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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뒷이야기가 미치도록 궁금한 머나먼 옛날의 잔혹 동화

8년 전, 이탈리아 나폴리의 실제 범죄 조직 ‘카모라’를 파헤친 영화 한 편이 세계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테오 가로네 감독의 ‘고모라’(2008)가 그것이다. 2년 앞서 발간된 동명 르포르타주 소설이 원작인 이 영화를 통해, 가로네 감독은 고향 나폴리의 일상을 잠식한 범죄 조직 실상을 지극히 건조하고 현실적인 시선으로 포착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전후 이탈리아의 참담한 삶을 그대로 응시했던 네오리얼리즘을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고모라’로 제61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 가로네 감독은 단숨에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 그런 그가 신작 ‘테일 오브 테일즈’(원제 Il Racconto Dei Racconti, 11월 24일 개봉)에서 돌연 동화의 세계로 시선을 돌렸다. 가로네 감독의 첫 영어 영화 ‘테일 오브 테일즈’는 중세 배경의 판타지물이다. 17세기 이탈리아 민화집 『펜타메론』(원제 Pentamerone)에 실린 이야기 중 세 편을 바탕으로, 바로크 시대 회화 이미지에 기괴한 상상력을 더했다. 가로네 감독의 세계관에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기하학적 공간 속에 탐욕스러운 괴물들을 형상화한 ‘테일 오브 테일즈’. 자기파괴적 욕망을 특유의 심미적 연출로 그린 가로네 감독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봤다.

커버스토리│‘테일 오브 테일즈’의 회화적 영상 미학

‘테일 오브 테일즈’에는 세 개의 이야기가 교차한다. 세 여인 퀸(셀마 헤이엑), 도라(헤일리 카마이클·스테이시 마틴), 바이올렛(비비 케이브)이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다. 퀸은 고민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 그때 마법사가 찾아와 술책을 내놓는다. 처녀가 요리한 바다 괴물의 심장을 먹으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것. 왕(존 C 라일리)은 바다 괴물과 사투를 벌이다 사망하지만, 그 덕에 그 바다 괴물의 심장을 먹게 된 퀸은 하루 만에 아이를 잉태한다.
도라는 이마(셜리 헨더슨)와 자매 사이다. 자매는 나이를 먹어 젊음을 잃고 숨어 산다. 다만 아름다운 목소리로 난봉꾼 왕(뱅상 카셀)의 관심을 끈다. 왕은 매일같이 집으로 찾아와 도라를 유혹하고, 그는 밤에 불을 켜지 않는 조건으로 왕과 잠자리를 갖는다. 날이 밝자 왕은 도라의 쭈글쭈글한 피부에 기겁해, 근위병에게 명령을 내려 창밖으로 그를 던져 버린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도라는 마녀의 젖을 먹은 후 젊음을 되찾는다.

바이올렛은 시집갈 나이가 됐음에도 신랑감을 찾지 못한다. 왕(토비 존스)인 아버지가 애완 벼룩에 정신이 팔린 탓이다. 피를 빨아 몸을 가렵게 하는 그 작고 흉측한 곤충, 벼룩 말이다. 양분을 듬뿍 섭취해 거대하게 자란 벼룩은 어느 날 갑자기 목숨을 잃고, 왕은 실의에 빠진다. 그런 사정도 모르고 신랑감을 구해 달라는 딸의 요청에 왕은 공고를 낸다. 벼룩 피부를 전시해 이것의 정체를 알아맞힌 남자에게 공주를 주겠다는 것. 바이올렛이 눈여겨본 남자들은 줄줄이 탈락하고, 그 와중에 흉악한 외모의 거인이 답을 맞힌다. 바이올렛은 어쩔 수 없이 거인을 따라나선다.
이 동화의 원작자는 ‘이탈리아의 셰익스피어’로 통하는 잠바티스타 바실레(1575 추정~1632). 그는 그림 형제·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등 후대 유럽 동화작가에게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시인 바실레는 고향 나폴리에서 구전되던 민담 중 50개가량을 ‘테일 오브 테일즈’의 원작이 된 민화집 『펜타메론』으로 집성했다. 이 영화의 줄거리에서 짐작되듯 『펜타메론』은 『라푼젤』 『신데렐라』 『헨젤과 그레텔』 『잠자는 숲속의 공주』 등과 같은 걸작 동화의 원형이 됐다.

