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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안 하고 그림만 그려도, 혼내지 않은 아버지 덕이죠”

‘포켓몬 고’ 총괄 디자이너 데니스 황
형을 손꼽아 기다린 건 순전히 다른 이유에서였다. 세 살 위 형이 학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가방 내려놓는 소리가 들리면 부리나케 쫓아갔다. 목표는 단 하나. 형 가방 속 책 무더기를 뒤져 미술 교과서를 찾아내면 줄달음을 쳐 방에 처박혔다. 미술책을 정신없이 보는 게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공부보다 그림 그리기가 좋았다. 책 모퉁이나 공책은 낙서투성이였다.

스탠퍼드서 컴퓨터공학·미술 공부
구글 사내벤처 나이앤틱 이사
게임 디자인 업계의 기대주

아이는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 학교에서의 첫 미술 시간. 한국에선 미술 시간만 되면 비슷한 소재로 모든 학생이 그림을 그리고, 교실 뒤편에 전시하기 바쁜데 그곳은 달랐다. 선생님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네 생각은 뭐야? 어떤 방식으로 아이디어를 표현할 거지? 소년은 큰 충격을 받았다. ‘왜 내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포켓몬 고를 만든 나이앤틱의 데니스 황 이사는 “나이앤틱은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세계 곳곳 작은 골목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사진 나이앤틱]

포켓몬 고를 만든 나이앤틱의 데니스 황 이사는 “나이앤틱은 구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세계 곳곳 작은 골목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기는 회사”라고 설명했다. [사진 나이앤틱]

그날 이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올 여름 세계적인 열풍을 몰고 왔던 ‘포켓몬 고’ 게임의 총괄 디자이너 데니스 황(한국 이름 황정목·39·사진)의 이야기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넥스트 콘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14일 만났다. “일이 너무 재미있다”며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선 그늘이라곤 찾기 어려웠다.

혹자는 그를 두고 ‘대박 축포’를 터트린 사람으로, 또 어떤 이는 그를 게임 디자인계의 기대주로 꼽는다. 그의 행보 때문이다. 1997년 스탠퍼드대에 진학해 컴퓨터공학과 미술을 공부한 그는 우연한 기회에 구글과 연을 맺었다. 구글을 설립(1998년)한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이 학교 컴퓨터공학과 학생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구글은 학생들 사이에서 등을 쓰다듬듯 마사지한다는 뜻의 ‘백 러브(back rub)’로 불렸어요. 우스갯소리 같은 이름이었죠. 특정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검색 결과를 분석해 나열해주는데, 이를 중요도에 따라 연결(링크-백 링크)해 준다는 의미였어요.”
데니스 황이 디자인한 광복절의 구글 두들(로고)

데니스 황이 디자인한 광복절의 구글 두들(로고)

어느 날 구글 초창기 멤버였던 기숙사 친구가 제안을 해왔다. 공학과 미술을 같이 공부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인턴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학비를 벌 겸 2000년 구글에 들어갔다. 구글에는 ‘20% 룰’이 있었다. 업무 시간의 20%를 할애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하루를 빼 구글 검색엔진 로고(두들스)를 디자인했다. 그렇게 9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광복절을 포함해 전 세계의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구글 로고가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그 사이 그는 정직원이 됐고, 구글은 2004년 8월 상장했다. 구글 주식을 받았지만 얼마쯤의 가치가 되는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벌었느냐고 물을 때마다 “일확천금이 얼마나 사람을 황폐하게 만드는지 지켜봤다”는 말로 답을 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주가는 상장 후 고공행진을 계속했다. 지난 10월엔 주당 809달러(약 94만원)까지 치솟았다.
 
두 번째 대박은 나이앤틱(Niantic)에서 터트렸다. 나이앤틱은 구글의 사내 벤처로 2010년 세워졌다. 회사를 세우게 된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사람들의 습관을 바꿔보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게 해보자. 우리 때문에 한 사람이 한 블록을 더 걷게 된다면 성공한 것이다.” 나이앤틱을 세운 존 행키 최고경영자(CEO)는 세계 최초의 위성 영상 지도 서비스인 ‘구글 어스’를 성공시킨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업은 지도를 기반으로 짜이기 시작했다.

