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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때 기다려 올인…108년 저주 푼 엡스타인 ‘머니볼’

MLB 시카고 컵스의 우승 경영학
1908년 이후 108년 만에 미국프로야구(MLB)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컵스 선수들이 지난 3일(현지시간)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 시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오른쪽)은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사진 MLB닷컴]

1908년 이후 108년 만에 미국프로야구(MLB)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시카고 컵스 선수들이 지난 3일(현지시간)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모습. 시오 엡스타인 시카고 컵스 사장(오른쪽)은 뛰어난 경영 수완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사진 MLB닷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프로야구(MLB) 시카고 컵스의 역사적인 우승 확정 순간을 생중계하던 현지 TV 채널은 관중석의 한 백인 남성부터 화면에 담았다. ‘저주 전문 해결사’ 시오 엡스타인(43) 컵스 사장이었다. 그는 어린 아들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면서 기뻐했다.

스타선수 많은데 성적은 바닥
저비용 고효율 유망주로 리빌딩
PO 진출 전력 갖춘 뒤 최고 물색
레스터·채프먼 영입에 거액 쏟아

컵스의 우승은 1908년 이후 108년 만의 일이었다. 팬들은 ‘염소의 저주’가 컵스의 우승을 가로막고 있다고 했다. 이 용어는 45년 MLB 월드시리즈(WS)에서 컵스 홈구장에 입장하려던 한 팬이 염소를 데려왔다는 이유로 출입을 거부당하자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엡스타인은 빼어난 경영 수완으로 그 저주를 푼 주인공이 됐다. 중계 카메라가 먼저 그를 조명한 이유다.

그는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 시절에도 86년 묵은 ‘밤비노의 저주’를 풀고 팀을 두 차례(2004·2007년) 우승으로 이끈 바 있다. 레드삭스는 전설의 선수 베이브(밤비노) 루스를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한 뒤 우승을 못하는 징크스에 시달렸다. 미국 예일대 출신의 수재로 28세 때 MLB 역대 최연소 단장에 오른 엡스타인은 당시로선 생소했던 ‘세이버메트릭스(sabermetrics)’라는, 야구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엡스타인(왼쪽)과 조 매든 컵스 감독. [사진 USA투데이]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는 엡스타인(왼쪽)과 조 매든 컵스 감독. [사진 USA투데이]

빌리 빈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부사장의 경영 방식을 다룬 책 『머니볼(Moneyball)』에도 등장하는 이 시스템은 1차 통계 이외의 의미 있는 ‘숨은 통계’에 주목, 저평가된 저비용 고효율의 선수를 가려낸다. 예컨대 기존의 야구에선 타자의 타율이 중시됐다면, 세이버메트릭스 분석은 출루율에 중점을 둔다. 단타 하나와 볼넷 하나의 생산성이 같으므로 타율 높은 타자만큼 생산적(이면서도 저평가)인 출루율 높은 타자를 가려 쓰는 식이다. 이는 단편적 예일 뿐 실제론 숨은 통계를 훨씬 다양하게 응용한다. 엡스타인은 레드삭스나 컵스 같은 ‘부자 구단’ 운영에선 거의 최초로 이런 시스템을 썼다는 점에서 빈 부사장과는 차별화된다(부자 구단일수록 이름난 선수 영입에 별 어려움이 없어 굳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고집하지 않는다). 빈은 ‘가난한 구단’ 애슬레틱스를 꾸준히 플레이오프(PO)에 올려놓은 효율 경영의 선구자이지만 아직 우승 경험은 없다.

