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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자로 잰 듯 삶을 설계 말아요, 인생 길더라고요”

오세훈 전 시장과 함께한 신문콘서트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지난달 31일 저녁 오세훈(55) 전 서울시장은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을 낭독했다.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열린 중앙일보 신문콘서트 무대에서다. 오 전 시장 앞에는 20~30대 관객 100여 명이 앉아 있었다. 그는 “한국의 지친 청춘들에게 이 시를 꼭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열린 신문콘서트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왼쪽)이 2030 관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인생 행로가 바뀌는 일은 빈번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답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른쪽은 사회를 맡은 정강현 기자. [사진 최정동 기자]

지난달 31일 열린 신문콘서트에서 오세훈 전 서울시장(왼쪽)이 2030 관객들과 대화하고 있다. 그는 “살다 보면 뜻하지 않은 일이 생겨 인생 행로가 바뀌는 일은 빈번하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답이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오른쪽은 사회를 맡은 정강현 기자. [사진 최정동 기자]

이날 오 전 시장은 일찌감치 콘서트 장소에 도착해 아내 송현옥(55) 세종대 교수와 미리 관객석에 앉았다. 신문콘서트의 주제는 ‘청춘이 정치를 만났을 때’. 사회를 맡은 정강현 기자가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해 보자”며 운을 뗐다. 관객석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대학생 서지연(24)씨는 “박근혜 대통령 사과 등을 보면 대통령이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대학생 황단비(20)씨는 “릴레이 시국선언에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는데 점점 감정이 격해지고 있다. 조금은 이성적으로 이 사태를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변호사로 아파트 일조권 소송 맡아
정치권에 실망해 직접 뛰어들어

무상급식 주민투표한 것 후회 안 해
돌아간다면 시장직 사퇴는 안 했을 것

이젠 한 사람이 나라 이끌 단계 지나
사회 구성원 모두 힘을 모아야 할 때

관객들의 자유발언 후 이어진 걸그룹 풍뎅이의 공연이 끝나자 오 전 시장이 무대에 올랐다. “아까 관객석에서 여러분들 이야기 들었습니다. 여기 계신 분 중 대통령 탄핵이 필요하다 생각하시는 분 손 들어보세요.” 사회자도 예상치 못한 오 전 시장의 깜짝 질문이었다. ‘탄핵은 해법이 아니다’에 절반 이상이 손을 들었다.

“저도 심정 같아선 ‘때려치우라’고 외치고 싶은데 그 이후 국정운영을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해요. 다들 고민 많으시죠? 같이 얘기해 봅시다.”
 
 

◆스타 변호사에서 정치인 오세훈

관객들을 상대로 돌발 설문을 진행할 만큼 오 전 시장은 이날 콘서트에 적극적이었다. 토크 시작 전 무대 뒤편에 설치된 스크린에 ‘스타 변호사 오세훈’이라는 자막과 함께 그의 20여 년 전 사진과 관련 기사가 나왔다. 1994년 ‘오 변호사 배 변호사’라는 법률 상담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뒤 ‘미남 변호사’로 이름을 알리던 당시였다. 관객들은 ‘오~’ 하는 감탄사를 냈고 오 전 시장은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어떻게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나.
“잘생겼으니까.(웃음) 농담이고, 당시 인천에 있는 한 아파트 주민들의 ‘일조권’ 소송을 진행했었다. 일조권이라는 개념이 생소한 탓에 방송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방송사 PD님이 제 인터뷰를 보고 ‘어려운 내용을 참 쉽게 설명한다’며 프로그램 진행자 자리를 제안했다.”
그 인기가 정계 진출로까지 이어졌다. 계획된 거였나.
“아니다. 변호사로서 일조권 문제를 다루다 시민단체 공해추방연합(현 환경운동연합) 사람들과 같이 일했는데 그때 정치권에 많이 실망했다. 환경 관련 법을 만들어 달라며 매일 서류 들고 찾아가도 말만 ‘알겠다’ 하고 답이 없었다. 같이 일하던 활동가들이 ‘차라리 정치를 직접 해 보라’고 제안했다. 그게 자연스럽게 동기부여가 됐다. 16대 총선(2000년)에 당선된 뒤 4년 내내 환경노동위원회 활동만 했다. 정치권에 파견된 환경운동가 역할인 셈이었다.”
해 보니 어떻던가.
“쉽지 않았고 실망을 더 많이 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국회의원들 주요 업무 중 하나가 후원금을 많이 받기 위해 돈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일이었다. 국회 하면 ‘부패의 온상’이란 이미지도 강했다. 이걸 바꾸고 싶어 2004년 국회의원 후원금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이른바 ‘오세훈법(정치자금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그때 정치권에서 ‘역적’이라고 욕 많이 먹었다.(웃음)”

◆땅콩 두 알이 이어준 ‘닭살 부부’
신문콘서트 초대가수인 걸그룹 풍뎅이가 청춘들을 위로하는 내용을 담은 곡 ‘역전’을 부르고 있다.

