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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결국, 천적은 나였던 거다

전영기 논설위원

전영기 논설위원

미국 뉴욕에서 아베 일본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만나는 장면은 부러움이다. 아베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하고 안보 무임 승차에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트럼프와 단둘이 만나 허실을 탐지하면서 국익을 설파했을 것이다. 아베는 비행기에 올라타기 전 국회에서 “TPP는 결코 끝난 게 아니다. 일본이 주도하겠다”고 확고한 국가 메시지를 날렸다. 사람을 미리 보내선 “트럼프 당선인과 최고 수준의 개인적 신뢰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개인 메시지를 전했다. 트럼프는 뒤통수를 치고 마음에 없는 말을 하며 판을 흔들어 이익을 극대화한다. 이 기이한 세계의 ‘표준 질서’를 상대로 아베도 허를 찌르는 감각과 열정적인 추진력을 발휘했다. 정상끼리 면담으로 큰 걸음을 후딱 내디딘 일본에 비해 차관급 인사를 파견해 트럼프 인수위 사람들을 접촉하고 있는 한국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박 대통령 반격에 사람들 질려
원칙 잃은 문재인 책임 제일 커

온 세계의 정부·의회가 정성을 다해 트럼프 대책에 골몰하고 있지만 한국 정치는 예외다. 인간의 염치는 사라졌다. 권좌에서 버티기와 무조건 밀어내기만 있다. 집권욕 앞에 국익 논의는 금기시된다. 추악과 천박, 음모·꼼수·반격이 난무하는 게임의 나라. 이게 한국 정치의 실상이다. 감 떨어지고 물정 모른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 이럴수록 원칙과 헌법, 국민을 얘기해야 한다.

최순실 사건으로 잠시 넋을 잃은 듯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듯하다. 그의 퇴진 거부, 수사 지연, 선제 공격에 사람들은 질려 버렸다. 곧 피의자 신분으로 떨어질 대통령이 “부산 엘시티 비리 사건을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지침을 내렸으니 검찰은 황당할 것이다. 박근혜식 권력정치에서만 볼 수 있는 블랙 코미디다. 지난달 25일 ‘100초 담화’ 이래 20여 일간 박 대통령의 궤적은 박근혜식 권력정치의 진면목을 보여줬다. 시간을 벌어(두 차례 대국민 사과)→ 명분을 축적하다(국회 방문과 야당에 총리 합의 요청)→ 상대가 허점을 보일 때(야당의 영수회담 철회 소동과 분열)→ 과감하게 반격한다(부산 정치인들을 떨게 할 엘시티 수사 지시).

박 대통령에게 반격의 빌미를 준 건 야당이다. 그들은 오랜 습관대로 거리정치와 의회정치가 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헌법 파괴에서 발생한 문제를 똑같이 헌법 파괴적인 발상으로 해결하려 한다. 여기엔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문제가 가장 크다. 영향력에 걸맞은 책임성이 미흡했다. 문재인은 처음엔 ‘거국중립내각의 총리’를 국회에서 뽑자고 하더니 100만 집회 사건 뒤엔 ‘조건 없는 퇴진 투쟁’으로 말을 바꿨다. 국회의 역할을 빼버렸다. 그는 또 무조건 하야를 외친다. 그러나 5년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에게 본인 의사에 반해 하야를 반복적으로 강요하는 건 현행 헌법과 부딪친다. 헌법에서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탄핵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탄핵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변한다. 뭘 의도하는 걸까.

문재인의 치명적 문제는 하야를 주장하면서 정작 박 대통령이 하야할 경우 일언반구 대안을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 침묵은 금이 아니다. 헌법의 계속성과 국가의 동일성에 관한 고민이 없다. 이대로라면 황교안 국무총리가 권한대행을 맡게 되는데 문재인은 그걸 허용할 수 없다. 황교안이 싫으면 새 총리를 세워 박 대통령의 임명장을 받아 두기라도 해야 한다. 대통령도 야당이 합의하면 그걸 수용하겠노라 공식적으로 약속한 바 있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것도 거부하고 있다. 이도 저도 안 되고 무조건 하야하라니 결국 헌법 중단 상태를 유도하는 건가. 문재인의 앞뒤 안 맞는 비원칙, 비헌법적 언행이 야권의 책임 있는 대응을 어렵게 만들었다. 박 대통령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건 놀랍지 않다.

문재인의 흐릿한 대응은 지금부터 60일 이내 조기 대선을 치르면 자기밖에 당선될 사람이 없다는 주변의 부추김에 다른 야권 주자들과 선명성 경쟁이 겹쳐 나온 듯하다. 급했던 것이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조병화 시인의 시).”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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