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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이모 얘긴 금기야”

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정용환
JTBC 정치부 차장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가을 초입 2012년 대선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40대 인사와 얘기를 나누다 깜짝 놀랐다. 시중에 돌던 우병우 전 민정수석 장모와 최순실씨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대뜸 “이모 얘기는 금기”라며 선을 그었다. ‘친박 캠프의 어떤 그룹에선 최씨를 이모로 불렀구나’로 시작해 질문이 꼬리를 물었지만 답을 얻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최씨가 브로치·목걸이를 청담동에서 구입해 전해준 걸로 확인됐다”며 최순실 이름 석자를 공개적으로 대중에게 각인시키기 전이었다. 쉬쉬하던 정서의 속내는 대통령 사과 이후 정국이 블랙홀로 빠져들던 와중에 만난 여당 중진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최순실 얘기는 역린이었지, 역린.”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를 통해 최씨가 벌인 국정 농단의 윤곽이 드러났다. 이 때문에 요즘 여의도에선 ‘할 말은 한다’고 평가할 수 있는 강골들이 대통령 주변에서 시나브로 사라졌던 배경이 이제야 이해된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중국의 환구시보는 비선 실세 사건을 ‘암선친신(暗線親信)’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가며 보도하고 있다. 암선은 첩보 영역에서 쓰는 비선을 의미하고 친신은 권력과 가까워 인사나 정책에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실세를 말한다. 암선이나 친신은 중국어 사전에 있지만 이를 조합한 단어는 없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락을 주고받는 중국 학자들에게 물었더니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지 헷갈렸다고 한다. 사전에도 없는 개념의 국정 농단이었단 얘기다. 중국 역사에선 첩보 세계의 비선이 실세 노릇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실세라면 공식 직함을 놔두고 비선으로 돌아다닐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춘추전국시대 말기 진시황의 킹메이커였던 여불위가 비선 실세로 국정을 농단하다 형장에서 최후를 맞았던 일이 있지만 2000년 전 에피소드다.

우리에게도 낯설긴 마찬가지다. 15세기 말 조선 성종 때 관원 최부(崔溥)가 명나라에 표류했다 돌아와 『표해록(漂海錄)』을 남겼다. 그에게 환관이 권력을 행사하는 명나라의 정치문화는 이질적이었다. 그때도 이랬는데 500년이 지난 요즘 세상에 ‘문고리 3인방’의 역할 분담을 업고 비선 실세가 국정 곳곳에 그림자를 남겼다는 게 도무지 믿겨지지 않아 허탈감을 표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제왕 시스템에서 권력자의 신임을 받는 실세의 등장은 동서고금에서 반복되는 패턴이다. 충정이든 소명의식이든 이런 게 빠지면 실세의 권력 농단은 피할 수 없는 공통 현상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 현실은 역대 정부의 측근 비리 사건이 증명하듯 이런 현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2007년, 2012년 최순실 일가의 전횡 가능성을 예고하는 전조들이 있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직진했다. 개헌을 얘기하기에 앞서 선거의 여왕이 구축한 아성에 안주했던 역대 친박계 의원들의 침묵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정 용 환
JTBC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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