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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방 원칙·48시간내 처리 지시|시위·진압 모두"자제"인상 뚜렷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됐던 7일의 박종철군 추도식은 경찰의 최루탄세례등 원천봉쇄로 곳곳의 노상추도식과 일부 학생들의 파출소점거·화염병 투척등 충돌이 있었으나 큰불상사 없이 끝난게 다행이라는 중론.

집회의 성격이 박군의 영혼을 달래는 추도회인 때문인지 시위군중도 진압경찰도 서로 자제하는 기색이 뚜렷했고 특히 가톨릭등 종교계가 주도한 범국민적 인권집회시도였다는 점에서 앞으로 정치척· 사회적 여파가 적지 않을것이라는게 검찰· 경찰의 공통된 견해.

좌경구호보다 민주화·고문추방 외쳐…신민·성공적. . "민정"·최선. .

추도대회의 두드러진 특징은 대부분의 시위가 과격하지 않았고 시민들의 호응이 높았던 점.

하오1시10분쯤 광교와 을지로지하철역 사이 차도에 집결한 군중 3천여명 가운데는 나무십자가나 박군의 사진, 노란 국화송이를 든 사람들이 많이 보여 평화적인 추도대회 분위기를 한눈에 느낄수 있을 정도.

이밖에도 20여곳에서 노상추도식과 시위가 계속 됐으나 종로2, 3가일대와 명보극장앞 시위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차례의 투석도 없었다.

연도에 늘어서 노상추도식과 추도행진등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지난해 「5· 3인천대회 」나「11·29개헌추진대회 」때와는 대조적으로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박수로 격려하는등 호응.

시민들은 경찰이 시위학생등을 강제연행할 때마다 『연행하지마』 『때리지마』 라고 외치며 차도로 내려서서 참여하기도 했으며 한시민은 신민당 모당직자 주머니에 2만원을 넣어주며 『잘해달라』고 격려.

하오2시정각 광교·을지로입구등 도심곳곳에서 추도군중 곁을 지나던 일부 택시· 슴용차··버스등이 경적을 울려 박군을 추모.

같은시간 광교4거리에서는 신호에 걸려 서있던 차량 1백여대가 일제히 3분여동안 경적을 울려대 근처에서 추도식을 갖던 이민우신민당총재가 추도사 낭독을 중단할 정도.

시위연행자의 신병처리를 위해 시청앞 현장을 둘러본 공안관계자들도 하오2시를 기해 서울시내 곳곳 길가에 있던 시민들이 박수를 치는 모습이 예상밖이었다며 심각한 표정.

이번대회가 종전의 정치집회와는 다른 평화적 인권집회였다는 특징은 구호와 현장에 뿌려진 10여종의 유인물등에서도 뒷받침.

구호는 지난해 정치집회에서 나타났던 백가쟁명식 좌경·반미구호는 거의 없었고「박종철군을 살려내라」 「고문정권 물러가라」 는등 고문추방과 민주화의 주장을 담은 것이 대부분.

추도군중들의 시위가 숨바꼭질식으로 계속되자 사복차림의 무술경관들이 시위학생등에게 주먹질을 하는등 폭력을 행사해 시민들의 빈축을 샀다.

하오3시30분쯤 남대문시장앞에서는 무술경관들이 대학생풍의 청년이면 마구잡이로 연행, 불응하면 주먹을 휘둘러 연행자 대부분이 얼굴에 타박상을 입었으며 학생차림의 여자1명은 10여m나 흙탕길에 끌리며 연행됐다.

하오4시45분쫌 서울명동 로얄호텔 앞길에서 추도회를 마치고 귀가하던 수녀50여명을 향해 박수를 보내던 강성덕씨(25·농업·경기도안성군) 가 경찰에 의해 명동파출소로 강제연행.

강씨는 시민1백여명과 함께 있다가 수녀들이 『우리가 이겼다』 고 하자 시민들과 함께 박수를 보냈는데 경찰의해산종용에 불응하다 사복경찰 2명에게 양팔을 뒤로 꺾인채 20여m쯤 끌려갔다.

강씨가 연행되자 주변에 있던 시민2백여명이 파출소 앞으로 몰려가 『영장없이 임의동행하지 말라』 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10여분동안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밀려 해산.

경찰의 시위진압 자세가 종전보다는 비교적 유연했다는 느낌.

경찰은 추도군중을 향해 최루탄을 쏘며 가차없이 밀어붙이다가도 신민당이 롯데호텔 앞에서 추도식을 가질 때 처럼 사태를 일단 묵인했다가 퇴로를 열어주고 해산시키는 수법을 썼으며 학생등을 연행할 때도 예전 같은 심한 구타행위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일단 시위군중 수가 많아지고 종로3가 단성사앞 시위처렴 격렬한 양상을 띄며 최루탄을 무차별 발사하고 사복체포조를 풀어 거칠게 진압.