독창적 이야기에 매료된 가로네 감독은 오랫동안 『펜타메론』의 영화화를 꿈꿔 왔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바실레의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환상적 비주얼이 동반돼야 하는 이 프로젝트는, 네오리얼리즘 전통을 지닌 이탈리아 영화 시장에서 파격에 가까운 시도였다. “이탈리아 관객에게 환상 배경의 판타지 장르는 낯설다. 그래서 오히려 이 장르를 탐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음속으로 상상해 온 이미지를 스크린에 펼치고 싶었다.” 가로네 감독의 말이다.


욕망 때문에 괴물이 된 사람들
초창기 가로네 감독은 대체로 다큐멘터리 요소가 짙은 작품들을 연출했다. 장편 데뷔작 ‘이민자들의 땅’(1996)은 극영화지만, 실제 이탈리아에 터 잡은 이민자들을 출연시켜 그들의 생활상을 담아냈다. 이어 선보인 ‘나폴리의 결혼 사진사’(1998)는 결혼식 사진을 주로 찍는 유명 사진사의 일상에 대한 다큐다. 가로네 감독이 다큐에서 벗어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다. 그는 ‘박제사’(2002) ‘첫사랑’(2004) ‘고모라’처럼 원작이 있는 영화를 잇달아 만들며, 이탈리아의 그늘진 현실과 기묘한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했다. 가로네 감독의 작업 방식으로 미루어 볼 때, 바실레의 원작에 매료된 것이 전혀 의외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테일 오브 테일즈’가 새로운 것은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이다. 다큐에 뿌리를 둔 연출가답게, 이전에는 사실적인 배경 표현에 충실했다. ‘고모라’도 그렇거니와 가로네 감독의 영화에는 고향 나폴리가 무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테일 오브 테일즈’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으로 가득하다. 물론 이 영화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위치한 알칸타라 협곡을 비롯해 돈나푸가타 성·몬테 성 등 실제 중세 유적지에서 로케이션 촬영을 감행했다. 하지만 인간 내면의 어두운 욕망을 다룬 내용답게, 환상적으로 재탄생시킨 성 내부 공간에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이를 위해 가로네 감독이 주목한 것은 회화다. ‘테일 오브 테일즈’ 실내 배경 묘사를 보면 유명 화가의 회화가 어렵지 않게 연상된다.
예컨대 서커스 단원들이 삼삼오오 성 바깥에 모여 화면을 꽉 채운 이 영화 도입부는, 네덜란드 소작농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가 피터르 브뤼겔(1525 추정~1569)의 풍경화 구도를 떠오르게 한다. 바다 괴물의 심장을 요리할 처녀로 지목된 하녀를 비출 때의 카메라워크도 흥미롭다. 빛이 들이치는 실내 정경을 즐겨 그린 네덜란드 대가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의 그림처럼, 주변은 어둡고 하녀는 환하게 표현해 빛의 대비를 이룸으로써 인물에 주목하도록 했다. 또한 퀸이 힘들게 얻은 아들 엘리아스(크리스찬 리스)와 함께 초상화 모델로 나서는 장면 묘사는, 스페인 바로크 시대 궁정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대표작 ‘라스 메니나스(Las Meninas·시녀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하다.

그중 가로네 감독이 직접 영감을 얻은 회화는 스페인 최초 근대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판화 연작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변덕들)’다. 이 판화집은 잠든 인물 주변에 악마 형상의 새가 날아드는 그림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를 비롯해 부패한 성직자, 방탕한 귀족, 마녀와 악마 등이 등장하는 불길한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다시 말해 ‘로스 카프리초스’는 욕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욕망한 결과를 이미지로 나타낸 작품이다. 이는 곧 ‘테일 오브 테일즈’의 주제이기도 하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퀸이 아들 엘리아스를 잉태한 그 무렵, 바다 괴물의 심장을 요리한 하녀 역시 임신한다. 엘리아스와 똑같이 생긴 하녀의 아들을 경계한 퀸은, 두 소년의 친한 모습이 영 못마땅하다. 이에 불만을 품은 엘리아스는 엄마를 떠나고, 퀸은 아들을 찾는 데 혈안이 된다. 엘리아스를 찾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가리지 않을 기세인 퀸에게 마법사는 말한다. “욕망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죠.”

