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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무책임한 위로라도 필요한 시기

김형경 소설가

김형경
소설가

해병대에 입대한 조카 친구는 새로운 환경과 역할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힘든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군부대에서 조카에게 전화해 불편한 마음을 표현하는 눈치다. 조카가 전화기를 건네주는 바람에 그 친구와 통화한 적이 있는데 스무 살짜리 해병대 남자는 주로 성장통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임들에 비해 자기는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왜 귀가 얇은지, 문득 우울해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정체성과 가치관 형성을 둘러싼, 그 나이 발달 단계에 부합되는 고민이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훌륭하다.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능력이야.” 인정과 지지가 빈말이 아닌가 의심하는 눈치지만, 진심이다.

청춘기에, 빈말이라도 따뜻하게 하는 게 인생인지, 아프겠지만 진실을 건네는 게 우정인지 고민한 적이 있다. 그 기준이 상대방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정신분석 치료 첫 단계에서는 ‘인정과 지지’만을 사용한다. 분석가와 내담자 사이에 치료 동맹이 형성되고 신뢰가 쌓인 후에도 내담자의 자기표현만을 격려한다. 내담자의 자아가 어느 정도 강해졌다고 판단된 이후에야 아픈 진실을 눈앞에 꺼내 보이는 ‘해석과 직면’을 사용한다. 자신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 타인에 대한 잘못된 관념 등을 알아차리며 인식이 바뀌어간다. 치료는 해석과 통찰 과정에서 이뤄진다.
 
사회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정신의 상부구조는 개인에 따라 크게 다른 반면, 정신의 무의식적 기반은 모든 사람이 비슷하다.” 프로이트의 말이다. 융은 비슷한 개념을 ‘집단 무의식’이라 명명했다. 우리 민족은 뛰어난 자질을 가졌으면서도 건강하지 못한 집단 무의식에 오래 갇혀 있었다. 스스로를 ‘한(恨)의 민족’이라 정의하고 원한과 보복의 패러다임을 전승해 왔다. 국어 교과서에서 ‘한을 노래한 시’라는 풀이를 얼마나 자주 만났는지. 미숙한 감정처리 결과 분노 투사의 사건들로 현대사를 장식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변화를 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정과 지지라는 도구를 주로 사용해 왔다. 젊은이들이 “무책임한 위로, 근거 없는 격려”라며 불편해할 정도로.

요즈음 우리 사회는 바야흐로 해석과 직면의 시기로 접어드는 듯 보인다. 사회 곳곳에서 ‘민낯’이라 불리는 아픈 진실이 드러나고, 결핍감이 빚어낸 비리 사건들과 마주하는 중이다. 직면은, 그 내용물을 마음에서 소화시켜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야 한다. 그 여정에서도 여전히 격려와 지지가 필요하다.

김형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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