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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이슈의 이면 (3) | 너무나 허술한 예산 편성] 사익에 휘둘려 줄줄 샌다

2017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한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가 11월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중앙포토]

2017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한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가 11월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중앙포토]

끝없는 의혹이 터져나오며 온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국가 권력을 사유화한 초유의 사태다. 최씨는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연설문과 각종 정책에 사견을 개입시켰다. 대통령의 참모여야 할 청와대 비서진은 그의 개인 집사 노릇을 한 혐의를 받는다. 문화·체육은 물론 외교·안보 정책까지 손댔다는 의혹도 잇따른다. 겉으로 보면 최씨는 자기 자식의 성공과 재테크 외엔 관심이 없어 보이는 ‘강남 아줌마’다. 국정은커녕 동사무소 행정에 개입할 자격도 없다. 그런데도 나라가 온통 자기 것인양 굴었다. 그 결과 대통령은 ‘꼭두각시’로 낙인 찍혔고, 나라는 허깨비가 됐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이 좌절하고 분노한다.

정권·공무원, 그럴싸한 포장으로 사유화…
국회에 감사권 주는 방안 검토할 만

권력은 크게 두 갈래로 행사된다. 인사와 돈이다. 최씨의 농단도 이 흐름을 따랐다. 딸의 승마 경력에 방해가 되는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과장은 대통령의 “나쁜 사람”이라는 말 한 마디로 공직에서 퇴출됐다. 고교 체육교사와 대학 지도교수도 같은 이유로 갈아치웠다. 장관과 차관 인사까지 좌지우지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정권의 맘에 들지 않는 기업 총수의 진퇴에까지 최씨의 입김이 미쳤다는 의혹이 나온다.

그 목표는 결국 돈이었던 것 같다. 미르·K스포츠 재단부터 시작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재테크를 시도한 정황이 뚜렷하다. 두 재단은 사흘 만에 대기업 돈 800억원을 거둬들였다. 그 돈을 빼내 쓰기 위해 비덱·꼬레스포츠 같은 회사들이 동원됐다.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바지사장’을 내세우는 기교도 부렸다. 더 가관인 건 국가 예산에 빨대를 꽂아, 대대손손 부귀를 추구했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순실표 예산’ 5160억원 추정
최씨 일가는 동계올림픽 빙상경기장은 물론 전국에 있는 스포츠시설을 사실상 사유화하려 시도했다. 정권이 바뀌어도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절묘한 방식이다. 늘품체조 1억5000만원, 동계스포츠영재센터 7억원, 뮤지컬 ‘원데이’ 1억8000만원 등에서도 알뜰하게 혈세를 챙겼다. 예산의 사유화, 국가 사업의 자기 사업화다. 사상 처음 400조원을 넘겨 ‘수퍼 예산’이라고 부르는 내년 예산에도 그의 흔적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더불어민주당 집계에 따르면 그 규모가 5160억원에 이른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인이 농단할 수 있는 국가 예산이 이렇듯 방대하고 또 허술할 수 있다니 말이다. 예산 편성과 집행 방식에 대한 원초적인 의문도 떠오른다. 한국의 예산 편성권은 정부가 갖고 있다. 기획재정부라는 한 정부부처가 예산을 짜고 집행하고 결산까지 다 한다. 그 부처를 좌지우지하는 건 청와대다. 그러니 비선이 활개치며 나라 사업을 자기 사업으로 분칠할 여지가 생긴다. 미국이라면 이런 일은 상상하기 어렵다. 정부가 돈을 쓰려면 명분과 용처, 방식을 투명하게 소명해야 한다. 쓰고 나면 역시 의회 소속인 회계감사국에서 철저하게 감사한다. 대통령의 역점 사업이라고 예외를 봐주지 않는다. 오바마 대통령의 역점 사업인 건강보험 개혁이 산전수전 다 겪으며 간신히 실현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의회가 예산안을 통과시키지 않아 연방정부 기능이 올스톱되는 일도 가끔 일어난다.

예산의 사유화를 시도하는 이들은 최순실 혼자만이 아니다. 정부 예산을 자기 곳간으로 흐르게 하려고 애쓰는 ‘작은 최순실’이 적지 않다. 이권을 공익사업으로 포장하는 기업일 때도 있고 실적이나 승진에 목마른 공무원일 수도 있다. 이로 인해 낭비되는 혈세가 결코 적지 않다. ‘KTX 2층 열차’가 단적인 사례다. 사정은 이렇다.