신문콘서트 초대가수인 걸그룹 풍뎅이가 청춘들을 위로하는 내용을 담은 곡 ‘역전’을 부르고 있다.

과거 정치 이야기가 한동안 무겁게 진행되자 사회자는 관객석에 앉아 있던 오 전 시장의 부인 송 교수에게 잠시 마이크를 넘겼다. 송 교수는 오 전 시장이 정치권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남편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는 ‘내조의 여왕’으로 유명하다. 오 전 시장의 지인들은 두 사람을 ‘닭살 커플’이라고 부른다.
 
어떻게 만났나.
“아내 오빠 되는 사람이 고등학교 1년 선배다. 고교 시절 집이 어려웠는데 두 남매가 ‘우리 과외하는 데 너도 끼워줄게’라고 해 같이 공부하게 됐다. 그때부터 난 아내한테 관심이 있었다. 그러다 대학 진학 후 길거리 가판대에서 땅콩하고 군밤 100원어치를 사먹은 적이 있는데, 사장님이 포장해 주는 사이 내가 땅콩 2개를 몰래 집어먹었다.(웃음) 그걸 보고 아내가 반했다고 하더라. 그때부터 고려대 캠퍼스 커플로 쭉 연애하다 결혼까지 했다.”
(송 교수에게) 왜 그 모습에 반했나.
“남편이 그전까진 너무 모범생 이미지였다. 땅콩 2개 집어먹는 모습에 ‘아, 이 사람도 이런 짓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그게 의외의 반전 매력으로 다가온 것 같다.”

◆“‘오만하다’ 이미지, 내 실패 요인”

스타 변호사, 국회의원, 서울시장…. 남들은 일생에 한 번도 해 보기 힘든 자리를 연달아 맡으면서 승승장구하던 오 전 시장의 정치 인생에도 브레이크가 걸린 순간이 있었다. 2011년 서울시장 시절 야당의 무상급식 추진에 반대하며 시장직까지 내걸고 승부수를 띄웠던 ‘주민투표’ 때다.
 
주민투표가 무산돼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솔직히 후회된다. 당시 서울시의회 구성원의 3분의 2 이상이 야당이어서 ‘무상급식’과 관련한 내 이야기가 도저히 먹히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한번 붙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작심하고 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고 보수 진영에서도 ‘야당에 시장직을 내줬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런 선택(시장직 사퇴)은 안 할 것 같지만 그래도 필요한 싸움을 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지난 4월 총선에서도 낙선했다.
“오만했다. 그때 당의 서울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아 다른 지역구에 지원을 몇 차례 갔었다. 그게 종로 유권자분들에게 ‘저 사람이 마치 종로에서는 이미 다 된 것처럼 건방지게 군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던 것 같다. 총선 패배 후 생각을 많이 정리했다. 다음 정부가 됐건, 그다음 정부가 됐건 기회가 된다면 벽돌 한 장 더 쌓는다는 마음으로 일해 보고 싶다.”
최근 정치권의 모습은 어떻게 보나.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국민이 아무 권한을 준 적 없는 중년 여성이 국정에 관여했다는 게 얼마나 실망스럽고 부끄러운 일인가. 얼마 전 김문수·남경필·유승민 의원 등과 만나 ‘이제 어느 한 사람의 힘으로 성공적으로 나라를 이끌 단계는 지난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눴다. 국회·정부·시민단체 등 사회 구성원 모두 나라를 위하는 한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오 전 시장은 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냐는 관객석 질문에 “너무 자로 잰 듯 인생을 설계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살아보니 때로는 정말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져 인생 행로가 바뀌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 하고 싶은 일, 목표한 일이 풀리지 않는다 해도 좌절하지 마세요. 인생은 그걸 만회할 만큼은 길더라고요.”
 
◆신문콘서트
지난해 시작된 중앙일보 ‘신문콘서트’는 2030 독자와 함께 신문이 다루는 주요 이슈에 대해 토론하고 음악 공연을 보는 토크 콘서트다.

글=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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