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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벽 올라가자 “내려와” 전경 방패 빼앗자 “돌려줘” 외쳐

12일 오후 9시45분.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인 내자로터리에서 일부 시민이 전경들로부터 경찰방패 2개를 빼앗았다. 이때 “돌려줘”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나왔다. 경찰 방패는 다시 전경에게 돌아갔다. 이날 광화문 광장에는 역대 집회 사상 가장 많은 100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촛불을 들었다. 촛불의 메시지는 “이게 나라냐”는 ‘분노’였지만 분노가 표출된 양상은 예전과 달랐다. 과거와 달라진 다섯 장면을 꼽아 봤다.
 
① “평화 시위 약속했다”
100만 촛불 민심 시민은 성숙했다 - 내자동

100만 촛불 민심 시민은 성숙했다 - 내자동

이날 경찰은 2만5000명을 집회 관리에 투입했다. 하지만 100만 시위대와 경찰의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후 7시, 한 20대 남성이 경찰이 설치한 차벽 위에 올라가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오히려 시위대가 “평화시위 약속했다, 내려와 내려와”라는 구호를 외치며 20대 남성을 저지했다. 경찰이 술에 취해 경찰 차량에 올라 행패를 부린 50대 남성을 제압하자 시민들은 “잘한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경찰과의 대치에 사용됐던 각목 대신 야구장에서 응원도구로 사용되는 막대풍선이 등장했다. 쇠파이프와 복면, 밧줄, 물대포와 캡사이신 등 대규모 집회 때마다 등장했던 각종 물품도 자취를 감쳤다.

쇠파이프 대신 응원용 막대풍선
노조·단체보다 가족·친구끼리 많아
경찰 “심정 이해한다” 물대포 안 쏴
집회 끝나자 촛농 떼고 청소·정리

 
② 넥타이 부대에서 교복 부대로
이날 집회엔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이 대거 등장했다. 광화문과 탑골공원에서도 각각 중고생 1000여 명이 모여 집회를 했다. 명덕여고 2학년 홍주연(17)양은 “6시에 학원 끝나고 달려왔다”며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30분 시작된 촛불집회에서 처음 무대에 오른 건 박근혜 대통령의 모교인 성심여고 학생들이었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주역이었던 ‘넥타이부대’에 이어 ‘교복부대’가 심벌처럼 등장한 집회였다. 집회에 중고생이 많이 보인 건 최순실(60)씨의 딸 정유라(20)씨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 의혹 등이 도화선이 됐다. 나유진(18)양은 “열심히 노력하면 정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사회라 생각했는데 정씨 부정입학 사건을 보니 열심히 해도 권력계층의 발밑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③ 단체보다 일반 참가자가 주도
100만 촛불 민심 시민은 성숙했다 - 청와대

100만 촛불 민심 시민은 성숙했다 - 청와대

촛불집회는 노조나 시민단체가 아닌 연인·가족·친구 등 일반 참가자들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시청역 등에는 시민들의 발길이 끝없이 이어졌으며, 집회를 마치고 퇴장할 때는 “아이가 있으니 조심해 달라”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왔다. 경기도 시흥시에 사는 유경희(45)씨는 딸 김하율(6)양을 데리고 집회에 참석했다. 유씨는 “언젠가 딸이 자라서 또 딸을 낳았을 때 오늘 장면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엄마도 저 자리에 있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회에 잘 보이지 않던 60대 이상의 참가자들도 많았다.
 
④ 경찰도 강경대응 자제
경찰의 ‘무조건 막는다’는 대응 기조도 바뀌었다. 한때 내자동 로터리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경찰도 강경 대응은 하지 않았다. 경찰이 방송으로 “여러분의 심정을 이해한다”며 시위대를 달래기도 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유연하게 집회에 대응한다는 기조지만 통제 불능일 경우 최후에는 물대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물대포는 끝내 등장하지 않았다. 경찰과 시민이 서로 물리적 충돌을 자제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대치가 장기화되면서 시위대 앞쪽 일부 시민들이 헬멧을 쓴 경찰을 향해 스펀지 방석으로 부채질해 주거나 경찰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하기도 했다.
 
⑤ 시위 뒤 등장한 쓰레기 봉투
촛불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촛불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이 지난 12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집회엔 풍자가 가득했다. 본집회에 앞서 참석자들은 ‘늘품체조’를 패러디한 ‘하품체조’로 스트레칭을 했다. 늘품체조는 차은택씨 주도로 문화체육관광부가 3억5000만원을 들여 만든 체조다. 여기에 손을 배에 모으고 허리와 고개를 앞으로 숙이는 동작을 추가했다. 주최 측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검찰이 공손히 인사하는 모습을 본떴다’고 설명했다. 참가자들은 흰 셔츠에 선글라스를 머리에 얹은 최순실씨를 패러디하기도 했다.

집회 종료 후 시위대는 삼삼오오 쓰레기봉투를 들고 다니며 광장을 정리했다. 광장 바닥에 떨어진 촛농을 떼서 버리는 대학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고등학교 3학년 황지연(18)양은 “시위가 쓰레기 때문에 책잡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모(29)씨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면 우리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정확히 전달될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장덕진(사회학) 교수는 “시민들이 헌법정신을 무너뜨린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준법 시위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글=안효성·노진호·윤재영 기자 hyoza@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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