3년 전 국토교통부가 ‘KTX를 2층으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한 국책기관이 선정돼 138억원의 연구비를 썼다. 하지만 2층 열차를 만들 기술이 미흡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정부가 연구비 46억원을 환수키로 했지만 혈세 92억원이 허공에 날아갔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국토부는 2층 화물열차를 개발하고 있다. 컨테이너를 겹쳐 쌓으면 물류비와 수송 효율이 높아진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하지만 누가 봐도 안될 사업이다. 지금 쓰는 국제 표준 컨테이너 높이는 2.6m다. 두 개를 겹치면 5.2m다. 열차 높이까지 고려하면 6m에 육박한다. 이러면 문제가 생긴다. 대한민국 국토의 70%가 산이다. 터널이 수백개다. 2층 화물열차가 지나가면 터널에 걸린다. 이를 고치려면 경부선에만 1조2000억원이 들어간다. 정도만 해도 단단히 꼬였다. 그런데도 포기하기는커녕 한 술 더 뜬다. 국제 표준보다 낮은 컨테이너를 만들겠다고 한다. 국토부는 이를 내년 상반기 경전선 구간에 투입할 예정이다.

150억원이 들어간 태양광 무인기도 예산 낭비의 전형적인 사례다. 지난 여름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태양에너지만으로 비행하는 태양광 무인기(EAV-3)가 고도 18.5㎞의 성층권에서 90분 간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세계 세 번째로 고도 18㎞ 이상의 성층권에 진입한 태양광 무인기라며 구글과 페이스북, 러시아, 중국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항우연은 “태양전지와 배터리의 효율이 높아진다면 성층권에서 수개월씩 체공하는 태양광 무인비행기를 이용해 불법 조업 외국 어선 감시와 농작물 작황 관측 등을 보다 쉽게 할 수 있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제작된 무인기 두 대는 한 번씩 비행한 후 창고에 처박혔다. “태양광 무인기의 핵심은 배터리에 있는데 배터리 기술에서 벽에 부딪혔다”고 항우연은 해명했다. 낮에 충전한 전기로 밤에도 날 수 있는 성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다. 무늬만 태양광 무인기이지 다른 무선조종 비행기와 크게 다를 게 없다. 더구나 항우연은 애당초 배터리 기술 개발은 하지도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때 4대 강에 풀어놓겠다던 로봇물고기처럼, 전시성 연구개발(R&D) 사업이었던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국토부 2층 화물열차
이런 풍토가 예외적인 걸까. 몇달 전, 예산을 많이 쓰는 부처의 고위 관계자가 점심 자리에서 푸념했다. “내년 예산을 짜는 데 불필요한 예산 수백억원이 올라와 있었다. 산업진흥이 명분이지만 사실상 업계에 대한 특혜였다. 빼라고 지시하고 되돌려 보냈다. 하지만 100억~200억원 깎인 채 다시 올라왔다. 예산을 많이 신청하는 게 일을 열심히 하는 증거라고 여기는 풍토가 공직사회에 여전히 짙게 배어있다. 이제 고쳐야 한다.”

정부는 400조원이 넘는 내년 예산을 내놓으면서 ‘어려운 경기를 북돋우기 위해’라고 강조했다. 반대하기 어려운 명분이다. 하지만 그 명분 속엔 수많은 사익이 감춰져 있을지 모른다. 사익으로 오염된 예산은 공익을 해치고 혈세를 낭비한다. 최순실 사건이 이를 방증한다. 이제 혈세로 충당되는 나랏돈에 대한 감시가 대폭 강화돼야 한다. 공무원들이 만드는 예산, 정권이 좌지우지하는 예산을 광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현실적으론 국회의 기능을 강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달인 예산 심의 기간만으론 400조원에 달하는 나라살림을 꼼꼼이 들여다볼 수 없다. 그 기간을 두배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다음 개헌에선 미국처럼 국회에 감사권을 주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대통령과 최순실을 향한 분노가 그냥 소모되지 않고, 국가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면 대한민국엔 아직 희망이 있다.

필자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

나현철 중앙일보 논설위원 tigera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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