엡스타인의 첫 부임 당시 레드삭스는 선수 구성에 천문학적인 돈을 쓴 리그 내 일부 팀 중 하나였지만 PO 진출엔 3년 연속 실패했다. 경영학으로 치면 일종의 ‘승자의 저주’에 걸린 격이다. 경쟁 구단들을 제치고 ‘대형 매물 기업(스타플레이어)’을 대거 ‘인수(영입)’했음에도 성과는 시원찮았다. 이에 엡스타인은 세이버메트릭스 관점에서 알짜 선수들을 차례로 영입했다. 반면 유격수 노마 가르시아파라 등 간판선수도 고비용 저효율로 판단되면 가차 없이 다른 팀에 보냈다. 그가 취임 직후 “양키스의 성공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택하겠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돈을 ‘많이’ 쓰는 것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2004년 우승으로 승승장구하던 젊은 엡스타인에게도 시련기는 찾아왔다. 2005~2006년 성적에 대한 조바심으로 자유계약선수(FA) 영입에 천문학적 돈을 썼지만 이들이 부진해 팀도 PO 진출에 실패했다. 그야말로 스스로 승자의 저주에 빠진 셈이었다. 그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번엔 팜(선수 육성) 시스템을 강화해 직접 저비용 고효율의 유망주를 선별·발탁하면서 팀 체질 개선에 나섰다.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 중견수 저코비 엘즈버리 같은 알짜 선수들이 이때 등장했다. 결국 2007년에 두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11년 10월 컵스로 자리를 옮긴 엡스타인은 2012~2013년 팀이 하위권을 맴돌면서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그는 출루율 높은 타자, 수비 잘하는 외야수, 긴 이닝 소화형 선발투수 등 저평가된 자원의 내부 육성에 힘쓰면서 참을성 있게 기존 성공 방정식을 따랐다. 3루수 크리스 브라이언트, 2루수 하비에르 바에스 등이 이렇게 길러졌다. 2014년 팀이 궤도에 올라 PO 진출권 전력이 되자 그는 우승에 ‘올인’하는 전략을 택했다. 미래보다 현재에 초점을 맞출 때라는 판단으로 팀에 꼭 필요한 베테랑 영입에 나섰다. 2년간 1선발급 에이스 투수 존 레스터,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는 유틸리티플레이어 벤 조브리스트 등 FA를 거액을 들여 영입했다. 이들 모두 컵스 우승의 1등 공신이 됐다.
아롤디스 채프먼.

아롤디스 채프먼.

특히 엡스타인은 트레이드할 때 상대 구단의 입장을 적확하게 파악, 구미가 당길 만한 제안을 함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얻어냈다. 이번 PO를 앞두고 지난 7월 양키스로부터 시속 170㎞의 ‘광속구’로 유명한 마무리투수 아롤디스 채프먼을 데려온 것이 대표적이다. 양키스는 채프먼을 보유했음에도 올 시즌 팀 성적이 시원찮아 리빌딩(팀의 전면 재구성)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엡스타인은 이를 노려 팀 내 최고 유망주였던 유격수 글레이버 토레스 등 선수 4명을 제시, 채프먼 영입에 성공했다. 채프먼은 WS 7차전에서 동점 홈런을 허용하긴 했지만 PO 전반에 걸쳐 팀에 기여했다.

야구 전문가들은 “매년 PO에 진출할 만큼 팀 전력이 안정됐을 땐 우승을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적기(適期)를 놓치면 언제 또 우승 기회가 찾아올지 모른다”고 강조한다. 108년 만에 우승한 컵스뿐 아니라 2010~2011년 연속해서 준우승에 머문 뒤 이제껏 우승하지 못한 텍사스 레인저스 등의 경우에서 이 같은 ‘진리’를 재확인할 수 있다. 엡스타인은 승부사답게 적기를 안 놓치려 승부수를 던져 들어맞은 경우다. PO 진출권 전력에서 정체돼 우승하지 못하고 있는 팀이라면 이를 염두에 둘 만하다.

경영학적 관점에서 보면 엡스타인의 경영 전략은 승자의 저주로 고민하는 국내외 수많은 기업들에도 시사점을 준다. 첫째, 과감한 투자가 좋을 때도 있지만 지나치면 독이 된다. 2005~2006년 엡스타인 자신이 겪은 FA 영입 실패의 사례가 그렇다. 둘째, 거액을 들인 인수합병(M&A) 시도는 해당 사업 분야가 본궤도에 오른 다음에 하는 것이 좋다. 야구로 치면 PO 진출권 전력은 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전까진 고비용 저효율의 사업 부문(스타플레이어)을 정리하고 신(新)성장 동력(유망주) 육성에 힘쓰면서 ‘기초 체력’을 튼튼히 해야 신사업 성공(우승)에 도전할 수 있다. 아울러 외형상의 그럴듯한 통계(기업 규모 등)에 휘둘리기보다는 객관성을 담보한 숨은 통계에 집중해 ‘블루칩’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승자의 저주를 푼 엡스타인의 성공 방정식이었다.
 
엡스타인 사장
1973년생. 미국 예일대를 나와 샌디에이고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홍보부 직원으로 일하며 MLB와 인연을 맺었다. 28세 때 보스턴 레드삭스 단장에 파격 취임하면서 성공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하루 16시간씩 일하는 ‘워커홀릭’으로 유명하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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