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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내려놓아야 기회가 생긴다

김진국  대기자

김진국
대기자

참 멀리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 국회에 총리 추천을 맡겼다. 총리가 실질적으로 내각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상 거국내각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세균 국회의장을 만난 시간은 13분에 불과했다. 그렇게 흔쾌하게 내려놓은 것 같지가 않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남은 임기 무슨 욕심 더 낼 건가
진심으로 고백해야 보수 살려
공사 구분 못하고 국정 가능한가
정부가 하는 일 어떻게 믿나
내각제라면 정권 몇 번 바뀌어
대통령무책임제 개혁 검토해야


박 대통령은 그동안 두 번 사과했다. 지난 4일 2차 사과는 상당히 감성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그렇지만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절반이 넘는 국민의 마음이 그렇다. MBN 여론조사를 보면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이 57.2%였다. 오히려 다음 날 광화문광장에 20만 인파를 끌어모으는 것을 도왔다.

이제 겨우 밀려서 여기까지 왔다. 무엇이 잘못됐을까.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국민과의 공감에 문제가 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첫째,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을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박 대통령은 민심 수렴 차원에서 물어본 것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인사까지 전횡한 구체적 사례들이 속속 드러났다. 심지어 최씨의 딸이 1등을 못했다고 정부의 국장, 과장을 쫓아내고, 최씨와 가까운 사람을 장관, 차관으로 심었다. 좋은 대통령이라 생각하고 내 손으로 뽑았는데 엉뚱한 아줌마가 설친 것이다. 헌법이 파괴되고, 민주주의가 농락당한 심각한 상황이다.

둘째,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을 걱정한다. 새삼스럽게 영애 시절 최씨의 부친인 최태민씨의 전횡이 닮은꼴로 부각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피해를 본 사람이 있나요”하고 반문했다. 가난했던 최씨 일가가 어떻게 수백억원대 재산가가 됐을까. 분명히 선을 긋지 못하고, 이토록 분별이 없으니 사이비 종교 이야기까지 나온 것이다.

셋째, 박 대통령은 전혀 다른 시대에 사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은 “국민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을 말하는 것이다. 문화 콘텐트가 국민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공감할 수 있다. 그러나 권력자가 기업인의 팔을 비틀어 모금하는 것은 군사정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일부 보도를 보면 비선 실세들이 광고회사를 뺏으려는 시도까지 있었다고 한다. 모금을 전후해 기업인들이 사법처리의 곤경에 처해 있었던 것은 더욱 고약한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힘으로 갈취하는 것은 도적이나 하는 일이지 나랏일이라 할 수 없다.

그 재단이 사실상 개인 재산이 될 뻔했다. 개인 측근들로 채워졌고, 심지어 개인 법인까지 만들어 연결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보다 발전했다면 그런 운영 방식이다. 그런데 전 전 대통령은 청문회를 하고, 감옥에 가고, 백담사를 갔다.

넷째, 어린이들의 꿈을 짓밟았다. 최씨의 딸을 위해 교칙을 바꾸고, 출석하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돈도 실력”이라는 말에 모든 학생과 학부모가 상처를 받았다. 광화문 시위에 기름을 부었다.

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붕괴다. 앞으로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건 국민들이 믿겠는가. 대외적 신뢰 상실은 더욱 심각하다. 이런 정부와 어떻게 협상하고, 이런 집권 세력과 어떻게 정보를 교환하고, 협력을 유지할 것인가. 나라를 망치는 일이 벌어진 셈이다.

많은 사람이 순서만 바꿨어도 달랐을 것이라고 한다. 1차 사과 대신 2차 사과를 하고, 김병준 총리 후보를 지명하기 전에 먼저 국회에 맡겼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진심이다. 계산하고 흥정하는 것으로는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 내각 구성까지 맡기고 정말 마음으로 뉘우치고, 내려놓았기를 바란다.

완전히 내려놓아야 기회도 생긴다. 이제 남은 것은 1년. 이런 사태가 없어도 대통령 선거에 매달릴 시간이다. 무엇을 더 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창조경제, 문화 융성은 최순실 딱지가 붙어버렸다. 거리에 시민이 쏟아져나오는데 무엇을 하겠는가. 국회에 맡기는 게 그나마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10%대 지지율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 지지율의 대통령과 손을 잡으려는 차기 후보가 없다. 권력 기관들도 눈치를 보게 된다. 누구를 내세워 정권 재창출을 할 처지는 더더구나 아니다. 모두 내려놓아야 명예로운 퇴진이 가능하다. 바닥을 쳐야 보수 세력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사실 내각제라면 정권이 몇 번은 바뀌었을 상황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한 사람에게 국가의 정통성을 모두 걸어놓았다.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지고, 20만 시민이 광화문광장을 채워도 제도적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 대통령무책임제다. 국회가 총리를 지명하는 것이 새로운 실험이 되고, 어정쩡한 권력 이양기가 제도 개혁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김진국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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