‘테일 오브 테일즈’ 속 인물들은 모두 욕망의 도가 지나쳐 결국 스스로 몰락을 재촉한다. 이는 비단 이 영화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가로네 감독이 극영화로 완전히 돌아선 이후, ‘박제사’ ‘첫사랑’ ‘고모라’ 등의 인물들은 과도한 욕망으로 파국을 자초했다. ‘박제사’와 ‘첫사랑’은 이상적 육체에 대한 집착이 빚어낸 비극이었고, ‘고모라’는 부와 권력을 거머쥐고자 검은 조직에 동조했다가 모두가 죽게 되는 파멸적 이야기였다.
고모라

고모라

박제사

박제사

리얼리티:꿈의 미로

리얼리티:꿈의 미로

(왼쪽부터) 셀마 헤이엑 & 마테오 가로네 감독

(왼쪽부터) 셀마 헤이엑 & 마테오 가로네 감독

이처럼 가로네 감독은 과도한 욕망으로 인해 괴물이 된 존재들에 주목했다. 스크린에 자신만의 ‘로스 카프리초스’ 연작을 만들어 온 것이다. ‘테일 오브 테일즈’가 다른 점이라면, 지금까지와 달리 괴물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가로네 감독 전작에서는 괴물들이 인간의 탈을 쓰고 있었다. 엘리아스에 대한 집착이 지나친 퀸은 ‘하녀의 아들을 죽이겠다’는 못된 욕망으로, 도라를 향한 질투심에 휩싸인 이마는 늙고 병든 육체의 피부를 벗겨내 젊음을 얻으려다 괴물이 된다. 딸 바이올렛의 신랑감을 두고 흥정하는 왕에게 내재된 괴물성은, 그의 피를 빨아먹으며 거대해진 애완 벼룩이 대신해 드러낸다.

이를 두고 가로네 감독은 “동화적 요소로 시작했지만, 가능한 한 현실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동화처럼 보이지만 현대 사회를 비출 수 있게 구성했다는 의미다. 그가 원작 민화집에서 ‘테일 오브 테일즈’에 실린 세 가지 이야기를 선택한 기준이기도 하다. 자식을 향한 지나친 사랑,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비정상적 집착, 권위를 상실한 리더의 추악함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다.

가로네 감독은 ‘테일 오브 테일즈’에 앞서 ‘리얼리티:꿈의 미로’(2012)라는 영화로 ‘고모라’에 이어 또다시 제65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리얼리티:꿈의 미로’는 나폴리의 평범한 가장이자 생선 장수 루치아노(아니엘로 아레나)가 주인공이다. TV 리얼리티 쇼 스타를 꿈꾸던 그가 현실을 가짜로, 리얼리티 쇼 방송국 세트를 현실로 믿게 되는 요지경을 좇는다. 이처럼 가로네 감독은 현실과 환상, 이성과 상상, 진실과 거짓, 진짜와 가짜 등 경계를 가로지르며 그 안에서 균형 잡힌 영화를 완성하는 데 탁월한 연출력을 선보여 왔다. ‘테일 오브 테일즈’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생소한 동화 형태를 띠지만, 판타지를 넘어 현실에 도달하는 줄타기 솜씨가 뛰어난 진짜 ‘마테오 가로네 영화’다.
 
‘테일 오브 테일즈’ 속 벨라스케스의 흔적들
가로네 감독이 보고 나서 감탄한 것으로 알려진 ‘테일 오브 테일즈’ 한국판 포스터는, 벨라스케스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와 인물 배치가 상당히 흡사하다. 1656년 발표한 ‘라스 메니나스’는 17세기 바로크 시대가 배경인 이 영화와 유사점이 많다. 일단 인물의 검은 욕망을 공간 내부의 어두운 분위기로 구체화한 점이 그렇다. 또한 스페인 왕녀 마르가리타 테레사(1651~1673)가 그림 속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처럼, ‘테일 오브 테일즈’의 퀸 역시 많은 사람들 중앙에 위치하거나 공간을 압도하는 색깔의 옷으로 주목받는다.
 
한편 ‘라스 메니나스’는 다섯 살의 마르가리타 왕녀 주변에 늙고 병든 인물들을 배치해,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중앙으로 집중시킨다. ‘테일 오브 테일즈’에서도 주인공 가까이에 낮은 신분의 캐릭터를 등장시켜 관객 시선을 유도한다. 퀸과 엘리아스가 초상화 모델로 서는 장면이 그 예다. 가로네 감독은 이 장면에서 엘리아스와 똑같은 외모를 가진 하녀의 아들을 퀸 모자(母子)가 서 있는 계단 아래로 지나가게 한다. 지극히 ‘벨라스케스적인 미학’으로 서열의 차이를 드러낸 것이다. ‘테일 오브 테일즈’ 한국판 포스터에서 주인공 주변에 헐벗은 자태로 누워 있는 여인들의 역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허남웅 영화평론가, 사진=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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