 제품들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남부철기 제품들의 외관이 약간 투박한 특징을 보여왔다면, 모리슨과 협업한 오이겐 제품들은 겉이 매끄럽고 간결한 외관 실루엣이 돋보였다. 특히 무쇠 주전자의 뚜껑 손잡이를 고래 꼬리 같이 생긴 두 개의 갈라진 선으로 표현한 것은 묵직한 중량감을 가볍게 상쇄하는 효과를 냈다.



앞줄 한가운데에는 이스라엘 디자이너 론 길라드(44)가 작업한 후지사토 우드크래프트의 각종 장롱 세트가 놓여있었다. 11세기 무렵부터 느티나무 숲과 옻칠, 철의 산지로 유명한 이와야도에서 뿌리를 내려온 후지사토는 1961년 설립 이후 정교한 ‘이와야도 궤’를 생산해왔다. 장롱속 서랍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맞춰져 있는지, 아래 서랍을 좀 세게 닫으면 바람이 이동해 윗 서랍이 스스르 열렸다. 때문에 아주 천천히 닫아야 했다. 길라드는 서랍 손잡이를 굵은 끈처럼 디자인해 쇠임에도 경쾌한 느낌을 주었다.



그 뒤에 자리한 나무 의자 겸 함은 히노키 공예와 영국 디자이너 피터 마리골드(42)의 합작품. 물질의 있는 그대로의 측면을 부각한 디자인으로 ‘조각 같은 제품’으로 유명한 마리골드는 섬세한 목공 기술로 유명한 히노키 공예의 토자와 추조 사장과 금세 죽이 맞았다. 그는 나무를 인위적으로 자르는 대신 옹이나 갈라진 부분에 쐐기를 넣고 망치로 쳐서 저절로 쪼개지게 하는 방법을 활용했다. 덕분에 그가 선보인 나무 의자는 나무의 독특한 결이 고스란히 살아났다.



전시 작품으로는 오지 못했지만, JC 프로젝트에는 한국인의 이름도 보였다. 제주 출신의 유영규(45) 디자이너다. 삼성전자· LG전자·모토로라·아이리버·나이키 USA를 거쳐 2010년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는 미호야 글래스와 함께 “가장 전통적인 것과 가장 미래적인 것의 퓨전”을 표방했다.



1917년 세워진 100년 전통의 화과자 전문 시바후네 코이데는 프랑스의 폴린 델투르 디자이너와 함께 “보아도 맛있고 먹어도 맛있는” 색다른 색과 모양과 맛의 조화를 이뤄냈고, 포슐린 도자기 전문 사이카이 토키는 영국 올림픽 성화를 디자인한 바버&오스거비와 은은한 조명 도자기를 만들어냈다.



전통공예뿐만 아니다. 천처럼 얇은 스피커 제작 기술을 가진 야마하, 경주용 자동차 소재인 탄소섬유 제작의 최고 기술을 가진 토레이 카본 매직 같은 첨단 기술 회사들도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합을 맞췄다.



 



[“전통이 사라지기 전에 조치를 취해야 한다”]



11일 오후 킨텍스에서 JC 소개 강연을 마친 디자이너 쿠라모토 진(사진)을 따로 만났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스튜디오의 대표로, JC에서는 R&D팀에서 일하고 있다.



JC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JC의 대표이사인 히로무라 마사아키씨는 소고 세이부 백화점에서 일하던 30년 전부터 이같은 생각을 해왔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뜻맞는 디자이너들이 힘을 합치게 됐다. 모두 자기 회사가 있고, 큰 비전을 보면서 자원봉사처럼 일하고 있다.”



왜 하게 된 것인가. “전통문화는 일본에서도 조금씩 쇠퇴하고 있다. 지속하긴 어렵지만 없어지기는 너무 쉬운 것이 전통 아닌가. 그렇게 쇠퇴하다 어느날 갑자기 없어지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정부가 지원하나. “거의 없다. 주로 민간기업의 스폰서를 받고 있다.”



왜 그런가. 정부가 해야할 일 중 하나 아닌가. “처음부터 정부에 의존하면 만약 정부 지원이 끊길 경우 업무도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정부 지원금으로 버틸 생각은 하지 말자,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먼저 만들자, 고 생각했다.”



연간 예산은 어느 정도인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대략 2000~3000만엔 정도다. 기업들의 협찬으로 진행된다.”



일년에 얼마나 선정하나. “그때 그때 다르다. 매년 2~3건 정도씩 결정한다. 현재 3건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전통공예 브랜드와 외국 디자이너는 어떻게 뽑나. “먼저 전통 쪽에서 찾고 거기에 어울릴만한 디자이너를 해외에서 고른다. 1주일 정도 일정으로 일본으로 초청해 장인들과 같이 지내고 현장을 돌아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도록 한다. 디자이너는 회사로 돌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검토해서 일본에서 제작한다.”



저작권은 어디에 있나. “디자인권은 외국 디자이너에게, 만드는 권리는 장인에게 있다. 상품화되면 매출 중 일정 부분을 재단에 기부하도록 했다. 디자이너도 같은 비율이다. 우리는 돈 벌려는 생각은 없다. 제품 제작의 목적도 상용화가 아니라 일본 모노즈쿠리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다.”



어떻게 알리나. “공예디자인과 관련된 주요 전시에 나간다. 2012년 밀라노 살로네, 2013년 파리 메종 오브제, 2014년 프랑크푸르트 암비엔테, 2015년 스웨덴 스톡홀름에 다녀왔고 올해는 미국의 NY NOW에 부스를 마련했다.”



R&D 팀은 무슨 일을 하나. “전통장인과 현대 디자이너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경우 중재에 나선다. ‘팔리지 않는다’ ‘비싸다’ 같은 고민도 함께 연구한다.”



다른 나라에도 이런 사례가 있나. “얼마 전 덴마크에서 ‘덴마크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고 싶다며 이런 저런 것들을 물어온 적은 있다.”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제조자 혼자서는 성사되기 어려운 만남과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재스퍼 모리슨과의 협업으로 오이겐 주조 제품들의 해외 판로가 넓어졌다. 히노키 공예의 제품은 런던의 갤러리에 전시됐는데 6점이 영국과 미국의 수집가에게 팔렸다. ●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Japan Creative·Sohei Oya from Nacasa & Partners In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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