경찰의 이같은 자세는 이번 대회가 자신들의 고문수사로 비롯된 행사라는 점을 고려, 또 한차례 궁지에 몰릴 무리수는 가급적 피하자는 판단이 반영됐기 때문일 것이라는 풀이.

경찰의 제지로 도심곳곳에서 치러진 「노상추도식」장은 경찰이 쏜 최루가스가 자욱해 참석자들이 눈물바다를 이룬 가운데 최루탄에 맞거나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부상자가 속출. 신민당 김정길· 송간영· 금봉욱· 정상구의원 등이 상처를 입었으며 김현규총무의 부인 백경희씨가 경찰차에 실 는 과정에서 크게 다쳤고 박찬종의원의 부인 정기호씨는 직격탄에 발목을 맞아 파편이 박히는 중상 (전치3주) .

6일 아침부터 가택 연금됐던 김영=정금대중씨도 각각 자택에서 가족·측근들과 함께 대문을 열어놓고 추도식을 갖고 이날 노상추도식을 성공적으로 평가.

김대중씨는 녹음한 타종소리를 틀고 김영삼씨는 자신의 승용차 경적을 울리게 하기도.

명동성당의 추도회장은 경찰의 봉쇄로 소수만이 참석,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으나 고문성토의 수외만큼은 상당히 높았다.

참석자들은 추모사 낭독중『푸른 한반도의 하늘, 자유와 평화를 사랑 했던 친구여, 당신은 떠났지만 결코 죽지않고 이시대 젊은이의 상징으로 항상 함께 할 것입니다』(학생대표)라는 대목에선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고 『민주화는 인간존엄성의 회복과 인권보장의 구체적 실현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 (신민당) 는 대목에선 박수가 터저나왔다.

박종철군의 고향인 부산에서는 이날 상오11시30분쯤 추도회 예정장소인 대각사입구에서 학생파 재야인사·신민당원등 2백여명이 시위를 벌인것을 비롯, 하오2시에는 부산극장 앞에서 추도식을 거행한 시민들이 공보원과 광복동 등지에서 1천∼3천명씩 동시다발적으로 시위.

시위현장에는 박군의 어머니 정단순씨가 나와 직접 마이크를 들고 『내아들을 살려내라』 고 외치기도.

추도회를 보는 여야의 시각은 현격한 차이.

신민당은 지난해에 있었던 두차례의 정치집회에 비해 시민 호응도가 매우 높았고 대회가 불상사없이 평화적으로끝난 점을 들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

그러나 민정당은 나름대로 시민호응은 인권대회인만큼 있을 수 밖에 없고 집단폭력사태도 예상보다 적었다는 점등을 들어 최선을 다했다는 자체평가.

검찰은 박군의 고문치사 이후고문·강기구금등 불법수사가 문제돼온 터라 이번 연행자들에 대한 신범처리에 있어서는 그 어느때보다「48시간이내처리」 를 강조.

대검은 집회를 하루 앞둔 지난6일 전국 지검·지청에「2· 7짐회 연행자처리지침」을 시달, 연행자 발생시 해당경찰서에 즉시 검사들을 파견하고 48시간이내에 신병처리를 마무리 짓도록 했던것.

검찰은 이번 집회의 성격이 박군추도회라는 점에서 지난해 11월29일 있은「신민당 서울집회」 때와는 달리 많은 국민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판단, 당초부터 연행자가 생기더라도 훈방을 원칙으로 관용을 베풀겠다는 입장.

실제로 공안부 한 간부는 7일하오 시청 앞에 직접 나가 시위현장을 목격하고 돌아온 뒤 『연도변에 있던 상당수 시민들이 시위대에 박수를 보내는 등 호응하고 있더라』 며『때문에 구속범위도 가급적 최소화 해야할 것 같다』고 실토. 그러나 종로3가 파출소가 시위대에 의해 점거돼 내부가 불탔다는 보고를 받고서는 다소 강경한 어조로 『방화등 극렬행위자들은 법에 따라 염단할 수 밖에 없다』 고 주동자에 대한 구속방침을 피력.

구속자 범위는 8일하오 7시부터 열린 관계기관실무자 「합심 」 에서 최종결정.

이자리에서는 국민감정을 감안, 구속자범위를 가급적 줄이되 집단행동에 대해 엄단한다는 의지천명으로 주동자와 화염병 투척등 극렬행위자는 물론 일부 적극 가담자도 구속키로 했다는 것.

방독면을 착용한 경찰관 2명이 겁먹은 여대생 차림의 시위군중 2명을 강제연행하고 있다. <채흥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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