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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촛불 든 학생들의 정유라를 향한 분노

양영유 논설위원

양영유
논설위원

12일 광화문 집회는 2016년 가을 국난(國亂)의 결정판이었다. 나는 100만 시민과 함께 ‘박근혜 퇴진’을 외친 중고생들의 마음에 주목했다. 연필 대신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고 울부짖는 아이들에게 부끄러웠다. 그들의 상처는 깊고 깊었다. 특히 최순실 딸 정유라의 ‘특혜 인생’을 향한 분노는 혼박(昏朴)에 대한 그것 이상이었다.

아이들은 결연했다. “능력 없으면 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말한 정유라를 둘러싼 온갖 의혹을 밝히지 않으면 사회와 교육의 정의는 죽은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최순실이 검찰에 출두한 날(10월 31일) 정유라는 이화여대에 효력도 없는 온라인 자퇴서를 내는 꼼수를 부렸다. 자퇴는 재입학 가능성이 열려 있어 입학 취소나 제적보다는 유리하다. 부정 입학과 학사 특혜가 사실로 판명되면 퇴출당하게 되니 보험을 들려고 황급히 제출한 게 분명하다. 세상을 호락하게 본 특혜 인생의 오만이다.

이화여대 입시·학사 특혜의 도화선이 된 체육특기자 제도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다.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중·고교에 도입해 이듬해부터 대학에 적용했다. 엘리트 체육으로 군사 정권의 위용을 포장하자는 속셈이 있었다. 그럼에도 효과는 컸다.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하고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 되는 데 큰 역할을 해 온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데 아버지가 만든 제도가 딸에게 부메랑의 불씨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

묘한 것은 또 있다. 최순실의 ‘문화계 배후’란 의혹을 사고 있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의 할리우드 액션이다. 그는 2014년 12월 “스포츠 가치를 훼손시키는 부정과 비리에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유라가 승마 특기자로 합격한 직후였다. 이화여대가 정유라를 위해 승마를 체육 특기생에 포함시키고 원서 마감일 이후 딴 금메달을 점수에 반영했다는 의혹보다도 더 심한 것은 면접 1등이다. 목욕탕에서 ‘세신사’의 뺨까지 때렸다는 정유라가 면접의 품성·태도 부문에서 거의 만점을 받아 꼴찌였던 서류 점수를 뒤집고 합격했다니 말이다. 김 전 차관이 여러 공작을 해놓고 ‘비리 척결’ 연극을 한 것 같아 오싹해진다.

사실 체육 특기자를 둘러싼 입시·학사 비리는 오래된 적폐다. 정부가 2000년부터 대학 자율에 맡긴 뒤로 더 심해졌다. 방어율 9점대 투수를 밀어넣으려 하는가 하면, 승마·요트·펜싱 같은 ‘귀족 종목’은 돈과 빽이 합격증이란 말까지 들린다. 재학생 학사 관리는 더 엉망이다. 1년 내내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를 뛰는 한국 대학생 골퍼들을 보자. 리포트와 과제를 내고 온라인 강의로 보충한다는 대학들의 주장에 믿음이 가질 않는다. 얼마나 학교 홍보에 도움이 되길래 결석을 밥 먹듯 해도 졸업장을 준단 말인가.

반면에 미국은 우리와는 180도 다르다.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후회하는 것은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것”이라는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만 봐도 알 수 있다. 졸업장이 없는 게 한(恨)이라는 말인데, 만일 중퇴하지 않았다면 세계 최고가 될 수 있었을까. 선수에 앞서 학생이라는 ‘학생선수’ 개념이 엄격한 학사 규정을 지키려다 종이호랑이가 됐을 거라 본다. 그런 깐깐한 규정의 중심에는 전미대학체육협회(NCAA)가 있다. 세계적 수준의 선수라도 최저학력을 적용해 내신과 대입 성적 제출을 의무화하고, 입학 후 학점 특혜가 없도록 관리한다고 한다. 그러니 돈과 빽을 동원한들 지도교수까지 바꿔 가며 학점을 주는 정신 나간 대학이 있겠는가.

다시 2016년 11월, 촛불 민심과 함께 아이들의 정의에 대한 갈망이 분출한다. 대부분의 성실한 체육특기자들을 욕보이지 않으려면 대학이 솔선해 입시와 학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 올해 대입 예체능 특기자 선발 인원은 전국 106개 대학 6742명인데 이 중 수능 성적이 필요 없는 체육특기자는 2072명이다. 제2, 제3의 정유라가 또 나온다면 대학 문을 닫아야 한다. 투명한 입시와 함께 수능과 내신 성적 제출을 단계적으로 의무화하고, 엄정한 학사 관리를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17일 수능을 치르는 60만 수험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양 영 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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