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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도망가거나, 쫓겨나거나, 혹은 ···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총 95년. 2011년 이른바 ‘아랍의 봄’ 때 이집트·리비아·튀니지 세 나라 독재자의 통치 기간 합계다.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가 42년간,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가 30년간, 튀니지의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가 23년간 집권했다.

이들 중 재위 기간이 가장 짧은 벤 알리는 시위가 확산되자 야반도주했다. 그가 탄 비행기는 프랑스로 향했는데, 프랑스 정부가 착륙을 불허하자 사우디아라비아로 기수를 돌렸다. 그 뒤 대통령궁 벽 뒤의 비밀금고에서 금괴·보석·달러화가 발견됐다. 경황이 없었거나 가져갈 게 너무 많았거나 둘 중 하나로 풀이됐다. 튀지니 법원이 궐석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해 놓았지만 그는 사우디 항구도시 제다에서 5년째 무탈하게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무바라크는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내전 상황이 예상되자 퇴진을 선언하고 홍해 인근 별장으로 피신했다. 그 뒤 ‘이슬람 형제단’이 주축인 재야 세력이 선거로 집권했다. 하지만 13개월 만에 무바라크 추종 군부 세력이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았다. 지난해 초 무바라크는 유혈 사태에 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그는 수도 카이로의 군 병원에서 2년 반째 조용히 지내고 있다.

가장 비극적 운명을 맞이한 이는 카다피다. 초기에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다 국제사회에서 ‘학살자’로 지목됐다. 이후 반대 세력과의 무력 충돌이 발생했고 나토군이 카다피군을 공습했다. 최소한 수천 명이 폭격과 총격으로 숨졌다. 쫓기던 카다피는 고향 길가의 하수관 속에 숨어 있다가 반군 민병대원에게 발각돼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시신은 인근 육류 보관 창고로 옮겨져 시민들에게 공개됐다. 리비아 사태 취재 중 그 하수관과 창고 바닥에 놓인 그의 시신을 봤다. ‘카다피의 오판이 자신과 국민의 엄청난 불행을 불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나라의 현재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 벤 알리가 비교적 순순히 물러난 튀니지는 그 뒤 개헌·총선·대선을 거치며 민주화 과정을 밟고 있다. 무바라크가 2선으로 후퇴한 이집트는 여전히 정정 불안 속에 있지만 적어도 2011년보다 인권 상황이 악화되지는 않았다. 카다피가 끈질기게 버텨 내전까지 치른 리비아는 그 후유증으로 종파 간, 지역 간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나라를 셋으로 갈라야 싸움이 그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자격 잃은 지도자가 어떤 처신을 하느냐가 나라와 국민의 앞날을 바꾼다. 그 자신의 운명도 바꾼다. 현재가 곧 미래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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