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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 조식의 산청 덕천서원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이 국가적 위기의 해법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 선비정신이 하나의 교훈이 될 것이다. 요즘 선비정신 교육으로 발길이 이어지는 경북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과 경남 산청 덕천서원(德川書院)을 찾아가 보았다. 두 서원에 모셔진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1501년 같은 해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다. 이들은 생전에 만난 적은 없지만 다같이 어지러운 시대를 맑고 의롭게 이끌려 했고 교육을 통해 그 뜻을 실천했다.
지난달 28일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경남 지역교육청과 학교 공무원들이 선비복장으로 예절교육을 받고 있다. [산청=위성욱 기자]

지난달 28일 한국선비문화연구원에서 경남 지역교육청과 학교 공무원들이 선비복장으로 예절교육을 받고 있다. [산청=위성욱 기자]

지난달 28일 경남 산청군 시천면 원리 덕천서원.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76년 후학들이 세웠다. 서원 출입구는 문이 세 개인 ‘삼문(三門)’이다. 반드시 ‘동입서출(東入西出·오른쪽으로 들어가 왼쪽으로 나온다)’ 해야 한다. 중간은 신(神)만 드나든다. 서원 정면에는 남명의 사상을 가르치던 ‘경의당(敬義堂)’, 좌우에는 유생들의 방이 있다. 경의당 뒤는 남명의 사당이다.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이 서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김효영(64) 문화해설사는 “요즘 선비문화를 배우기 위해 이곳을 찾는 발길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남명 묘소나 기념관 등을 찾는 사람도 증가세라고 했다. 특히 지난 4월 산청군이 남명의 실천 유학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기 위해 기념관 인근에 세운 한국선비문화연구원이 인기다. 설립 이후 현재까지 4000여 명이 찾았다.

덕천 선비문화연구원에 4000명 찾아
‘남명 사상’ 배우며 실천 유학 계승
“청렴하지 않으면 불의 행하게 돼
물질 중시 풍토, 최순실 사건 불러”

지난달 27~28일에는 경남 지역교육청과 학교 소속 공무원 81명이 연수를 받았다. 이날은 남명 조식 선생의 12대 손인 조창섭(76) 서울대 명예교수가 ‘선비 정신과 청렴’을 주제로 강의했다. 조 교수는 “석사·박사도 있지만 이보다 더 높은 사람이 ‘밥사(밥을 사주는 사람)’다”며 “그런데 청렴은 이 밥사와는 원수덩어리여서 자꾸 얻어먹으면 ‘김영란법’에 걸린다”고해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어 “청렴은 성리학의 핵심 행위 규범인데 이를 몸소 실천한 분이 바로 남명”이라며 “청렴하지 않으면 불의를 행하게 되는데 현대 사회는 물질을 중시해 최순실씨 같은 사건이 자꾸 생긴다”고 말했다.
남명 조식

남명 조식

남명 조식 선생은 ‘경(敬)’과 ‘의(義)’를 학문의 중심으로 삼았다. 마음을 밝고 올바르게 하는 것이 경이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의다. 남명은 항상 칼(경의검·敬義劍)과 방울(성성자·惺惺子)을 차고 다녔다. 조 교수는 “사사로운 욕심이 내장에 티끌만큼만 쌓여도 칼로 배를 갈라 맑은 물에 씻겠다는 뜻에서 검을, 이같은 뜻을 늘 깨우치고자 방울을 차고 다녔다”고 말했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등 남명의 제자 50여 명이 의병장이 된 것도 바로 남명의 실천 유학 덕분이다.

조 교수는 “남명이 1555년 단성(산청)현감 자리를 거부하며 어린 명종 임금에게 올린 단성소(丹城疏)는 강직한 기상을 볼 수 있는 선비문화의 상징이다”라고 설명했다.

남명은 단성소에서 “나라의 근본은 없어졌고 하늘의 뜻도 민심도 떠나버렸다. (중략) 오장육부가 썩어 배가 아픈 것처럼 온 나라의 형세가 안으로 곪을 대로 곪았는데도 누구 한 사람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명종은 이 글에 진노했으나 주변에서 ‘빼어난 선비’의 상소라고 만류해 화를 면했다.

산청=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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