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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最高) ? 최고(最古)의 과학 기술, 금속 활자 인쇄술!


【총평】


?12세기 후반 이후 약 100년 동안의 무신 집권기에 좌절감에 빠진 문신들은 현실 도피적인 경향의 책들을 많이 펴냈다. 최씨 정권이 문신을 우대하면서 이규보는 역사 서사시인 “동명왕편”과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을 남겼고, 최충의 후손인 최자는 “보한집”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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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동명왕의 신통하고 이상한 일을 많이 말한다. …… 지난 계축년 4월에 “구삼국사”를 얻어 ‘동명왕 본기’를 보니 그 신기한 사적이 세상에서 얘기하는 것보다 더하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지 못하고 귀신이나 환상이라고만 생각하였는데, 세 번 반복하여 읽어서 점점 그 근원에 들어가니, 환상이 아닌 성스러움이며, 귀신이 아닌 신(神)의 (얘기)였다. …… 동명왕의 일은 변화의 신기롭고 이상한 것으로 여러 사람의 눈을 현혹한 것이 아니고 실제 나라를 창시한 신기한 사적이니 이것을 기술하지 않으면 뒷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러므로 시를 지어 기록하여 우리나라가 본래 성인의 나라라는 것을 천하에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

-“동국이상국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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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전기에는 이전 시기부터 내려오던 향가와 한문학 작품이 유행했다. 이후 향가는 쇠퇴하고 한문학이 발달하게 된다. 고려 후기에 신진 사대부들은 향가 형식을 계승하여 새로운 시가인 경기체가를 창작했다. ‘한림별곡’, ‘관동별곡’ 등이 대표적이다. 민간에 구전되는 이야기를 일부 고쳐서 한문으로 기록한 패관 문학도 유행했는데, 이규보의 “백운소설”과 이제현의 “역옹패설”이 대표적이다. 한편, 청산별곡, 가시리, 쌍화점 등 서민의 생활 감정을 자유분방하게 드러낸 작가 미상의 고려 가요(속요)가 유행했다.


고려 시대에는 고대 사회의 전통적 과학 기술을 계승하고 중국과 이슬람의 과학 기술도 수용하여 이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최고 교육 기관인 국자감에서는 율학, 서학, 산학 등의 잡학을 교육했다. 아울러 과거제에서도 기술관을 등용하기 위한 잡과가 시행되어 과학 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


고려 시대의 기술학 가운데 가장 뛰어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신라 때부터 발달한 목판 인쇄술은 고려 시대에 이르러 송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전했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 과거제 실시에 따른 책의 수요 증가로 목판 인쇄술은 더욱 발전하게 된다. 목판 인쇄술은 동일한 책을 다량으로 찍어내는 데에는 적합하다. 그러나 고려에서는 소수의 귀족만이 서적을 필요로 해 같은 책을 많이 인쇄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까닭에 고려에서는 일찍부터 여러 종류의 책을 소량으로 인쇄하는 데 효과적인 활판 인쇄술의 개발에 힘을 기울여 후기에는 금속 활자 인쇄술을 발명하게 된다. 금속활자는 책의 내용에 따라 낱낱의 활자를 옮겨 심을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종류의 책을 인쇄하는 데 유리하다. 고려의 과학 기술 중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것은 금속 활자 인쇄술이다. 목판 인쇄술의 수준도 높다. “고려 대장경” 등 많은 서적을 발간했다. 이는 목판 인쇄술, 청동주조 기술, 먹과 종이의 제조술 등이 어우러진 결실이다.


몽골과 전쟁 중이던 강화도 피난 시에도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문”을 인쇄했다(1234). 이 책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불조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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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로 인쇄된 서적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인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 고려 말기의 승려 백운화상이 상하 두 권으로 펴냈다. 상권은 전하지 않고 하권만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제지술도 발달하여 종기 제조를 담당하는 전담 관청도 운영되었다. 또한, 인쇄에 적당한 먹의 제조 기술과 활자의 주조 기술도 함께 발달했다.?


고려 시대에는 유교적인 역사 서술 체계가 확립되면서 역사서가 많이 편찬되었다. 건국 초기부터 왕조실록이 편찬되었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이에 태조부터 목종에 이르는 7대 실록 편찬이 현종 대 시작되어 덕종 때 완성되었으나 오늘날 전하지 않고 있다. 인종 때에는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삼국사기”는 고려 초에 쓰인 “구삼국사”를 기본으로 유교적 합리주의 사관에 기초하여 쓰인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역사서이다. 기전체 방식이 도입된 “삼국사기”는 본기(왕조 역사), 연표, 지(제도사), 열전(신하의 전기)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기는 삼국 역사를 균형 있게 기록하였으나 연표, 지, 열전 등은 신라사에 치중하여 신라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무신 집권기에는 몽골의 침략을 겪은 후 민족의 전통을 강조하는 역사서가 등장했는데, 삼국 시대의 승려 30여 명의 전기가 수록된 각훈의 “해동고승전”과 고구려 계승 의식을 반영한 이규보의 “동명왕편” 등이 있다. 원 간섭기에는 우리의 유구한 역사를 강조한 역사서들이 나왔다. 일연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공통으로 고조선의 단순을 서술하여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냈다. 고려 말기에는 성리학이 수용되면서 신진 사대부에 의해 전통 의식과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성리학적 유교 사관이 대두했다. 이를 대표하는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했는데, 지금은 “사략”에 실렸던 사론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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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키워드】


?☞ [이규보]는 “[동명왕편]”과 “[동국이상국집]”을 남겼고, [최자]는 “[보한집]”을 남겼다. [신진사대부]들은 [경기체가]를 창작했다. ‘[한림별곡]’, ‘[관동별곡]’ 등이 대표적이다. [패관 문학]도 유행했다. [청산별곡], [가시리], [쌍화점] 등 [고려 가요(속요)]가 유행했다.


