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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최순실 태블릿, 힐러리 e메일…정치 이슈 터뜨리는 디지털

사상 초유의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실마리는 태블릿 PC였다. 숱한 의혹이 제기되었음에도 부인되던 것이 태블릿 PC 안의 문서들이 공개되며 만천하에 드러났다. 의혹사건이 생길 때마다 검찰이 압수해 갖고 나오는 수십 개의 박스에 비하면 태블릿 PC 하나는 작지만 그 존재감은 엄청난 것이다.

힐러리는 결국 졌다. 예상치 못한 트럼프의 승리에 모든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막말 녹음파일로 패배가 거의 확실해 보이던 선거판을 뒤집은 것은 다시 떠오른 힐러리의 e메일 스캔들이었다. 힐러리가 국무장관 시절 관용 e메일이 아닌 개인 e메일로 공적 업무를 했다는 것이 다 이길 것 같았던 선거의 마지막 발목을 잡았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휴대전화 번호가 공개됐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와 함께 전화번호가 카메라에 찍혔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국회 본회의장 등에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다 메시지 내용이 찍힌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닌데도 놀랍게 계속 사진에 찍힌다. 일부러 찍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스티브 잡스가 동네 아는 형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컴퓨터를 조립해 팔던 시절, 컴퓨터는 그야말로 전문 해커들의 놀이도구에 불과했다. 자동차도 그랬듯 컴퓨터도 처음 세상에 나오자 다들 지구상에서 몇 개 안 팔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세계 가정과 사무실을 뒤덮었고, 이제 지구인의 손 안에 모두 하나씩 들려 있다. 처음 기술 분야를 시작으로 문화·미디어·경제 영역에 침범해 들어간 컴퓨터는 마침내 늘 가장 뒤처지기 마련인 정치 분야에 발을 들이민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앞서 예를 든 사례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사건들을 일으키고 이슈를 터뜨리고 있다. 이동전화가 막 보급되기 시작하던 1990년대 초 당시만 해도 정치군인들의 친위 쿠데타설이 끊이지 않았다. 당시 쿠데타를 주동할 것으로 의심받던 한 장군은 “쿠데타를 일으키려면 보안이 유지돼야 하는데 요즘엔 휴대전화 때문에 불가능하다. 또 탱크를 동원해야 하는데 교통이 막혀 안 되고 국민들이 이제는 받아주지 않는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2010년 12월 이래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폭발했던 ‘아랍의 봄’은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을 축출했고 철통 같았던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를 끝내 살해했으며, 수많은 나라에서 총리가 사임하거나 정치범을 석방하고 국왕이 경제적 양보를 하는 등의 민주화를 불러 왔다. 소셜미디어로 연결된 시민들은 지배자의 비리를 파헤쳐 공유했고 ‘혼자가 아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항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곳이 많다.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은 엄청나다. 앨빈 토플러가 그의 명저 『권력이동』에서 밝혔듯이 디지털은 권력을 교체하고 있다. 그것은 단순히 휴대전화 번호가 찍히고, 태블릿 PC의 파일이 노출되기 때문이 아니다. 지식의 공유와 소통이 무한대로 가능해지면서 수평사회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 어느 시대에 이렇게 전 지구인이 함께 동시에 세계 정치를 논한 적이 있었을까.

주말마다 수많은 촛불 시민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한 손에는 촛불이 있고 다른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 있다. 누구나 영상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가 가능한 라이브 방송 기능, 순식간에 모든 사람에게 서로의 생각과 감정, 위치까지 사진과 메시지로 실시간 공유하는 기능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라는 종은 허구를 믿고 서로 협력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것은 미르의 부적도 아니고, 우주의 기운도 아니다. 과학과 정의,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려 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가만히 다시 생각해 본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었더라면 이 모든 것이 가능했을까? 우리는 얼마나 깜깜한 세상에서 아직도 헤매고 있었을까.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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