구글은 이들에게 많은 자유를 줬다. 사람을 마음껏 뽑아갈 수 있도록 했고, 자금 지원도 해줬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필드 트립(field trip)이란 앱이었다. 지도를 기반으로 사용자가 곳곳을 걸어 다니면 각 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가령 시카고의 한 골목을 걷게 되면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스마트폰에서 ‘이곳이 바로 영화 ‘대부’의 한 장면이 촬영된 곳이다’고 알려주는 형식이다. 그는 역사서와 미술 서적을 뒤져 정보를 수집했고 이를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결합시켰다. ‘사람들을 더 걷게 하자’는 아이디어의 첫 실행이었다.
이후에도 생각은 치밀하게 실현됐다. 2013년에 나온 증강현실(AR·현실 세계에 가상의 이미지를 겹쳐 보여주는 것) 기술을 활용한 모바일 게임 ‘인그레스(Ingress)’가 그랬다. 전 세계를 무대로 걸어 다니고, 친구를 맺어야만 즐길 수 있는 가상 ‘땅 따먹기’게임이었다. 그는 “인그레스는 포켓몬 고의 설계도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인그레스가 기존 게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문화적이면서 예술적이고 역사적인 가치 있는 장소에 대해 이용자가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정보를 나눈다”는 것이었다. 닌텐도가 1995년 만든 게임 ‘포켓몬’을 AR 게임으로 둔갑시키게 된 것은 순전히 ‘재미’에서 시작했다. 걸어 다니다 툭 튀어나오는 피카추와 같은 포켓몬을 잡는 형식으로 구상했던 것이 실제 게임 개발로 이어졌다. 2015년 포켓몬 고 개발 발표를 하고 한 달 뒤 회사는 구글에서 독립했다. 구글과 닌텐도, 닌텐도의 자회사인 포켓몬컴퍼니로부터 3000만 달러에 달하는 투자금을 받은 뒤였다. 그리고 올 7월 포켓몬 고를 내놓자마자 돌풍이 일었다. 씨티그룹은 나이앤틱의 기업가치를 36억5000만 달러(약 4조2000억원)로 평가했다.
그는 “한국 출시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작업 중”이라는 말로 포켓몬 고의 한국 서비스 개시가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그는 “지금 꿈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도 했다. 게임 다운로드 횟수는 5억 건을 넘어섰고, 이용자들이 걸어 다닌 거리는 69억㎞를 뛰어넘었으니 꿈을 이룬 셈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사람들의 경험을 디자인하는 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가령 포켓몬과 같은 가상의 동물들이 테이블 위에 앉아 있다가 무릎 위로 뛰어올라오도록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며 “우리 주변의 사물을 이해하는 기기들이 생겨나면 진짜 증강현실의 세계가 펼쳐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게임을 통해 ‘마법’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는다. 일본을 예로 들었다. 쓰나미로 피해를 보았던 센다이(仙臺)시에 협조를 구하고 이달 초 이 지역 일대 400㎞ 반경에 희귀 포켓몬 ‘라프라스’ 등이 나오도록 설정했다. 백조와 거북이를 합친 모양의 희귀 포켓몬 출현 소식으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는 “한산했던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다녔다. 단기간이었지만 지역경제에도 활력이 돌았다.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했다. 그는 “게임 하나로도 전 세계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연결하고 따뜻한 인간관계를 만들 수 있도록 디자인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과 과학 좋아해, 두 분야가 만나면 불꽃 튀어”
“학교에서 공부는 안 하고 공책에 그림을 한가득 그리고 돌아와도 부모님은 한 번도 혼내질 않으셨어요.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 덕입니다.”

데니스 황 나이앤틱 이사가 지금의 길을 가게 된 데는 아버지 황만익 전 서울대 지리교육과 교수의 영향이 컸다. 한국지도학회 초대 회장을 지낸 황 전 교수는 은퇴해 미국에 거주 중이다. 황 이사가 초등학교 시절 “커서 돈을 못 벌 수도 있지만 화가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나,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과 떨어지더라도 미국에 건너가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부친은 한결같았다. 자식의 선택에 대해 단 한 번도 ‘하지 말라’고 가로막고 나선 적이 없었다. 황 이사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기대감을 가질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고 자식의 의사를 존중해준 것이 가장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덕에 ‘공부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압박감 없이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고, 스탠퍼드대에 진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황 이사는 “어릴 때 아버지 서재에서 도시 설계에 필요한 프로그램인 지리정보시스템(GIS)이나 특수도구를 자주 봤는데 지도와 인연이 깊은 것인지 나 역시 회사에서 위치기반 게임을 디자인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황 이사는 성공 비결로 재미와 노력을 꼽았다. 그는 “누구든지 좋아하는 분야가 한두 개는 있게 마련”이라며 “나 역시 미술과 과학을 좋아해 즐기다 보니 업으로 삼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 두 가지 분야가 만나면 불꽃이 튀고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기는데, 앞으로도 즐거운 ‘나만의 길’을 찾아내 꾸준히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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