?고려의 과학 기술 중 세계적으로 가장 앞선 것은 [금속 활자 인쇄술]이다.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문]”을 인쇄했다(1234). 이 책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그 대신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한 “[불조직지심체요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김부식] 등이 왕명을 받아 “[삼국사기]”를 편찬했다. 무신 집권기에는 민족의 전통을 강조하는 역사서가 등장했는데, [각훈]의 “[해동고승전]”과 이규보의 “동명왕편” 등이 있다. [일연]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는 우리 역사를 중국사와 대등하게 파악하는 자주성을 나타냈다. 성리학]이 수용되면서 [신진 사대부]에 의해 [성리학적 유교 사관]이 대두했다. 이를 대표하는 [이제현]은 “[사략]”을 비롯한 여러 권의 사서를 저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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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문제와 해설 】


1. 다음에서 설명하는 문화유산으로 옳은 것은??


이것은 국보 제 32호로 호국적 성격의 문화유산이다.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조선 초에 해인사로 옮겨져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2007년에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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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경국대전


② 삼국사기


③ 삼귝유사


④ 대동여지도


⑤ 팔만대장경판

?* 2015년 3월 학력평가 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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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답 ⑤

⑤ 제시문은 팔만대장경에 대한 내용이다. 팔만대장경의 활판은 합천 해인사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 1995년 해인사 장경판전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으며, 2007년에 고려대장경판 및 제경판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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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교사의 질문에 대한 학생의 대답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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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양선이 출몰하여 사회 불안이 높아졌엉.


② 4군과 6진의 개척으로 영토가 확장되었어요.


③ 몽골의 침략을 겪으며 자주 의식이 강조되었어요.


④ 김흠돌의 난을 계기로 귀족 세력이 위축되었어요.


⑤ 후고구려의 건국으로 중앙 정부의 권위가 약화되었어요.

?* 2015년 9월 학력평가 1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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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답 ③

③ 고려는 몽골의 침략과 원 간섭기를 거치면서 민족 의식이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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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 문화 유산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① 거란군의 격퇴를 염원하며 제작되었다.


② 단군신화가 기록된 가장 오래된 책이다.


③ 불국사 3층 석탑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④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이다.


⑤ 유교적 합리주의에 바탕한 기전체로 서술되었다.

* 2015년 6월 학력평가 1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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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답 ④

제시문은 고려 우왕 3년(1377)에 간행되었던 “직지심체요절”에 대한 내용이다.

④ “직지심체요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이며,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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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 기록 유산이 간행된 시기의 역사적 사실로 옳은 것은?


유네스코 지정 기록 유산 (가)


간행 연도 : ○○○○


간행 장소: 청주 흥덕사


역사적 의의 : 독일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책보다 70여 년 앞서 간행된 현존하는 인쇄물 중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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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였다.,


② 풍수지리설에 따라 한양을 남경으로 승격시켰다.


③ 청자 제작에 활용된 독창적인 상감법이 개발되었다.


④ 광주 춘궁리 철불을 비롯한 대형 철불이 조성되었다.


⑤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4,700여 권의 전적을 간행하였다.

?* 2012학년도 수능 15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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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답 ①

① 화통도감은 『직지심체요절』간행과 같은 해에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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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대저 제왕의 정사에는 예(禮)를 제정하는 일보다 더 급한 것은 없다. 예를 제정하여 인심을 바르게 하고 풍속을 동일하게 해야 한다. ... (중략) ... 본조는 건국한 이래로 예제를 덜고 보탬이 어려 대를 내려오면서 한 번 뿐이 아니었으므로 이를 병폐로 여긴지 오래였더니, 비로소 최윤의 등 17명의 신하에게 명하여 (가)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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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인쇄하였다.


② 성리학적 규범을 정착시키기위해 편찬하였다.


③ 몽골과 전쟁 중에 강화도에서 다시 간행하였다.


④ 성종 때에 국가 행사에 필요한 의례를 정비한 것이다.


⑤ 예학이 발달하면서 예치를 강조하기 위해 편찬하였다.

?* 2013학년도 6월 모의평가 16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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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답 ③

③ 강화도 천도 당시 예관이 기존의 '상정고금예문'을 가져오지 못하여 최우가 보관하고 있던 것을 금속 활자본으로 인쇄한 것이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 인쇄본에 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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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 인물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왕이 만권당을 짓고 학문 연구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 학사 요수, 염복, 원명선, 조맹부 등이 모두 왕의 문하에서 교유하였는데, (가)은/는 그들과 어울리면서 학문이 더욱 진보되었으므로 여러 학자들이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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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불씨잡변을 통해 불교를 비판하였다.


② 9재 학당을 세워 유학 교육에 힘썼다.


③ 원에 유학한 후 돌아와 성리학을 처음 소개하였다.


④ 정몽주, 권근 등을 가르쳐 성리학을 더욱 확산시켰다.


⑤ 정통 의식과 대의명분을 강조하는 역사서를 저술하였다.

?* 2012학년도 9월 모의평가 1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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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정답 ⑤

⑤ 이제현은 정통 의식과 대의명분을 강조한 '국사'를 저술했으나,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도민이 행복한 더 큰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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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