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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41년만에 풀린 봉인…총천연색 ‘비밀의 숲’

| 그 길 속 그 이야기 <79> ‘김신조 루트’ 북악하늘길

 
북악하늘길 2산책로는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서울에 침투한 1·21사태 이후 41년 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던 성북천 계곡을 지난다. 북악산 동쪽 능선에서 내려다본 성북천 계곡의 단풍.

북악하늘길 2산책로는 1968년 북한 특수부대가 서울에 침투한 1·21사태 이후 41년 동안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던 성북천 계곡을 지난다. 북악산 동쪽 능선에서 내려다본 성북천 계곡의 단풍.


서울에서 단풍 산행을 나선다면 성북구 북악하늘길이 좋겠다. 길이 7.2㎞의 북악하늘길은 1968년 김신조를 포함한 북한군 31명이 서울을 기습한 1·21사태 이후로 41년간 출입이 금지됐던 성북천 계곡과 북악산 능선을 넘나드는 길이다. 길이 지나는 능선과 계곡의 표고차가 100m에 달해 높낮이가 꽤 있는 편이다. 북악하늘길은 서울의 한가운데서 낯선 서울을 만나는 길이다. 오랜 세월 꼭꼭 숨겨져 있던 북악산 깊은 계곡에도 울긋불긋한 단풍 멍이 들어 있었다.
 

 
북악산 능선을 따라서

성북구청이 조성한 북악하늘길은 모두 4개 코스다. 가장 먼저 개통한 코스가 스카이웨이 산책로(3.2㎞)다. 2005년 문을 연 스카이웨이 산책로는 북악산 동쪽 능선에 있다. 하늘한마당~북악정~숲속마루~하늘마루를 잇는다. 성북천 계곡을 파고드는 1산책로(1.4㎞, 북악팔각정~성북천 발원지~말바위쉼터)와 2산책로(2㎞, 하늘마루~호경암~성북천 발원지)는 2009년에, 스카이웨이 산책로의 부속 코스인 3산책로(640m, 숲속마루~하늘마루)는 2010년에 개통했다.
 
북악하늘길에서 본 구절초.

북악하늘길에서 본 구절초.


스카이웨이 산책로, 2산책로와 1산책로의 일부(성북천발원지~말바위쉼터)를 연결해 모두 6.5㎞를 걸었다. 스카이웨이 산책로는 왕복 2차선의 북악스카이웨이 양 옆으로 난 보도를 따라 걷는 길이었다. 보도에는 푹신한 우레탄 고무가 깔려 있었다. 도로 옆이어도 좋았다. 서울의 드라이브 코스 중 최고로 꼽히는 북악스카이웨이였기 때문이다. 울긋불긋 단풍을 매단 나뭇가지 사이로 북한산 능선이 점선처럼 뚝뚝 끊어져 보였다.

북악스카이웨이는 본래 군사도로였다. 종로구 창의문에서 시작해 북악산을 지나 성북구 개운산 입구 교차로에 이르는 길이 10㎞ 도로로 지난 68년 조성됐다. 68년 1·21사태 이후 서울 경비를 강화하기 위해 급히 만들었다고 한다.
 
보랏빛 좀작살나무 열매. 크기는 작지만 색이 진해 눈에 잘 띤다.

보랏빛 좀작살나무 열매. 크기는 작지만 색이 진해 눈에 잘 띤다.


산책로를 따라 도열한 참나무와 산벚나무 수백 그루를 쓰다듬으며 걸었다. 갈색 옷으로 갈아입은 이파리가 바싹바싹 말라 막 떨어질 참이었다. 스카이웨이 산책로에는 성북동으로 연결되는 샛길이 곳곳에 있었는데, 거미줄처럼 뻗은 샛길에도 낙엽이 내려앉아 갈색 물안개가 드리운 듯했다.

근린공원 하늘한마당에서 1.2㎞ 떨어진 북악정 전망대를 지나자 길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다. 폭이 좁아졌고 바닥은 우레탄 고무 바닥에서 낙엽 쌓인 흙바닥으로 바뀌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좋아 일부러 신발 뒤축을 끌며 걸었다. 몇몇 구간에서는 찻길과 멀어지기도 했다. 차도 옆으로 길을 내기가 여의치 않아 숲 속으로 걷는 구간을 만들었다는데 걷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스카이웨이 산책로 종점인 하늘마루에 도착했다. 하늘마루까지는 북악산 동쪽 능선을 타고 걸었고, 이제부터는 2산책로를 따라 계곡 깊숙이 파고들 차례였다.
 
