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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건강한 분노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송인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인간의 감정 가운데 그 어느 것 하나도 불필요한 것은 없다. 기쁨과 즐거움, 사랑 같은 감정은 두말할 나위 없고, 흔히 부정적 감정이라 여겨지는 슬픔과 불안, 수치, 질투 같은 감정들도 모두 인간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해 왔다. 슬픔을 표현함으로써 마음이 정화되고, 불안을 느낌으로써 앞으로 닥쳐올 위험에 대비하고, 수치심이 있기에 부끄럽지 않게 살려 비추어 보며, 질투함으로써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는 식으로 말이다. 스스로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조절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표현된다면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건강한 것이다.

분노라는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가을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주최한 원탁토론회 “분노조절장애, 우리는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나?”에 토론자로 참석해 우리 시대의 분노에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었다. 아직 분노조절장애라는 명칭은 공식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단어가 흔히 사용되고 있다. 폭발적인 공격성을 만들어 내는 분노감정이 우리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으나 아직 분노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충분히 깊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주장한 것은 모든 분노가 부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 즉 진단되고 치료되어야 할 병리적인 분노와, 인간의 건강한 감정으로서의 분노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칫 분노조절장애가 의료중심적으로 광범위하게 진단된다면 정당하고 건강한 분노감마저 질병으로 쉽게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분노감을 느끼게 되는 상황과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분노할 만한 상황에서는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서 분노감을 느끼지 못하거나 억압한다면 더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스테판 에셀이 그의 저서 『분노하라』에서 주장했듯 ‘앵디녜 부(Indignez-vous·분노하라)!’는 함성은, 사회 정의와 변화를 위한 정당한 반응이다. 이러한 국민의 정당한 권리가 마치 개인적 감정의 조절 문제인 듯 책임이 오도되는 것은 이런 사회에 책임을 져야 할 이들이 손쉽게 내리는 핑계다. 근본적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는 것보다 사람의 감정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그들이 늘 간편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니던가.

여러 지표상으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생각할 때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분노감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양극화와 불평등은 심화되고 저성장 사회 속 미래는 불투명하며 노동시장의 유연화로 인해 직업의 불안정성은 심해지고 있다. 여러 객관적인 통계지표들은 이러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자살률 1위, 노인빈곤율 1위, 산재사망 1위, 고용불안 1위, 가계 부채 증가율 1위 등등. 반대로 국민행복지수 33위, 복지충족지수 31위, 아동청소년 삶의 만족도 최하위 등등. 이런 현실 속에서 느껴지는 분노감은 당연한 감정이 아닐까.

게다가 지금 우리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비상식적 문제들을 목도하고 있다. 안으로는 인간의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고, 밖으로는 명왕성까지 탐험하는 이 첨단기술의 시대에 선진국이라 자부심을 가졌던 우리나라가 기이한 일단의 집단에 휘둘려 전근대적인 시대로 퇴행해 있었던 것이다. 도무지 이해되지 않던 수많은 불합리한 일들로 우리를 답답하고 혼란케 했던 것들의 정체가 드러나고 있다. 게다가 책임져야 할 이들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국민의 정당한 분노가 마치 정치적인 것인 양 착각하고 있다. 지금껏 기다려 주었던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인내심을 어떻게 여겼단 말인가.

분노의 기능은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프랑수아 를로르와 크리스토프 앙드레가 설명했듯 타인이 자신을 만만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즉 분노는 상대방에게 경각심을 주어 우리 자신을 지키는 보호수단이다. 지금의 분노는 국민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당연한 것이다. 우리 국민은 성숙하다. 타당한 원인에 대해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건강한 분노는 합당하다. 합당한 분노는 우리의 권리다. 불의와 부정에 대한 분노, 국민의 당연한 권리다. 우리의 분노는 건강하다.

송 인 한
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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