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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설마, 혹시, 그러나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옛말 그른 거 하나도 없다는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은 맞는 말인가 싶어졌다. 설마 하던 브렉시트가 찬성 결과로 나타나고 설마 하던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걸 보고 났더니 도무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가 없어진 거다. 더구나 한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 아닌가. 이건 대체 끝이 없다 싶을 정도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의혹이 등장하고 새로운 비선 실세가 거론되고 새로운 비리가 밝혀지니 정말이지 그동안 나라가 홀딱 망하지 않은 게 장하다 싶을 지경이다.

인종차별적, 여성혐오적
반지성적인 트럼프의 당선
비이성·반동의 시대 시작된 느낌
많이 나빠지지 않길 바라지만
희망은 종종 부질없는 것으로 판명
마치 2012년 한국 대선 이후처럼


 사실은 영국에 비추어 보았을 때 미국인들도 예상 외의 선택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의 경기가 좋다지만 소득은 재분배되지 않았고 부의 양극화는 심해졌다. 동성결혼 허용과 같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이슈가 끊임없이 제기되었으니 보수적인 사람들의 반발은 차곡차곡 쌓였다. 흑인이 8년간이나 대통령을 했는데 그다음 주자는 게다가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인종차별이 눈에 보이게 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흑인에 대한 경찰의 총격 등이 수차례 문제가 되었다. 훨씬 나은 세상을 바랐던 사람들에게는 세상은 여전히 옳지 않고, 예전의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는 세상은 불편하고 시끄럽기만 했던 것이다. 그러니 오바마와 그다지 많이 다른 세상을 보여줄 것 같지 않으면서 개인적 매력은 떨어지는 클린턴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할 이유는 충분했고, 세상을 어떤 식으로든 확 뒤집어 놓을 것 같은 트럼프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이 그렇게 할 이유 역시 많았다. 결과가 발생하고 보니 이제는 꽤나 당연한 듯이 들린다. 설마 했던 것뿐이리라. 아니면 사람들의 이성을 믿었던 것이라고 해야 하나.

 미국 대선 기간 중에 트럼프가 보여준 인종차별적, 여성혐오적, 반지성적인 태도는 놀라울 지경이었다. 이런 사람은 안된다는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트럼프를 선택했다. 유럽연합(EU)을 떠나는 것이 옳지도 않고 유리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설득에도 불구하고 브렉시트를 선택한 영국인들처럼 말이다. 마치 거대한 비이성의 시대 내지는 반동의 시대가 시작된 느낌이다. 사람들은 이성적이기보다는 이기적이 되기를 원했고, 확실한 것은 세상이 조금 나쁜 쪽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그동안 서구 사회는 좌우를 막론하고 차별과 혐오는 당연히 금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공감대를 어렵사리 형성해 왔다. 여성이라거나 성적 지향 또는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기타 종교 및 신념 등을 이유로 해서 불합리한 처우를 하거나 폄하 내지 모욕을 가하는 언동을 해서는 안 되며, 차별 금지에 반대하는 주장을 공공연히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은 최근에 와서야 겨우 자리를 잡은 원칙이다.

 그러나 브렉시트 직후 영국 곳곳에서 외국인을 향한 혐오범죄가 급증했었다. 그동안 억눌려 왔던 공격적 목소리들이 마치 브렉시트에 찬성하는 다수에 힘입어 정당성을 찾았다는 듯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미국 역시 이민자, 유색인, 동성애자, 여성을 상대로 한 차별과 혐오가 분출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이런 언행을 내놓고 행했던 사람이 처벌받기는커녕 당당히 대통령까지 된 것 아닌가. 이는 마치 차별과 혐오는 사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듯이 들린다. 그 모든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다만 영국의 경우 처음의 경악과 동요는 상당히 진정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입장에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당신들을 원하지 않는다는 선언을 들은 듯한 기분이 쉽게 잊히지는 않을 것 같다. 예상치 못했던 승리를 얻어 준비조차 제대로 되지 못했던 브렉시트 찬성주의자들과 박빙의 차이로 지고 만 브렉시트 반대주의자들 사이의 분열도 아직은 통합되지 않은 듯하다. 트럼프 역시 총득표 수에 있어서는 클린턴에게 뒤진다는 것 아닌가. 브렉시트에 반대한 스코틀랜드는 한동안 우리는 독립하겠다며 들썩거렸고, 캘리포니아 등 미국 곳곳에서 시위까지 벌어진 참이다. 비록 트럼프가 제일성으로 분열된 미국의 재통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지만 그 역시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백인 중심의 서구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동양인 여자아이인 딸은 미국 선거 결과를 듣더니 이건 브렉시트와 유사한데 더 좋지 않다며 많이 실망했다. 나는 아이에게 세상이 많이 나빠지지 않기를 바라자고 말해주었다. 혹시 아나, 예상보다 괜찮은 대통령이 될지. 아이에게 해주는 위로가 섞인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희망은 종종 꽤나 부질없는 것으로 판명 나고는 한다. 비슷한 희망을 2012년 겨울 한국 대선이 끝난 후에도 품었던 기억이 난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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