성북천 계곡으로 가는 데크로드.

성북천 계곡으로 가는 데크로드.



 
호젓한 단풍 계곡길
북악산(342m) 자락에는 조선 중기까지 사람이 살지 않았다. 산세가 험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다만 별장 몇 채는 띄엄띄엄 있었단다. 봄에는 벚꽃놀이, 가을에는 단풍놀이를 즐기려고 이 계곡을 찾았다.

북악산 자락에 사람이 터를 잡은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서였다. 1766년 영조는 북악산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마을을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북악산 일대가 풍치지구로 지정됐다(1941). 풍치지구는 지금의 그린벨트와 비슷한 개념으로 민가가 들어설 수 없는 자연보호지역이다. 다만 통행은 가능했단다. 입산이 금지된 것은 1·21사태 이후다.
 
1968년 1·21 사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위 호경암.

1968년 1·21 사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바위 호경암.


“김신조 일당이 파주 파평산~양주 남노고산~북한산 비봉을 차례로 거쳐 창의문(자하문)까지 내려왔어요. 창의문에서 발각됐고 이곳 성북천 계곡에서 총격전을 벌였죠.”

호경암을 앞에 두고 성북문화원 백외준(35) 향토사연구원이 설명했다. 호경암은 1·21사태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바위 곳곳에 총탄이 박힌 자국이 뚜렷했다. 호경암을 지나자 시야가 트였다. 정면으로 숙정문이 보였고 양 옆으로 한양도성이 수려한 곡선을 그리며 펼쳐졌다.

숙정문과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능선 아래에 성북천 계곡이 있었다. 차를 타고 숱하게 팔각정 앞을 지나다녔는데, 이렇게 깊은 골짜기가 숨어있는지는 처음 알았다. 능선에서 내려다본 성북천 계곡은 붉은색과 노란색 염료를 풀어 놓은 물웅덩이 같았다. 나무 계단 수백 개를 내려가 깊은 골짜기 안에 들었다.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에는 소나무·단풍나무·참나무 등 수목이 투박하게 엉켜 있었다.
 
말바위 쉼터로 가는 길.

말바위 쉼터로 가는 길.


데크로드를 따라 계곡 가장 깊은 곳에 다다르자 성북천 발원지가 모습을 보였다. 계곡이라 하기에는 수량이 터무니없이 적었다.

“영조 때 관료인 김구주(1740~86)가 지은 한시 ‘다시 성북둔을 찾다(再訪成北屯)’를 보면 ‘푸른 계곡의 세찬 물소리’라는 표현이 나와요. 당시에는 수량이 꽤 풍부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많이 말랐네요.”
 

숙정문 안내소 근처에 나타난 꿩.

숙정문 안내소 근처에 세워진 북악산 전면개방 기념비.

백외준 연구원이 말했다. 잠깐이나마 그 시절의 성북천 계곡을 상상했다. 물이 많았으면 단풍 빛깔도 더욱 선명했을 텐데 아쉬웠다. 성북천 발원지에서 1산책로로 갈아탔다. 숙정문 안내소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졌다. 숙정문 안내소를 지나 500m를 더 나아가자 말바위쉼터가 보였다. 북악하늘길 1산책로 종점이다. 서너 시간 숲을 헤집고 다녔을 뿐인데 멀리 보이는 서울 도심이 외려 낯설었다.
 
말바위쉼터에서 바라본 성북동 전경.

말바위쉼터에서 바라본 성북동 전경.


북악하늘길 정보
 
걷기여행 포털이 평가한 북악하늘길의 난이도는 ‘중(中)’이다. 길이는 7.2㎞로 짧지만 능선과 계곡을 넘나드는 길이어서 완보하는 데 3시간 가까이 걸린다. 계단 수백 개를 오르내려야 하는 2산책로가 특히 힘들다. 북악하늘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불편하다. 그나마 스카이웨이 산책로와 1산책로가 지하철역과 3㎞ 이내로 연결된다. 스카이웨이 산책로 시작점 하늘마당은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1㎞, 1산책로 종착점인 말바위쉼터는 3호선 안국역에서 2.5㎞ 떨어져 있다. 성북구청 공원녹지과 02-920-3396.
 

글=홍지연 기자 jhong@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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