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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촛불시위 답사기] 상처받은 국격의 회복을 위해 촛불을 들었다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3차 범국민행동’ 촛불시위에 꼭 가고 싶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날은 철마다 열리는 나의 부여 답사가 있었다. 각지에서 온 분들을 모시고 부소산성, 낙화암, 백마강을 답사하고 점심 후 정림사로 가면서 회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나 정말로 광화문광장에 가고 싶으니 이후 일정은 부여문화원 사무국장과 함께 하고 나를 보내 달라고 했다. 그러자 모두들 어서 가라고 했고, 한 분은 차편이 없으면 자신이 서울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이것이 곧 100만 시위대의 저변에 깔린 민심의 바다였다.

그리하여 서울 강남터미널에 도착한 것은 5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 도착한 것은 5시 반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눈길이 마주친 분들은 당신도 거기 가냐는 뜻의 눈웃음을 보냈다. 광화문 앞에 당도하니 이날따라 조명에 빛나는 누각이 더욱 아름답고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이쪽저쪽에서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한 아버지는 촛불을 든 두 아들 사진을 찍고 있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젊은 여자애 둘이 셀카로 얼굴을 담아 간다.

그때 상여를 앞세운 행렬이 광화문 앞을 지나갔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긴 행렬이 뒤를 따랐다. 내자동 삼거리 경찰차의 차단벽 앞에서 행렬은 멈추어 섰고, 시위대는 청와대를 향해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하야하라. 하야하라.” 그 이상의 구호가 없었다.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경찰은 물러가라”라고 했지만 그것은 그야말로 구호에만 그치는 외침이었다. 차단벽을 넘어설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정말로 평화적인 시위였다.

1970년, 교련 반대 데모 때가 생각났다. 당시 서울 문리대 학생들은 속칭 미라보다리 앞 정문에서 기동경찰대의 저지에 막혀 있었다. 그때 희대의 광대인 2학년생 임진택이 마이크를 잡고 구호를 선창했다. “기동경찰은 물러가라! 즉각 물러나지 않으면”, 그러고 나서 한다는 구호가 “물러나지 않는 걸로 간주하겠다”였다. 그때 데모대도, 경찰도 배꼽을 잡고 나자빠졌었다.

7시에 열리는 문화제를 보기 위해 세종대왕 동상 쪽으로 향했다. 나도 구경꾼이 아니라 시위대에 합류하고 싶었다. 이미 행진이라는 것이 무의미한 상황이어서 내가 떠밀려 다니는 것이 곧 시위였지만 나도 촛불을 들고 싶었다. 마침 나를 알아본 몇 분들과 기념사진을 찍어주고 그분들에게 촛불을 얻었다. 그리고 “이게 나라냐”라는 피켓을 들고 인파에 몸을 맡기니 피맛골 쪽으로 나오게 되었다. 지나가는 곳마다 소집단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검은 복장에 흰 가면을 쓴 블랙리스트 예술인들의 퍼포먼스도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어 문자를 날렸더니 누구는 시청 앞에, 누구는 세종문화회관 뒤에 있다고 한다. 만날 길이 없었고 배가 고팠다. 만둣국을 한 그릇 급히 먹고 나오니 그 앞 도로에선 청소년연합의 교복을 입은 중고생들의 한마당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들의 구호는 간명했고, 목소리는 낭랑했다. “국민이 주인이다.” “정의로운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들은 ‘하야’라는 낯선 단어 대신 “내려와! 내려와!”를 외쳤다.

문화제가 보고 싶었지만 이미 인파로 막혀 갈 수가 없었다. 광화문우체국 앞에서 간신히 전광판으로 중계되는 모습을 비껴볼 수 있을 뿐이었다. 지난 40여 년간 거리의 데모를 다 참가해 왔지만 이런 시위는 처음이었다. 투쟁·항거·타도를 외치며 어깨동무를 하고 ‘아침이슬’이나 ‘동지가’를 부르는 비장하고 두렵기도 한 그런 시위가 아니었다. “하야, 하야, 하야”를 랩에 실어 노래하고 거기에 맞추어 촛불이 춤추는 거대한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찾을 것을 찾겠다는 의지만이 있었다.

문화제를 보는 동안 만감이 교차했다. 잃어버린 주권을 다시 찾아내고 상처받은 국격을 회복하겠다는 이 시위는 인류문화사에서 유례를 볼 수 없는 명예혁명의 한마당이라는 사실이 너무도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마당을 펼칠 수 있는 광화문광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내일이면 그렇게 우리를 조롱하던 세계 언론들이 대한민국 국민은 정말로 위대하다고 놀라움과 감탄을 보낼 것이 틀림없으리라 생각하니 가슴이 울렁거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마냥 흘러내리게 내버려두었다.

유 홍 준
명지대 석좌교수·전 문화재청장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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