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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혁명은 거창하지 않았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금방 풀려날 줄 알았다. 일단 외모가 그다지 ‘과격’해 보이지 않았고, 시위로 처벌받은 전력도 없었다. 게다가 그가 농성장에서 끌려 나와 ‘닭장차’(경찰 버스를 그렇게 불렀다)에 실려졌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보안과 형사보다 빨리 그의 하숙방으로 가 유인물과 ‘불온한’ 책을 모조리 치워버렸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그 친구는 구류 처분까지 받고 보름 뒤쯤 학교에 나타났다. 형사가 하숙방에서 찾아낸 책 하나 때문에 조기 훈방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했다. 문제의 책은 『자기로부터의 혁명』이었다. 아뿔싸, 인도 철학자(크리슈나무르티)가 명상에 대해 쓴 지극히 반혁명적인 책이라 그대로 둔 것이었다. ‘혁명’이라는 두 글자의 무게를 간과한 게 불찰이었다. 30년 전 일이다.

교과서로 처음 배운 혁명에는 그 앞에 ‘5·16’이라고 숫자가 붙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구국의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서울 여의도에는 5·16 광장이 있었다. 많은 지식인이 혁명이 아니라 ‘군부 쿠데타’로 정의하고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됐다. 혁명의 아우라가 사라졌다.

대학에서 새로 배운 현대사에서는 4·19 앞에 ‘미완의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달려 있었다.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혁명적 어젠다가 실행되지 못했다는 의미였다. 마산의 시위대가, 서울 동대문에서 정치깡패에게 폭행당한 고려대생들이 ‘혁명한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1987년의 6월 항쟁을 지금은 ‘시민혁명’이라고 부르지만 당시 항쟁을 주도한 중심 세력이 꿈꾼 것은 ‘민중혁명’이었다. 대통령선거 직선제와 문민정부 수립만 원한 것이 아니었다. 헌법을 새로 만들 제헌의회를 만들자는 측도 있었고, 노동자가 회사 소유권과 경영권을 나눠 갖는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 시각에서 보면 6월 항쟁은 ‘실패한 혁명’ 또는 ‘혁명 아닌 그 무엇’에 불과하다.

인류의 대표 혁명 ‘프랑스 대혁명’도 거창하게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국경일인 ‘혁명 기념일’은 시위대가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한 7월 14일이다. 그런데 1789년 7월 15일자 프랑스 신문은 이 사건을 별로 중요하게 다루지도 않았다.(『프랑스 혁명사』, 주명철)

광화문광장에서, 국회에서 타는 목마름으로 ‘혁명’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대개의 시민혁명은 앞장선 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깨어나 보니 이미 새 세상이 와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에겐 더 무서운 것일 수 있다.

이상언 사회2부 부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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